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6:5-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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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
12월 1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설교
요 6:5-15절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림절(기다릴 待(대), 임할 臨(림))은 다른 말로 대강절(기다릴 待, 내릴 降(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 주일이니까 대림절기와 성탄절기에 대하여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로마제국이 훗날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게 되면서 교회도 서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와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오늘날 투르키에의 이스탄불)을 위시하여 예루살렘과 안디옥,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로 나눠지게 됩니다(1054년). 그래서 오늘날 천주교회와 개신교는 서방교회 전통이고, 러시아 정교회, 이집트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등은 동방교회 전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탄절 날짜를 정하는데 있어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나눠지기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마지역과 동로마지역이 처음부터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교황 율리우스1세(337-352년)때부터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켰고, 훗날에 동방교회 본산인 콘스탄티노플, 안디옥, 예루살렘 등의 지역에서는 380년부터 1월 6일(주현절)을 성탄절로 지키기 시작했는데, 로마교회의 강력한 권유로 431년 에베소공의회의 결정에 따라서 동로마지역에서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1월 6일은 예수님의 현현일(예수님이 나타나신 날)로 분리하여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에 따라서 1월 6일 주현절을 ‘작은 성탄절’ 또는 ‘옛 성탄절’이라고도 부르게 되었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나눠진 이후로 오늘날에는 러시아 정교회나 세르비아 정교회에서만 현재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력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림절은 성탄절과 주현절을 준비하는 절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마치 부활절에 앞서서 사순절이라는 준비 기간이 있듯이, 성탄절과 주현절도 대림절이라는 4주간의 준비기간이 있다라는 겁니다.
대림절은 이렇게 성탄절인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의 탄생만을 축하하는 절기만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즉 심판주 혹은 재림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점검하는 절기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역사적으로 대림절을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에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으로 이 절기를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림절 첫째 주일을 맞아서 어떤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할 것인가? 기도하면서 올해 2024년 대림절 기간에는 예수님의 사역에 맞춰서 말씀을 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오병이어 사건을 살펴보면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요한복음 본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이적사건이 7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이 이적이나 기적이라는 단어대신에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적 혹은 기적이라는 용어와 표적이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비슷하지만 약간 강조점이 다릅니다.
어떤 차이가 있냐면?
이적이나 기적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거나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 기적이 일어났다. 이적이 일어났다하고 하지요.
반면에 표적은 어떤 것입니까? 표적도 놀라운 일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적이나 기적과 같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표적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말하려는 것을 증명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어떤 기적을 행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바로 표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7개의 표적이 소개되고 있는데,
가나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를 만든 사건(2장)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료한 사건(4장)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한 사건(5장)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인 사건(6장)
예수님이 물 위로 걸으신 사건(6장)
실로암 맹인 치유 사건(9장)
나사로 살린 사건(11장)
이렇게 7대 표적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표적을 통하여 무엇을 나타내고자 함인가?
요한복음 20:30-31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이런 표적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예수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온 7대 표적 중에 대부분이(5개)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표적들입니다. 그런데 이 오병이어 사건은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오병이어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에 나온 오병이어 사건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보면 이 때가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배가 고플 때가 된 겁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러자 빌립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각 사람이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데나리온으로 떡을 사서 준다고 하더라도 떡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빌립은 굉장히 계산이 빠르고 현실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엇을 시험하기 위함입니까? 빌립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그 믿음을 시험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보이지 않고 아주 현실적인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자신이 할 일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6절 말씀을 보니까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를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다만 빌립이 어떻게 하나 시험하기 위하여 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빌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백데나리온으로 떡을 사서 주더라도 모자라겠습니다. 어쩌면 빌립은 당연한 말을 한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러니까 빌립의 말은 뭡니까? 네.. 이백데나리온 정도 떡을 사서 조금씩 주면 빠듯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굉장히 계산에 빠른 빌립의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한 예수님이 원하는 답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안드레가 예수님께 말을 합니다. 무엇이라고 합니까?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가 참 지혜로운 제자입니다. 지금 안드레는 딱 예수님이 원하는 답변을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려고 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원했을까? 아마도 빌립은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눈에 보이는 대로 평범한 답변을 한 겁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무얼 기대하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예수님께 무언가를 기대합니다. 제자들이 많은 표적을 봤잖아요. 그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인지 점점 더 확신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지금 자기들에게 이백데나리온이 어디 있습니까? 돈이 없잖아요. 그러면 빌립의 답변은 현실성이 없는 답변인 것이지요. 그런데 안드레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답변을 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다 먹이실수 있으시겠지요?)”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안드레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안드레의 말을 듣고 드디어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한 마디로 멍석이 깔린 겁니다. 멍석이 깔렸으니 한번 놀아야지요.
이 사람들을 앉게 해라. 누가복음 보니까 오십명씩 백명씩 무리를 지어 앉게 했습니다. 앉아보니까 몇 명입니까? 5천명입니다.
다 앉게 하고 떡을 가지고 감사기도를 하고 나눠주는데, 어떻게 나눠줬습니까? 그들이 원하는대로 나눠줬어요. 떡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이 원하는대로 배불리 먹도록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버리지 않고 모으니까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찬 겁니다.
그 다음이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이 내용이 오늘 요한복음에 나온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자, 그러면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빌립의 믿음을 시험한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세요. 예수님은 당신이 행할 일을 이미 알고 계셨어요.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어떻게 하실 지를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다 해주시지 않으시고 모든 일에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이런 사안에 대하여 강동협 목사는 어떻게 행동하나? 김병수 장로는 이럴 때 어떻게 하나? 김영준 장로는 이럴 때 어떻게 하나?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이 믿음의 시험에 빌립은 50점, 안드레는 100점을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한 믿음의 시험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서 5000명을 먹이라 이것이 아니었고,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해답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어요.
