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스바냐3:11-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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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남은 자로 살아가는 은혜
2024년 7월 28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스바냐 3:11-17절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지난 주에는 하박국을 본문으로 하여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은 스바냐를 본문으로 하여서 “남은 자로 살아가는 은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제 설교가 이달의 성경읽기에 맞춰서 본문을 정하고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제 설교를 들으면서 이달의 성경읽기를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30분 정도의 설교내용으로는 우리가 읽고 있는 이달의 성경읽기의 본문을 다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이달의 성경읽기를 하면서 유투브에 개관 영상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바냐 개관, 하박국 개관 이런 식으로 검색을 하면 성경읽기에 도움이 되는 유투브의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참고하시면 성경읽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스바냐는 스바냐 1장 1절을 보면 요시야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시야왕은 선한 왕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종교부흥을 이끌었던 선한 왕입니다. 그래서 스바냐서를 읽다보면 그 내용이 요시야왕 때의 시대적 배경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받을 겁니다.
자, 그러면 구체적으로 스바냐서의 배경은 요시야 왕 재임 기간 중에도 언제 한 예언일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시야왕은 8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8살에 왕이 된 요시야가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어렵지요? 8살이면 우리교회 성온이가 지금 9살이고, 소율이가 7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소율와 성온이 정도의 나이에 요시야가 왕이 된겁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도 잘 모르던 나이였습니다.
자 그러면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 사회적 종교적 상황이 어떠했는가? 요시야의 할아버지가 므낫세왕인데, 이 므낫세왕은 남유다왕 중에도 가장 악한 왕입니다. 남유다의 가장 악한 왕으로 두 사람을 꼽으라면 아하스왕과 므낫세 왕을 꼽을수 있습니다. 무려 므낫세왕은 통치도 오래했습니다. 55년간 통치했어요. 므낫세왕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왕 중의 한명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가 히스기야왕이거든요. 그의 아버지가 히스기야왕인데, 얼마나 선한 왕입니까? 그런데 이 므낫세는 아버지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섬깁니다. 그것도 그 제단들을 여호와의 전 마당에 제단들을 쌓고 하나님을 섬기라고 한 장소에서 우상들을 섬깁니다. 게다가 이방종교를 따라 그의 아들들을 불 위로 지나가게 합니다. 그러니까 인신제물을 드린 겁니다. 그리고 점을 치고, 사술과 요술을 행하게 합니다.
왕이 그렇게 하니 온 백성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온 백성이 따라한 것이지요. 무려 므낫세 통치 55년간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합니까? 요시야왕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했고, 이제 아버지 아몬왕은 2년간 므낫세왕과 똑같이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신하가 반역해서 왕을 죽이게 되고, 요시야가 왕이 된겁니다. 그것도 8살에..
그러니 사회가 얼마나 어지럽습니까? 갑자기 아버지가 신하에게 죽고, 대신 왕이 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보면 무려 57년간을 우상숭배가 온 유대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57년이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가 일제 식민 치하에 35년간 있었는데, 무려 57년간을 우상숭배가 온 유대를 지배한 겁니다. 여호와의 전에 우상들이 세워져 있고, 나라 곳곳에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이 세워져 있는 겁니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시야왕은 이제 나이가 8살 밖에 안되어 있고..
그러면, 요시야왕은 언제부터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정체성을 갖고 나라를 다스렸는가? 역대하 34장을 보면, 왕위에 앉은 지 8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되고 8년간은 하나님을 제대로 모른 겁니다. 그러다가 16살이 되는 해, 왕이 된지 8년이 되는 해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겁니다.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어요. 16살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무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러다가 4년 후 왕이 된지 12년에, 그러니까 요시야왕이 20살이 되었을 때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을 제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대적인 우상제거작업을 하게 됩니다. 온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우상 제단들을 허물고 우상들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모든 태양상을 찍어 내 버립니다.
