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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이루는 삶
강동협 2020-04-04 추천 0 댓글 0 조회 746
[성경본문] 마태복음21:1-11 개역개정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말씀을 이루는 삶

 

202045일 창원더사랑교회 종려 주일 설교

(by 강동협 목사)

 

본문: 21:1-11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을 때 가족들끼리는 더욱 가족끼리 더 가까이두기를 하면 어떨까요? 부부간에 더 가까이, 부모와 자녀간에 더 가까이, 형제간에 더 가까이하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코로나19를 통해서도 나 자신을 향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를 통해 나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그의 구원사역의 마지막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호한 사실을 기념하는 주일로써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이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 앞에 있는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두 제자를 부릅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을에 가면 나귀와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어 있을 것인데 그것을 풀어서 내게 끌고 와라, 누가 왜 그것을 끌고 가냐고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다고 해라 그러면 즉시 보내줄 것이다.”

 

그래서 두 제자가 마을에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나귀와 나귀새끼를 끌고 오자 제자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고 예수님을 그 위에 태우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베어서 길에 펴고,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12:13), 어떤 사람은 앞에서, 어떤 사람은 뒤에서 소리 높여 찬송을 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요한복음 12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호산나는 주께 간구하오니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왕으로 알고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본문으로 하여서 말씀을 이루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도착하셨습니다. 감람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입니다. 언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감람산에 버스가 도착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니까 바로 예루살렘성이 아래에 보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이 있던 자리에 이슬람의 모스크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데 누가 설명하지 않으면 그 모스크가 예루살렘 성전 같습니다. 거기에서 예루살렘 주변의 지형을 설명해 준 다음 천천히 걸어 내려갑니다. 그러니까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성은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감람산에 도착하니까 무엇을 찾았습니까? 나귀를 찾았어요. 왜 예수님께서 나귀를 찾았을까요?

다리 아픈 것도 아니고 그냥 걸어가면 될 거리를 30대의 젊은 예수님께서 굳이 나귀를 찾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오늘 본문 4,5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가서 나귀를 갖고 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첫 시작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면서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유독 마태복음에는 오늘 본문 21:4절에 나온 말씀처럼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라는 구약인용구가 10회에 걸쳐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꿈나무들이 암송하고 있는 구절로 본다면

마태복음 1:21-23절 말씀,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4:13-16절 말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서 가도 될 길을 굳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고자 한 이유는 바로 구약에 자신을 향한 예언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큰 은혜와 도전을 받고 오늘 설교제목을 말씀을 이루는 삶이라고 정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자신과 관련하여 예언된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바로 그런 삶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이루는 삶.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성경에 우리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처럼 그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매우 놀랍습니다.

 

몇 가지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7절 말씀을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군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불려진다는 사실은 엄청난 특혜입니다. 옛날에는 조선 시대만해도 왕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쓸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이름조차도 우리는 그대로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이름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는 홍, 길자, 동자를 쓰십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호와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도나이(주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의 이름으로 불려집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향하여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처음부터 매우 존귀한 존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창조된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사람으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말씀을 이루어내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평생 질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의 삶은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인가? 나는 과연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하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하면 흔히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사업에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명예와 권세를 얻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명제는 바뀌지 않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여도, 결혼생활에 실패하여도, 건강을 잃어버려도, 명문대학에 들어가지 못해도, 공부를 못해도,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환경가운데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내시겠습니까? 그것을 날마다 질문하면서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의 정체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입니다.

 

예수님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향하여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배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들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겔 47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온 물이 아라바 바다 곧 염해 오늘날의 사해로 내려가서 그 흐르는 물이 죽어있는 바다인 사해 바다의 물을 되살리고, 그곳이 그물 치는 곳이 되겠다는 예언입니다.

 

47:8-10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위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고 그물치는 곳이 될 것이라는 이스라엘 회복의 말씀은 왜 예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부를 그들의 제자로 삼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킨다는 것,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써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물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께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부르심을 받은 존재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그물 삼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굳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하겠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가 있어!” 이렇게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도 충분히 나귀새끼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굳이 걸어서 가도 되는 길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일부러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굳이 어부가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한명 전도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예배드리고, 착하게 살아가면서 충분히 이웃들에게나 혹은 다른 이들로부터 칭찬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말씀을 이루어 가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을 이루어 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47장의 말씀처럼 강가에 어부가 선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회복을 암시하듯이 당시 어부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강가에 선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원역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생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제자라 부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린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가 제자답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에는 두 가지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복음 전파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다시 제자를 낳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19,20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처럼 제자는 제자를 낳아야 합니다. 바로 복음전파이지요. 이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제자의 삶 두 번째는 바로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3:34,35절 말씀에,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이 예수님의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도구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5장에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요,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만이 열매를 많이 맺게 되고,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가족을 사랑하세요. 가족은 가장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에게 소홀히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보다 더 소홀하기도 합니다. 가족 간에 불화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가족은 무조건 믿어주고, 속아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 부부간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피를 준 자녀보다 더 진한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부로 가족 간에는 무조건 화해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느껴보세요. 가정 안에서 천국을 느껴 보세요.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세요.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함께 믿음생활을 하는 형제자매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싸우면 안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관용하십시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이웃 사랑하기를 실천해 나갑시다. 앞으로 우리 교회안에서 어떻게 이웃사랑을 실천할 것인가? 서로 의논도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라를 사랑합시다. 물론 이웃사랑이 곧 나라사랑입니다. 지금과 같이 코로나19로 정부가 협조를 구할 때는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나라사랑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대통령과 정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나라사랑입니다. 정치적인 이념을 뛰어넘어 우리는 항상 대통령과 정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말씀을 이루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경에 우리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성경에 우리의 이름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의 삶에 대하여 기록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저는 이것을 생각하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삶을 살아내는 삶,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살아내는 삶,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랑하는 삶을 살아내는 삶. 이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우리의 삶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성경에 우리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내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오늘 말씀을 이루는 삶이라는 설교 제목처럼 성경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며, 서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 가정이 더더욱 사랑하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우리교회가 더더욱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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