- [성경본문] 시편37:1-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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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의인이 사는 법
2023년 10월 22일 창원더사랑교회 설교
시 37:1-11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지난 시간에는 시편 33편을 본문으로 해서 의인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시편 37편을 본문으로 하여 지난 주와 동일한 제목인 ‘의인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7:20절 말씀을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인은 누구인가? 오늘날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성경이 말하는 의인인 줄 믿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시편 37편 말씀을 보면서 우리 의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선하심을 믿고 끝까지 참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 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실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정성스럽고 참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 분의 미쁘심을 간직하고 이 땅에서 살아라”
미쁘다는 말은 우리말인데, 믿음직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실하다는 말과 미쁘다는 말로 번역된다는 것은 하나님은 정성스럽고 참되며 믿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선하심을 끝까지 믿고 이 땅에서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불평을 합니까? 우리가 하는 불평은 단순히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불평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에 대한 불평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불평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불공평하냐는 겁니다. 왜 저 나쁜 사람은 저렇게도 잘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일이 안풀리냐?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부정까지 하게 되는 것이 불평입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잘되는 것을 보면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한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악을 행하는 것이 뻔히 보이고,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보면 화도 나고 불평도 해야지요.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됩니다. 그러나 그 불평이 사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형통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오늘 말씀 2절을 보면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9절과 10절 말씀을 보면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며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질 것”이라 말씀하고 있고, 17절에서는 “악인의 팔은 부러진다”
20절에서는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하는 불평은 당연한 불평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하지 말고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참고 기다리면 어떻게 됩니까? 참고 기다리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악인의 팔이 부러지고(아멘?), 악인들은 반드시 멸망당하고(아멘?), 연기가 되어 없어집니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당하고 악인의 미래는 끊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면 됩니다.
둘째로, 의인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을 삽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러면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묵상을 쉽게 하기 위하여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애인(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인)이 생긴 겁니다.
자, 그러면 애인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애인과 함께 있는 것이 좋고 행복한 것입니다. 애인이 하는 말을 귀찮아 하는 것이 아니라 애인이 하는 말은 어떤 말이든 즐겁고 행복하지요? 애인과 함께 있으면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헤어지고 집에 가면 또 보고 싶지요? 그것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즐거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즐겁고 기쁘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매우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잠시 보류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좀 하고 싶어요. 우리 학생들은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을 잠시 보류하고 학원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언제든지 우리에게는 이런 유혹이 있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에 오정모 사모님이 평양에 계실 때 김일성이 사과상자 두 개를 보냈습니다. 상자 안에는 지폐가 가득했고, 논밭문서와 적산 가옥 문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이었던 주광조 장로는 그것을 보고 매우 기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암 수술을 하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그 돈과 논밭 문서면 공부도 할 수 있고 편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정모 사모님은 주기철 목사님이 후세에 이런 선물을 받으려고 순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뜻은 받지만 물건은 받을수 없다며 돌려보냈습니다. 이를 보고 입이 대자로 튀어나온 막내 아들을 앞에 앉히고 오정모 사모님은 시편 37:25-26절을 읽게 했습니다.
우리가 다함께 시편 37:25-2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주광조 장로는 남하해 홀로 살아가면서 그 때 돈을 받지 않은 어머니가 많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늘 이런 두 가지 길에서 고민을 합니다. 이 길은 편하고 넓은 길입니다. 반면 다른 길은 좁은 길이며 험한 길입니다. 오정모 사모님은 김일성이 주는 돈과 집문서와 논밭문서를 받으면 자녀들에게 든든한 도움이 되었을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정모 사모님은 그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 주광조에게 돈과 논밭문서대신 시편 37:25-26절을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비록 나에게 손해가 되고 고난의 길이 되어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길을 기쁨으로 선택하는 삶이 바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의인은 자신의 길을 여호와게 맡기는 사람입니다. 5,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자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긴다는 것은 자신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며, 자신의 미래를 여호와께 맡기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오정모 사모님이 자신의 아들에게 돈과 물질과 집을 유산으로 남겨둔 것이 아니라 시편 37:25-26절의 말씀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아들이 돈과 물질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정모 사모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께 아들의 길을 맡기지 않고, 김일성이 주는 돈과 재물을 선택했다면 아들 주광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아들이 남하를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돈이 든 사과상자가 있고, 논밭문서가 있고, 적산가옥의 문서가 아들에게 있었다면 아들은 절대로 남하를 못했을 것입니다. 주광조 장로가 남하하지 않고 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인민군에 징용되어서 6.25때 남침하였을 것이고 전쟁터에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는 누구에게 달려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까?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여러분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엄청 고생 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우리 인생인데 우리가 그 인생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지요.
그래서 우리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저와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파도 버리지 아니하고, 우리가 공부를 못해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 여러분, 여러분이 공부 못해도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의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세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방황하는지 모릅니다. 얼굴을 보면 알아요. 얼굴을 보면 얼굴이 죽어 있어요. 얼굴에 웃음이 사라져있고, 얼굴에 광채가 없어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얼굴이 어두워요.
우리 얼굴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얼굴에 광채가 나야하고 눈빛이 빛나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십시오.
얼굴에 광채가 없어요. 눈빛이 죽었어요. 눈빛이 살아있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 더사랑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기를 바랍니다. 얼굴이 반짝 반짝 빛나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요? 여러분의 길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얼굴에 광채가 나고, 여러분 눈빛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오늘 의인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첫째, 의인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둘째, 의인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좁고 험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즐거이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의인은 자신의 미래를 여호와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16절부터 31절까지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22)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30)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31)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을 마음에 확실히 믿고 의인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불의한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시고, 의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게 하시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시며, 우리의 미래를 여호와께 맡기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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