자, 그러니까 스바냐서가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잖습니까? 바로 요 때입니다. 굳이 기간을 말하자면 요시야가 왕이 된 8세부터, 다시 8년 후에 요시야가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4년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그 사이에 선포된 말씀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자, 그러니까 여러분 스바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입니까? 스바냐는 왕족입니다. 요시야왕이 히스기야의 후손인 것처럼 스바냐는 히스기야왕의 4대손입니다. 왕족인 스바냐가 선지자가 된 것을 보면 히스기야왕 때부터 아마랴 그다랴 구시 스바냐로 이어지는 믿음이 잘 전수된 선지자이고, 요시왕은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로 이어지는 믿음이 전수가 안된 가문입니다.
그래서 스바냐는 요시왕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왕족인데, 스바냐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아마도 스바냐는 그의 증조할아버지때부터 남유다의 부패하고 타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타까움에 대하여 계속 전수가 되었을 겁니다. 히스기야의 아들이 므낫세라면, 스바냐의 증조할아버지인 아마랴도 히스기야의 아들이었겠지요? 자, 그런데 므낫세왕이 저렇게 악한 왕이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스바냐의 증조할아버지인 아마랴는 온 나라가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굉장한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안타까움이 그의 아들인 그다랴에게 전수되고, 구시에게 전수가 되고, 다시 스바냐에게 전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바냐는 요시야왕과 같은 왕족으로서 요시야왕에게 그런 안타까움도 전하고, 이런 예언의 말씀들을 전했을 겁니다. 요시야가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이 꼭 스바냐 때문이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요시야가 16살에 여호와를 만나게 되고 4년후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데에는 이 스바냐 선지자의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자, 그러면 요시야왕에게도 전해졌던 이 스바냐서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날’ 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심판과 구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남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오직 은혜로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잘나서 남은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악 심판 가운데에서 심판으로부터 보호해 주셨고, 심판으로부터 숨겨주신 사람입니다. ‘스바냐’의 이름이 원래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숨겨주셨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바냐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숨겨주신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남은 자입니다.
이 ‘남은 자’ 사상은 성경 전체적으로 흐르는 구속사적인 흐름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통해 당시 땅위에 만연된 죄악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면적인 세상의 홍수를 통해 온 세상을 심판했는데 그 가운데 누구를 남겨두셨습니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던 아브라함의 가족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여 남겨두셨습니까?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게 하셨고,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심판할 때에도 그 가운데 누구를 구원하셨습니까? 소돔과 고모라를 완전히 멸망시켰지만 그 가운데서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가 있었는데, 당시에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까?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할 정도로 우상 숭배자가 많았고, 아합왕이 엘리야 선지자를 얼마나 많이 핍박했습니까? 심지어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이 엘리야를 죽이려고도 합니다.
백성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제 자기만 남았고, 이제 자기도 그들이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은 칠천명을 남겨두었다”.
지금 스바냐 가문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왕족들 중에 스바냐 가문을 남겨두셔서 이 스바냐를 통해 요시야왕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큰 역할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은 남은 자에 대하여 남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바로 스바냐서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날에 심판도 심판이지만 심판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남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심판가운데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심판 가운데서 숨겨주시고자 하는 자가 있다. 그들이 바로 남은자인데 너희들은 남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남은 자가 되겠고, 남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남은 자는 오직 여호와를 찾는 사람입니다. 스바냐 2장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여러분, 이 스바냐의 외침이 얼마나 절절한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온통 주위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므낫세 왕으로부터 시작된 우상숭배가 무려 57년간 지속이 되었습니다. 왕으로부터 우상숭배가 시작되었으니까 우상을 섬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고, 왕따 당하는 것이 정상인 세상입니다.
그러니 백성들도 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 하늘의 신들에게 분향하고 자기자식들을 인신제사로 바치고 하던 시대였습니다. 좌우를 둘러봐도 그런 사람만 보이고 그 어디에도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엘리야도 백성들로부터 죽음의 협박을 당하면서 다른 선지자들은 다 죽고 이제 자기만 남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은 자 7천명을 남겨두었다.
