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11:24-2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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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부활을 살아내는 사람
2020년 4월 12일 창원더사랑교회 부활주일설교
(by 강동협 목사)
요 11:24-27절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일은 부활주일이어서 함께 모여 예배하기를 다들 기다렸지만 이번 주일과 다음 주일은 가정예배로 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코로나 19 전염병 상황을 맞이하면서 정부와 질병관리본부, 각 지자체와 의료진들이 많은 희생과 헌신아래 코로나 19 확진자 숫자가 많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단체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 코로나19 퇴치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맥이 탁 풀리는 상황을 접하면서 우리가 더욱 협조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특별히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사업장과 직장들을 보호하고자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오늘도 가정에서 예배하지만 우리의 예배가 경건하고 하나님께 바른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2020년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을 교회에서 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하게 되니 마치 초대교회에 온 것 같습니다. 인원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일지라도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감격을 주는 역사적인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입니다.
요 11:24-27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마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도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보니까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성을 내려다보면 그 아래가 온통 돌무덤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감람산부터 예루살렘성 앞에 무덤을 쓰는 이유는 바로 부활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가 오면 황금문,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 때 들어간 문인데 현재는 이슬람에서 그 문을 막아버렸습니다. 그 황금문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서 메시야를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황금문 가까이 있는 무덤부터 죽은 이들이 부활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황금문 근처부터 무덤이 생기기 시작하여 감람산 기슭까지 돌무덤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마르다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때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맥락입니다.
마르다의 말에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이 답변은 대단히 놀라운 답변입니다. 우리가 흔히 부활에 대하여 말하는 그런 대화가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마르다와 부활에 대하여 대화를 한다면 이렇게 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너처럼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 그래서 너의 오라비 나사로도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을 믿는다.”
이렇게 되어야 흔한 일상적인 대화가 되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답변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나는 부활이며, 나는 생명이다.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 자체가 부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체가 생명입니다. 그래서 부활자체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체가 부활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살아서 생명 자체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부활, 예수님=생명이라는 이 개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이쿼얼(equal) 부활, 예수님 이쿼얼(equal)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부활을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부활 그 자체이며,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부활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부활 그 자체이며,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첫째, 사나 죽으나 같은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나는 부활 그 자체이며, 나는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나를 믿는 너희들은 죽어도 살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죽어도 사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바로 부활이며,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사는 존재인 우리에게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동일하게 예수님의 것이고, 사나 죽으나 우리는 동일하게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고, 사나 죽으나 우리는 동일하게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 가운데 처하든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업에 성공하나 사업에 실패하나 다른 것이 아니에요. 부자로 사나 가난하게 사나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 하나 공부를 잘 하지 못하나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가운데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사업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는 다른 삶이 아니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험 성적이 좋든 나쁘든 우리는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학진학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생활환경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다릅니다. 사업에 성공할 때와 실패할 때가 너무 달라요. 그 마음자세가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이 다르고 믿음 생활이 달라요.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면 그 이전과 너무 달라요. 자기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부모를 탓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자세가 너무 다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항공업계, 자영업자, 학원가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부활 그 자체이시고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사는 존재이며, 경제적인 상황이 어떻든 간에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그러한 존재들입니다.
코로나19로 외부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외부적 환경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둘째로, 부활 그 자체이며,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부활이고, 예수님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삶 자체가 부활을 살아가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첫 출발은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이 영생을 얻는 첫 출발점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이 영생의 첫 출발이고, 지금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현재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그 삶 자체가 다 귀합니다.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좋은 직장에 다니든 그렇지 않든, 사장으로 있든 종업원으로 있든, 주인으로 있든 종으로 있든,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어요. 다 소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재 영원한 생명, 영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영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겠습니까?
코로나19, 현재의 상황을 넉넉하게 이겨낼 줄 믿습니다. 다들 힘들어요. 외국의 상황은 더더욱 심각합니다. 코로나19로 검사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시신들을 길거리에 방치하는 나라도 있고요, 우리가 알기에 선진국이라는 나라조차도 완전 코로나19로 초토화되고 있어요. 그러한 환경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도 그런 상황을 넉넉하게 이겨내겠지요. 그런데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안전하고 나은 상황에 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19로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절망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은 자신의 삶이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7:6절을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 영생이라는 삶을 소중하게 살아내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의 영역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몸을 함부로 해서도 안되고, 여러분의 입을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되며, 여러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묻자 마르다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주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전도에 대하여 흔히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면서, 때로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선행도 베풀면서,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 봉사하고 살아가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괜찮은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삶에서 전도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 잘 드리고, 가난한 사람 도와주고, 직장생활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편하지요. 이렇게만 살아가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제법 괜찮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편안하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습니까? 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위로합니다.
‘나는 제법 괜찮은 신앙인이다.’
믿음이 좋은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삶이 제법 괜찮은 신앙인의 삶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평안하게 사는 것을 위해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하여 선택받았고,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입니다. 직장을 열심히 다니고, 착하게 살든, 남을 도와주든, 무엇을 하든지 최종적으로 그들이 살았던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혼구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혼을 구원할까? 어떻게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할까? 바로 전도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하는 삶.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부활을 살아낸다는 것은 언제나 생활가운데 기회가 되기만 하면 복음을 전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을 주신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일을 했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손해도 감수해 냈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웃들을 도왔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억울함도 참아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였습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당신은 왜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도 돌려대고, 누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합니까?
그 이유를 묻는다면 바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 커서 그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지만 나의 삶으로 조금이라도 다른 분에게 그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당신은 왜 주일마다 교회에 갑니까? 이렇게 화창하고 놀기 좋은 날 야외에서 놀지 않고 당신은 왜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교회에 갑니까?
이렇게 질문할 때마다 나는 광신자도 아니요 맹신자도 아니요,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을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라워서 배은망덕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교회에 가노라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편하게 살라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편하게 예수 믿고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라고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나의 삶이 편하지 않다고 하여서 잘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내가 잘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편하게 살면 좋지요. 저도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돈도 많으면 좋겠지요.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사고, 아이들 과외도 마음껏 하게 해주고, 학원도 보내주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여서 잘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편하게 넉넉하게 살지 못한다고 기죽지 마세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아무리 편하게 살든, 아니면 나의 삶이 고통스럽든 내가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 사는 것입니다.
부활 그자체이시며,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가운데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내야만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부활 그자체이며,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나 죽으나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힘든 상황이나 즐거운 상황이나 우리는 동일하게 같은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나 평안하고 즐거울 때에나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그 마음은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영원히 사는 삶, 영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 영생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알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망하거나 포기하면 안됩니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나의 삶이 즐겁든지, 나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든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재벌이 받는 동일한 은혜를 그리스도로부터 입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편안하든지, 고단하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항상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내야만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평안을 드러내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기쁨을 드러내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드러내십시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2020년 부활주일이 오늘 우리에게는 뜻깊은 부활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2020년 부활주일을 가정에서 부활의 기쁨을 나누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부활을 날마다 살아내는 삶을 살게 하시어 사나 죽으나 주님을 향한 같은 마음을 갖게 하시고, 영생을 살아내는 소중한 삶을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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