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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리로 오신 예수님
강동협 2022-12-25 추천 0 댓글 0 조회 551
[성경본문] 누가복음2:1-21 개역개정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낮은 자리로 오시는 예수님

 

20221225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성탄절) 예배 설교

 

2:1-21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성탄인사를 하겠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어제 성탄절 이브날에는 팔용동 행정복지센터 사거리에서 성탄절 버스킹을 했습니다. 그동안 어린이부와 청소년부에서 열심히 준비한 댄스와 성탄찬송을 하면서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음을 선포하고 아기 예수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추운 겨울 날 어묵탕을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나눠주면서 따뜻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어제 수고한 모든 분들 박수로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겠습니다.

 

어제는 성탄절 이브 행사였다면 오늘은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 우리에게는 매우 기쁘고,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프신 분도 있고, 직장생활이 힘들기도 하고, 여러분 각 개인이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러한 환경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 모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부터 이름이 벌써 정해져 있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와 요셉에게 태어날 아기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이미 정해주셨습니다. 예수가 무슨 뜻입니까?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라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에 담겨진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면 구원시켜줄 만한 자리에 있어야 할터인데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조짐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할 만한 분이라면 구원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났어야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며,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분이니까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왕궁이 아니라 어느 시골 마을의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태어나셨는데 하필이면 태어난 곳이 왕궁도 아닌 시골집의 마굿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라난 곳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골 마을의 나사렛이란 동네였습니다. 무엇하나 우리를 구원할 만한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듣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축하한 사람들도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무슨 사회 지도급 계층에서 찾아와서 예수님 탄생을 축하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평범하게 낮은 수준의 생활을 하던 양을 치는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축하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셨고, 고통 받는 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찾아가셨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가셨고,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슬픔당한 자들을 위로해 주셨고, 절망 중에 있는 자에게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권력가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종교지도자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찾아간 사람들은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 사람들이 다 꺼리는 세리와 창녀, 나병환자들을 찾아갔습니다. 멸시받고 조롱받는 이들을 찾아갔어요. 의인들을 찾아가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냐하면 그 자리가 그 분의 부르심의 자리였고, 그것이 그 분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그 분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는 예수님을 딱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인줄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도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세리도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몰라보고 예수님을 배척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당시 가장 학식이 높은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되고, 귀신을 내쫓을 때 일반 백성들은 그가 메시야가 아니냐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을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가 귀신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내쫓았다고 말하고, 그를 죽일 기회를 엿봅니다.

 

그래서 당시에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었습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었습니다. 말이 안되는 겁니다. 어떻게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어떻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가난이 무언지도 모르고 애통하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니까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애통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도 온유한 사람이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도 긍휼히 여기는 자라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마음이 청결한 자라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화평하게 하는 자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라야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만난 사람이 복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예수를 만났습니까?

 

외로울 때 만났습니다. 건강할 때가 아니라 병들었을 때 만났습니다. 기쁨보다는 슬픔 중에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났고, 마음이 상하고 외로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자가 아니라 가난할 때 예수님을 만났고, 실연당했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무언가 힘들고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난함이 복이 된 것이고, 우리의 병듦이 복이 된 것이고, 우리의 고통이 복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부르시고, 고통 받는 자들을 부르시고,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시고, 슬픔 가운데 있는 자들을 부르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항상 낮은 자를 찾으시고, 부르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겠습니까? 여러분이 낮은 자리에 있다면 절망하지 마십시오. 낙담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그 자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이고, 복의 원천인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난했을 때를 기억해야 하고, 내가 비천한 낮은 자리에 있었을 때를 기억해야 하고, 내가 눈물 흘리며 고통을 겪고 있었을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잊어버리면 안되요.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만나주셨고, 내가 눈물 흘릴 때 예수님이 어떻게 내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셨는지를 잊어버리면 안되요. 내가 가난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느지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낮은 자리로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낮은 자리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자리로 향해야 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시선이 항상 그들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성탄절을 맞아서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부자를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부르러 오셨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눈을 낮은 자리로 돌려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천국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모두가 낮은 자리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저희들도 낮은 자리에서 날마다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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