지금 이 스바냐도 엘리야와 같은 그런 심정일 겁니다. 자기 눈에는 하나님을 찾는 백성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만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직 숨어서 드러내지 않고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백성들이 아직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스바냐가 외치는 것이니 얼마나 그 외침이 절절하고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이 메시지를 듣고 누구 돌아오겠느냐만은 혹시라도 아직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며 여호와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듣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남은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가장 먼저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인생 살다보면 힘들잖아요? 그 때 무엇을 찾아요?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무엇을 찾습니까? 가장 먼저 술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술을 마시면 잠시라도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술을 찾아요. 그리고 인생이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는 자신이 가장 많이 의지하고 있는 대상을 찾게 마련입니다. 부모님을 의지하면 부모님을 가장 먼저 찾고, 친구를 의지하면 친구를 가장 먼저 찾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생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누구를 찾아야 합니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기도응답으로 부모를 찾고, 친구를 찾는 것이지 가장 먼저 부모를 찾고 친구를 찾고,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누구를 찾으라고요? 하나님을 찾으세요. 그런데 하나님이 생각이 안나는데 문제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원래 위기가 닥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납니다. 머리가 하얘집니다. 갑자기 자식 이름도 기억이 안나고, 남편 이름도 기억이 안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요. 우왕좌앙, 가슴은 쿵딱쿵딱..손도 떨리고 말도 떨리고, 입술은 떨리고..아무 생각도 없고, 두려움만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기억도 안나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하나님을 찾아야 하지요? 그럴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찾으려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어려운 일 생길 때마다 주여! 도와주십시오. 튀어나와야 합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주여!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여!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요? 위기 가운데서 화를 냅니다. 화를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도 화를 내요.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주여! 도와주십시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로, 남은 자는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공의와 겸손을 구한다는 말은 내가 공의를 행하고 내가 겸손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성품이기도 합니다. 이 공의를 스바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 3: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즉 불의를 미워하고 진리를 기뻐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공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을 미워하고 악을 행하는 겁니다. 진리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거짓을 좋아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다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공의를 구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남은 자가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겸손은 낮아지는 것인데, 그냥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대하여 낮아지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겸손은 하나님의 신격에 대하여 낮아지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겸손은 단순히 사람에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에 대하여 낮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신격에 대하여 낮아진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신격 앞에 서면 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성소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고, 법궤를 만지면 죽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지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교만하여져서 죄를 짓는 겁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이 인간의 교만의 죄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이 교만이고, 하나님이 받을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받을 칭찬을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이 교만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누군가에게 선을 베풉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칭찬이 돌아옵니다. 목회자는 설교를 잘하고, 목양을 잘해서 교회가 부흥합니다. 그러면 그 칭찬과 인정이 누구에게 돌아옵니까? 목회자에게 돌아옵니다. 그 때 그 칭찬과 인정을 자신이 받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것을 자신이 받으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 때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재벌 중에서 겸손한 사람 찾기 힘들고, 성공한 사람 중에서 겸손한 사람 찾기 힘들고, 권력자에게서 겸손한 사람 찾기 힘들고, 대형교회 목회자 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 찾기 힘들어요. 그것이 요시야 왕때와 지금이나 같은 상황인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만한 자를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성경본문 3:11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심판을 통해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신격 앞에 겸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 겸손은 한 인격 앞에 겸손을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많이 알고, 자신보다 똑똑하고, 자신보다 재산이 많고, 자신보다 직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낮출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공부도 못하고, 자신보다 가난하고,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 앞에서는 겸손하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그런데 진정한 겸손은 한 인격앞에 겸손한 사람이 진짜 겸손한 사람입니다.
한 인격 앞에 겸손 한다는 말은 사람 한 명 한명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보다 공부 못하는 사람도 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그 인격 앞에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겁니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 앞에 자신을 낮추고,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 인격 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겸손은 단순히 낮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나 나이나 재산이나 피부나 인종과 상관없이 인격 앞에 겸손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겸손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닌 겁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새롭게 겸손을 배워나가기 바랍니다. 신분이나 재산이나 지위나 권세와 상관없이 한 인격 앞에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노숙자에게도 겸손한 사람이 될 수가 있고, 나보다 공부 못하는 사람에게도 겸손할 수가 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겸손할 수가 있고,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겸손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남은 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스바냐 3:14-17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4절에 시온의 딸아, 이스라엘아, 예루살렘의 딸아, 대신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고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4) 강동협아 노래할지어다 강동협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강동협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니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16절의 말씀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은 기운을 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기운을 내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여러분을 잠잠히 사랑하시며 여러분 때문에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남은자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남은자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게 하시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남은자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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