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0:35-4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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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섬기러 오신 예수님
2024년 9월 15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막 10:35-45절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지난 주일에는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무엇을 하든지 그 자체가 다 전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과 처지를 공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지 그 삶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전도’인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그들을 돕는 삶을 살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성경에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본 마가복음 1:38절에는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3: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고 오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10절 말씀을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고,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4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우리 다 함께 마가복음 10:4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이렇게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여러 모양으로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가? 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한 방면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알아보았고, 오늘은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45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자, 이제 예수님 시대로 넘어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은 어떤 배경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습니까?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민족을 구원할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 자리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먼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자리를 요구합니다.
3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냅니다.
그러니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당신이 임금이 되는 날에 우리를 좌의정, 우의정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하자..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따지는 겁니다.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자리 싸움이 난 겁니다.
마가복음 10: 40절, 4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사실, 열두 명의 제자들 모두가 다 예수님께서 정치적 메시야가 되는 날, 다 한자리를 꿰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 용기를 내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부탁을 한 것이지요.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소서..그러자 다른 열명의 제자가 화가 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42절부터 4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기에서 인자라는 용어는 메시야를 가리키는 또 다른 호칭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인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내가 온 것은, 메시야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셔서 이 세상 임금이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리를 청탁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읽다보면 참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자리 청탁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3,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고...그들이 예수님을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는 말씀..이렇게 수난예고를 한 다음에 바로 이 자리청탁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이 수난 예고도 처음 한 것이 아니라 세 번째 하는 겁니다. 마가복음 8장에 1번, 9장에 또 1번, 10장에 1번 그러니까 세 번째 수난예고를 한 것인데도 예수님의 수난예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자리싸움만 하고 있는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겁니다. 꼭 우리와 같습니다. 우리도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잖아요? 듣기 싫은 것은 귀 닫아 버리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제자들도 보십시오. 자기가 갖고 있는 메시야관이 있어요.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할 메시야입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이 메시야관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셔도 제대로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리청탁이나 하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게 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보다 얼마나 좋아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헤멨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게 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너희들도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보다 큰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려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바른 사람입니까? 바른 사람과 바르지 못한 사람을 분별해야 하잖아요. 바른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면 엉뚱한 사람을 따르게 됩니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난 인생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바른 지도자를 만나고, 바른 사람을 만나야지요.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는 불쌍한 양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바른 사람입니까? 섬기는 사람이 바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려는 지도자는 백퍼센트 가짜입니다. 그 사람이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종교인이든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사람은 바른 지도자가 아니거나 가짜입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은 모두가 다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지도자이거나 앞으로 지도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 지도자이고, 사회에서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우리도 이 땅에 살아가는 날 동안에 우리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삶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바로 섬겨야 합니다.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순간 그 목회자는 이미 목회자로서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장로이든, 집사이든, 권사이든 대접받으려 하고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순간 성도로서의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교는 세상을 바로 섬겨야 됩니다. 교회가 세상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순간 교회의 생명력은 상실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교가 되는 순간 교회와 정치가 손을 잡게 되고 교회는 사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위에 군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세교회를 보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순간부터 교회는 점점 부패해지고 타락하게 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교회의 생명력은 바로 세상을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의 섬김은 이 사회에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대속물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대속하다, 구속하다, 속량하다. 이런 말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요? 이 용어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속이나 속량이라는 용어는 다음 기회에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 본문에 나온 대속물이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대속이라는 말은 한자로 보면 대는 대신 할 代자에, 값을 치른다는 의미의 贖(속바칠속, 죄를 면하기 위해 돈을 바치다)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값을 치루었는데 무엇으로 대신 값을 치루었습니까? 예수님이 자기 목숨으로 대신 값을 치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값을 치렀는데, 돈으로 값을 치른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으로 그 값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15:13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자기 목숨으로 그 값을 대신 갚아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복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단순한 섬김이 아닙니다.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그런 수준의 섬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바로 자기 목숨을 내 주는 겁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우리가 죄로 인하여 받을 사망의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자기 목숨으로 그 값을 치루어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예수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이 되었을 때 한 자리 꿰찰려고 자기들끼리 자리싸움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이 어리석은 모습을 기억하고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사실들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얘기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기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서로 자리싸움하고 서로 으뜸의 자리에 올라가려 하고,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들 그렇게 으뜸이 되고 싶으냐? 그렇게 큰 사람이 되고 싶으냐? 높은 자리에 앉아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으냐? 그러나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는데 너희들은 오늘날 어떻게 살 것이냐? 그것이 오늘의 설교 포인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처럼 항상 섬김의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섬김의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생명력 있는 기독교인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섬기러 오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 섬기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우리의 믿음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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