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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신 예수님
강동협 2022-12-10 추천 0 댓글 0 조회 380
[성경본문] 마태복음5:17-26 개역개정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오신 예수님

 

20221211일 창원더사랑교회 설교

 

5:17-26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을 맞아서 마태복음 517절 이하의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 중 하나인데 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보배로운 말씀이라고 하여서 산상보훈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5장에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알고 있는 팔복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의 6대 반대명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517절의 말씀은 그 이후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6대 반대명제의 서론격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6대 반대명제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면 예수님의 6대 반대명제가 무엇인가? 521절부터 예수님의 6대 반대명제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6대 반대명제는 이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1절의 말씀처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마다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마다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너희가 구약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런 형식으로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에 대하여 반대의 말씀을 하고 있다고 하여서 반대명제라고 하는데, 이런 것이 몇 개인가? 6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6대 반대명제라고 합니다.

 

이렇게 마태복음 5장에는 살인에 대하여, 간음에 대하여, 이혼에 대하여, 맹세에 대하여, 보복에 대하여, 원수에 대하여 6개의 반대명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율법 해석은 유대인들의 서기관들과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있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율법해석은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 취지와 의미를 살리는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율법해석은 당시 율법학자들에 비하여 상당히 개혁적이고, 마치 율법을 폐지하는 것처럼 비쳐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절 말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5:17)

 

겉으로 보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사나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다른 말씀이었기 때문에 마치 서기관들이 가르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처럼 비쳐졌다는 것이지요.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보훈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가르치심에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말 그대로 구약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들, 곧 율법들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대의 반대명제를 언급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 말씀하고자 하였던 말씀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 형제에게 라가라 하지 말라,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자 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으로 그들의 수준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율법해석에 따르면 형제에게 노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고, 형제에게 라가(오늘날 바보 멍충이)라 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고,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형제와 다투지 말라.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에 대한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성경을 읽어보면 간음에 대하여, 이혼에 대하여, 맹세에 대하여, 보복에 대하여, 원수에 대하여 반대 명제식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6대 반대명제에 등장하는 말씀들, 즉 하나님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율법에는 본래의 숨겨진 취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담겨진 본래의 취지는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볼 때는 율법의 본 취지가 안보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 안에 사랑이 보입니까? 겉으로 보면 심판처럼 보입니다.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율법에 등장하는 보복법은 무엇입니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38절 말씀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겉으로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이것이 무슨 사랑입니까? 사랑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보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런 하나님의 모든 율법들은 다 사랑이 본래 취지입니다. 나님의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고,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고, 이혼할 때에는 이혼 증서를 주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고, 맹세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고,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 율법에 담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6대 반대명제 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이 예수님의 율법해석의 관점에서 율법을 해석합니다. 그랬더니 율법을 읽으면서 바울의 눈에 번쩍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3:8-10절까지 말씀을 보면,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어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어느 순간 바울도 깨달음의 경지가 왔는데 예수님과 같이 율법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아집니다.

모든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율법 행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언어로 하면 사랑이 없는 예배, 사랑이 없는 구제, 사랑이 없는 선교, 사랑이 없는 전도, 사랑이 없는 부흥, 사랑이 없는 가정, 사랑이 없는 교회, 사랑이 없는 신앙생활,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국 모든 율법, 모든 성경은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온전한 사랑은 이 세상에 없었는가? 물론 온전한 사랑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온전한 사랑이 없었어요. 죄인인 인간은 온전한 사랑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은 온전한 율법으로 주실 수 없었습니다. 그저 죄인인 인간 수준에서 이해하고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보복법이 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로 얼룩져 있어서 온전한 사랑을 할 수가 없는 인간은 한 대를 맞으면 열 대를 때려야 속이 시원합니다. 우리 편 한 사람이 죽으면 상대방을 열 명 죽여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그 수준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한 대 맞았으면 상대방을 한 대만 때려라. 너희가 한 사람 죽었으면 상대방도 한 사람만 죽여라.

이렇게 죄인인 인간 수준에서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보니까 드디어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구약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담겨진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그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온전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이제 우리에게 그 온전한 사랑을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니 그 온전한 사랑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원수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5:43절부터 48절까지 말씀을 보면,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원수가 있다면 사랑의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아니, 저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이고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 중에는 에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딱 한명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로 작정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일찍 포기하면 안됩니다. 해보고, 한 번 해봐서 안 되면 두 번 해보고, 두 번 해보고 안 되면 세 번 하고, 세 번 해보고 안 되면 네 번 하고, 네 번 해보고 안 되면 다섯 번 하고, 다섯 번 해보고 안 되면 열 번 하고, 열 번 해봐도 안 되면 백번하고, 백번 해봐도 안 되면 천 번 하고, 천 번 해봐도 안 되면 만 번 하면 됩니다.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 원수를 미워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고 아무런 능력이 없으나 내가 그렇게 살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살려고 하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성령님의 권능은 놀랍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조차도 미워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했던 역사가 우리 교회 역사 가운데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그러했고, 바울 사도가 그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는 일들이 교회 역사 가운데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정말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 가슴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오신 예수님의 역사, 사랑으로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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