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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
강동협 2024-07-21 추천 0 댓글 0 조회 60
[성경본문] 하박국2:1-4 개역개정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

 

2024721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설교

본문: 하박국 2:1-4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우리교회가 창립된 지 12주년이 되는 교회창립주일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오늘날까지 함께 기도하며 교회를 섬겨 오신 창립멤버들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드리고, 오늘까지 오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고, 반면에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함께 하신 성도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달의 성경읽기를 하면서 교회창립주일에 맞는 성경본문을 생각하면서 읽다가 하박국 2장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하박국 2:1-4절을 본문으로 하여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 오늘의 주인공은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유다 말기의 선지자로서 성경에는 정확하게 어느 왕 때 선지자라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성경 내용의 시대적 정황상 요시야왕 후반부터 남유다가 멸망할때까지 활동한 선지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박국 선지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라는 내용을 볼 때 하박국은 성전에서 노래하는 찬양대원이며, 레위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이 경험한 세대는 매우 극적인 세대였습니다. 종교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봤을 때도 하박국은 극과 극을 다 경험한 선지자였습니다.

 

요시야왕은 남유다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종교부흥을 일으켰던 선한 왕입니다. 남유다의 모든 사람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그야말로 오늘날 우리나라로 말하면 평양대부흥운동을 경험한 것과 같은 세대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에 큰 시험거리가 생깁니다. 종교대부흥 운동을 일으킨 요시야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왕 바로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남유다 백성들에게 요시야왕의 죽음은 큰 애통거리였습니다. 얼마나 애통이 심한지 포로기 이후 선지자인 스가랴도 슥 12:11절에서 큰 슬픔을 설명할 때 이 므깃도의 슬픔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요시야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죽은 것은 남유다 백성들에게 엄청난 충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요시왕이 죽고 나서 큰 위기가 닥칩니다. 왜냐하면 요시야왕의 뒤를 이어서 요시야왕의 삼남인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는데, 여호아하스는 반애굽정책을 펴게 됩니다. 어쩌면 요시야가 애굽왕에게 죽고나니까 유다의 장로들이 왕을 세울 때에 장남이나 차남이 아니라 삼남을 왕으로 세운 데에는 물론 여호아하스가 영특한 면도 있겠지만 여호아하스가 가장 반애굽적인 인사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결과 당시 남유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요시야를 죽인 애굽왕 바로가 3개월만에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차남인 엘리야 김을 왕으로 세우고 애굽식으로 이름을 여호야김이라 이름을 짓게 합니다.

그래서 여호야김은 친애굽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정치를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열왕기하 2337절을 보면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길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선지자 우리야를 죽이고, 예레미야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까지 불에 태워버린 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봤을 때 갈 때까지 간 매우 악한 왕이라고 보여집니다. 하박국 12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이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 하박국은 요시왕의 종교부흥도 경험했고, 반대로 지금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조차 불태워버리는 상황까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단순히 선한 왕과 악한 왕의 차이만은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여호아하스 왕이 3개월만에 애굽으로 끌려가고 백성들도 애굽으로 끌려가서 종살이 하고,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야김왕은 백성들을 억압하자 남유다백성들에게 큰 시험거리가 생깁니다.

 

가장 먼저 종교부흥을 일으킨 요시야왕이 애굽과의 전투에서 죽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책을 찾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들려주어서 성전제사를 드리고, 유월절을 지키는 왕,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왕인 요시야왕이 왜 전투에서 죽느냐..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종교부흥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강성하게 하여서 애굽도 이기고, 앗수르도 이기고, 바벨론도 이기고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가 이전 왕들이 했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제사하고 할때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고 복을 받고 이런 재난을 받지 않았는데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는구나..애굽으로 끌려간 백성들도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남유다에 남아있는 백성들도 우상숭배에 빠지고 이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박국은 지금 이렇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하박국 12절부터 4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여기에서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의 첫째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국가와 민족의 죄 앞에서 애통하고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성경책의 소제목을 보면, 이렇게 적어져 있습니다. “왜 유다의 악인을 심판하지 않는가?”

