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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
강동협 2024-12-22 추천 0 댓글 0 조회 87
[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 개역개정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

 

20241222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설교

마태복음 1:18-25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 대림절 네 번째 주일에는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보는 것처럼 천사가 요셉에게 예수님 수태 고지를 하는데,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이심이라

 

아들을 낳을 것을 고지하면서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뜻을 설명합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물에 빠진다면 지푸라기를 잡겠습니까? 안 잡겠습니까? 물에 빠지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그 어느 누구도 지푸라기를 잡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지푸라기를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게 됩니다. 그것이 실제로 물에 빠진 사람과 물에 빠지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삶의 비참함을 경험한 사람은 그 비참함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예를 들면 질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허리디스크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허리디스크로 고통을 받기 전까지는 허리디스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몰랐어요. 주위에서 허리디스크 걸렸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요? 그러나 그 고통은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디스크에 걸려보니 얼마나 삶의 질이 떨어지는지 몰라요. 양말도 제대로 신을 수가 없고요, 바지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어요.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도 너무 아파서 그것도 힘들어요. 그래서 디스크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디스크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그 기쁨을 몰라요. 그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는다는 것도 그러합니다.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죄에서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죄의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 죄의 비참함을 알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 죄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겁니다. ,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모른다는 겁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몰랐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몰랐습니다. 단지 그들이 겪었던 비참함은 로마의 식민지배로 있는 식민통치하의 비참함이었고, 가난에서 오는 비참함이었고, 질병에서 오는 비참함이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겪게 되는 여러 환경에서 오는 비참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자신들의 겪는 고통과 어려움으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러한 능력있는 메시야가 나타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고, 그들의 눈에 바로 예수님이 그런 메시야로 비쳐진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하던 대로 예수님은 가난과 질병과 로마식민통치하의 고통에서 구원해 줄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많은 기적들을 경험하였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고 예수님께 열광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셨다. 우리들의 왕이 나셨다. 그들은 기뻐했고, 예수님이 어서 임금이 되어서 자신들을 로마의 지배에서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은 그들을 로마의 식민지배로부터 구원해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예수님이 로마의 식민지배로 있는 유대인의 구원자가 아니라 죄에 빠진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온 세상이 다 죄로 고통가운데 있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어느 한 사람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고, 그 결과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피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 죄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서로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형제들끼리도 싸우고 죽이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형제간에 서로 싸우고, 집안끼리 서로 싸워서 원수가 되고, 나라끼리 서로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죽이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기근으로 죽어갔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북한의 김일성이 북한 주민들과 약속한 지상낙원이 하얀 쌀밥과 고기국을 먹게 해주겠다는 말이 통할 정도로 그만큼 가난으로 고통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6.25전쟁이 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미워하고 지금까지도 서로 미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미움과 원망과 불평과 질투와 분쟁은 다 죄의 결과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 지은 어느 누구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출생의 방법을 달리하게 하였습니다.

 

남녀간의 유전적인 방법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동정녀인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참인간이시지만 죄가 없으신 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수 있느냐? 그건 말도 안된다. 그러면서 기독교를 이상한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처녀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정상적인 남녀 간의 유전적인 방법으로 태어났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어느 누구도 우리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그러하고, 공자가 그러하고, 소크라테스가 그러하고, 마호메트가 그러합니다. 인간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는 그 어떤 피조물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자는 신성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성의 능력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해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자는 신성의 능력을 갖춘 참 하나님이셔야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그 어떤 피조물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수 있는 존재가 없고, 그 어떤 피조물도 의와 생명을 획득하여 우리에게 그 의와 생명을 돌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죽음에서 부활하여서 우리에게 의와 생명을 돌려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12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아멘!

 

,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우리가 받을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구속했다고 합니다. 구원할 구, 값을 치룰 속,

그래서 구속했다는 말은 값을 치루어 구원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속량했다는 말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종의 몸 값을 치루어서 양민이 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종, 죄의 노예를 값을 치루어 자유하게 했다는 말이 바로 속량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구원했다는 말이 바로 죄의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노예가 가장 바라는 일이 무엇일까요? 노예의 신분에서 놓임을 받는 것 곧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우리가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 우리가 종살이를 안해봤기 때문에 이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종의 삶, 노예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우리가 잘 몰라요. 죄의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얼마나 크고 고마운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의 비참함을 지옥불이라는 단어로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을 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지옥불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그 지옥불이 얼마나 끔찍하냐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9:43-48)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25:41)

 

이 지옥을 사도요한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불못입니다. 이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다 이 지옥에 던져지는 데, 이 지옥은 우리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이 지옥에 대하여 경고하고, 우리에게 이러한 끔찍한 지옥이 아니라 우리에게 천국의 삶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지옥의 비참함을 알아야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지옥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야 못할것이 무엇입니까? 뭐든지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감사할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이 지옥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감사한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그것도 그냥 한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하는 희생을 치르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다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사실을 머리로 아는 사람과 이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머리로만 아는 사람은 아무런 감동이 없어요. 그래서 그냥 교회에 나와 습관적으로 예배하고, 그의 삶에 큰 감사가 없어요. 별로 삶의 큰 변화도 없어요.

 

반면에 이 사실을 가슴으로 아는 사람은 마음에 큰 감동이 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을 생각하면 마음에 큰 감사가 있고, 눈물이 나요. 그리고 마음에 결단을 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살아야겠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 사람의 삶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게 됩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왕좌에 앉게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인 지옥에 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기꺼이 당신의 목숨을 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서..

 

그래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 자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합니까? 그리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귀합니까? 예수님의 목숨과 바꾼 우리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행하게 살면 안됩니다. 모두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마음에 큰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하고, 다른 그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과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 살아야 하고, 우리의 삶에서 천국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 대림절 넷째 주일을 맞아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과 인생을 감사로,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우리의 삶을 천국복음의 전파자로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을 입었는지 모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더욱 우리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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