100점으로 통과한 안드레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하는 말이..
한 아이가 보리떡 5개와 물고리 2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주님 이것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지요? 이것이 시험 통과 답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렇다고 불안해 하지 마세요. 시험통과하지 못했다고 야단치지 않으니까..예수님이 빌립을 야단치지 않았잖아요. 이 시험을 통해서 빌립의 믿음도 굉장히 좋아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시험을 받으면 통과했든지 실패했든지 상관없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믿음의 시험을 한다고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은 우리를 야단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더 성장하게 하고, 우리를 칭찬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우리가 믿음의 시험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몰라요.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하나님의 테스트인줄 모르니까 그런 상황을 겪었어도 나에게 아무런 믿음의 진보가 없는 겁니다.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어도 어떤 사람은 그 상황을 믿음의 진보의 기회로 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테스트는 성공해도 유익하고, 실패해도 유익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실패했어도 믿음의 진보의 기회로 삼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이든지 그 상황은 우리의 믿음을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이유는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자신이 행한 일을 제자들이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당신이 귀신을 쫒아내셨으면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셔서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으면 제자들에게도 치유의 은사를 주셔서 병자를 치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셨으면 제자들도 당신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셨고, 사람들을 용서하셨으면 제자들도 용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으면 제자들도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어요. 마찬가지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오천명을 먹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실제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당신이 하신 모든 일들을 우리가 다 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십니다. 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오천명을 먹이기를 원하세요.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우리 어린이, 청소년,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꼭 오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오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겠는가?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됩시다.”
저의 이야기를 잠깐 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사람에게는 항상 용돈을 줍니다. 그냥 보내는 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과거에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제가 아는 다른 교회 목사님 인사차 잠깐 그 교회에 들렸는데 그 목사님이 휴가 나온 저에게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몇 만원을 주셨어요. 저는 그 때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목사님 교회의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인사만 하고 어깨만 한번 두들겨 주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저에게 몇 만원을 주셨어요. 그 때 일을 기억하면서 저는 목회를 하면서 항상 군대에서 휴가 나온 청년들에게는 단 돈 얼마라도 꼭 쥐어줬어요. 제가 만난 휴가 나온 청년이 한명이겠어요. 두 명이겠어요. 세 명이겠어요? 저는 평생에 딱 한번 받고... 주는 것은 휴가 나온 청년을 만날 때마다 주는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휴가나온 청년들을 만나면 그 때도 저는 주머니를 항상 열겁니다. 저는 딱 한번 받고 30배, 60배, 100배로 갚는 겁니다.
지난주에 감귤을 보내오셨던 제주성산교회 김명식 목사님, 제가 수능(학력고사)을 보기 전날, 목사님이 저에게 시험 보러 학교에 어떻게 갈 것이냐?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혼자 버스타고 갈 계획이었습니다.
제가 버스타고 갈 거라고 하니까 목사님께서 당신이 학교까지 태워주신다면서 시험 당일 날 교회봉고로 저를 태워다 줬어요. 저는 이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제가 이 얘기를 아내에게 몇 번이나 했어요. 그 은혜를 잊어 버릴 수가 없어요. 차 한번 태워다 준건데..목사님의 그 선행이 잊혀지지 않고 제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명절이 되면 우리 목사님께 과일 선물을 보냅니다. 딱 차 한번 얻어 타고 해마다 일년에 두 번씩(추석, 설날) 제주도로 과일 선물을 보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어떤 집사님 부부가 저에게 매달 5만원씩 용돈을 주었습니다. 사람 키운다고 마치 선교사 후원하듯이 교회 청년인 저에게 매달 5만원씩 몇 년간을 그렇게 용돈을 줬어요.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그 분을..이 분이 나중에 이단 교회에 가고 나서 저와 연락이 끊겼지만 그러나 제가 이 분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반드시 이 분에게 은혜를 갚겠노라 다짐하고 있어요. 이 분의 자녀에게 주든지, 아니면 손자에게 주든지, 이분의 후손에게 반드시 몇 배로 갚겠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아직 갚지는 못했지만 제가 그 분을 잊은 적이 없어요. 반드시 갚을 겁니다.
지금까지 교회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면서 저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이 너무 많아요.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람들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 은혜를 다 갚을 길이 없어요. 그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기억하고 살면 오천명, 만명, 수십만명을 먹이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베푸는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어요. 차 한번 태워주고, 밥 한번 사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에요. 교회에서 어른들이 주는 용돈, 천원, 오천원이라도 당연한 것이 아니에요. 사랑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5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오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됩시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됩시다.
셋째, 선한 일을 한 후에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자 이 표적을 보고 사람들이 알게 되었어요.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사람들이 다 우러러봤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분을 임금으로 삼자..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알고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서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 사람들이 인정을 해줍니다. 칭찬을 하고, 높은 자리를 줄라 그럽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찬하고 높은 자리를 준다고 그 자리에 덥석 앉아서 권세를 누리면 안되는 겁니다. 모든 영광을 누구에게 돌려야 합니까? 모든 비난은 내가 받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선한 일을 하고 난 후에는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대림절 첫째 주일을 맞아서 오병이어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둘째, 우리도 예수님처럼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자
셋째, 선한 일을 한 후에는 겸손한 사람이 되자. 모든 비난은 내가 받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자.
이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잘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우리도 오천명을 먹이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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