그런데 저는 이 하박국의 부르짖음과 탄식이 남유다의 패역한 모습을 심판하여 주십시오! 이런 관점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탄식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과거 요시야왕의 종교개혁과 부흥을 경험하였으면서도 그 부흥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탄식, 그런 상황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그런 상황을 타개할 힘이 없어서 안타까워하고 탄식하며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는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으로 읽혀집니다. 이러한 하박국의 모습에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어떤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주변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믿음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탄식하며 눈물로 호소하며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주변 환경에 많이 휘둘입니다. 주변 사람에게 많이 휘둘립니다. 교회를 개척했는데 함께 개척했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떠납니다. 물론 다 사연이 있겠지요? 멀리 이민가기도 하고, 멀리 이사가기도 하고, 다시 나왔던 교회로 돌아가기도 하고, 아예 다른 교회로 가기도 하고..그 때 우리는 어떠합니까? 맥이 빠지지요. 나도 그만 가버릴까? 전에 큰 교회에 있을 때는 이런 걱정 안하고 편하게 예배드렸는데..지금 함께 했던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돌아가니 힘이 빠지고 좌절도 되고..우리가 괜히 개척을 해가지고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뭐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주변 환경에, 주위 사람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애통하며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때 까지니이까? 이 하박국의 이 호소가 얼마나 간절합니까?

 

이것은 국가와 한국교회의 죄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이 정의롭지 못하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정의롭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안타까운지..교회에 정치꾼이 판을 치고 그런 정치꾼들이 교회의 지도자라고 앉아있고, 온갖 화려한 말로, 가식적인 말을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데도 교인들은 그런 목사님이 좋다고, 존경한다고, 그런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답답한지 몰라요. 누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교회에 걸어놓고 모든 사람이 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지 눈에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멋지다 하고, 훌륭하다고 하고, 존경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가운데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그런 상황을 애통해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고, 정의가 굽게 행해지는 한국교회 상황들..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애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과연 남유다 백성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시야가 일으킨 종교개혁이 실패한 것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애굽과의 전투에서 죽은 것이 요시야에게 실패한 삶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우리 다함께 역대하 3427절부터 28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27)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요시야왕의 선조들, 물론 히스기야 왕이라는 선한 왕도 있었지만 아하스왕도 그렇고, 할아버지 므낫세왕도, 아버지 아몬왕도 그렇게 다 하나님앞에서 타락한 왕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남유다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할 예정이었습니다. 히스기야왕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다.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야왕은 잘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요시야 왕이 이렇게 죽어버리면 그의 종교개혁은 물거품이 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무엇이 준비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준비되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부흥을 통하여 바벨론에서 70년 종살이를 하는 동안 백성들을 교육하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을 준비시켜 주셨고, 요시야의 종교부흥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있었기에 바벨론 포로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견디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 학개, 스가랴 선지자들이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요시야왕의 종교개혁과 부흥은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준비하기 위한 사람들을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남유다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시야왕의 종교개혁과 부흥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개혁과 부흥이 있었어도,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도 우리가 이렇게 남의 나라의 종살이로 가고, 궁핍하고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면서 과거 우리가 우상을 섬길 때가 더 좋았지 않느냐면서 우상숭배자로 돌아갔지만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서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 그런데 하박국은 그 정도로 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불의를 바벨론을 통하여 심판하겠다고 하니까 하박국이 오히려 따지면서 묻습니다. 아니? 왜 남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으로 심판하려 하십니까? 그 바벨론 사람들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런 요지로 하나님께 따집니다. 그 내용이 112절부터 17절까지 나옵니다. 나중에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을 끝까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으로 남유다의 불의를 심판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따집니다. 하박국은 이해가 되지 않은 겁니다. 왜냐하면 왜 더 악한 바벨론으로 심판하시는가?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방법에 대한 의구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실려나 기다리고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오늘 본문 하박국 2:2-4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묵시라는 것은 바벨론에 대한 멸망의 묵시입니다. 바벨론이 심판받는 이유를 5절부터 19절까지 말씀하시는데, 이 묵시를 기록해서 판에 확실하게 새겨라..그리고 달려가면서도 읽을수 있게 해라..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는데 그 종말이 속히 이를 것이다.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비록 더디더라고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바벨론을 확실하게 멸망시킬 것이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킨 곳이 어디였습니까? 광야였습니다. 광야생활이 힘들었지만 사실 그들은 40년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평했던 1세대 사람들은 다 죽이고, 이제 2세대 사람들, 광야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된 그들만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광야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훈련시킨 장소였습니다. , 그러면 바벨론은 어떠할까요?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시킨 존재였지요? 그런데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남유다의 죄가 차고 넘쳐서 이제 하나님은 그들을 더 이상 그 죄를 보고 계실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70년이라는 기간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훈련한 곳이 바로 바벨론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용광로라고 하듯이 바벨론이라는 포로생활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훈련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재훈련할 장소로 바벨론을 택한 것이고, 남유다의 모든 똑똑하고 훌륭한 인재들을 바벨론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배운 겁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법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도 배우고..이것을 위하여 다니엘과 그 세친구와 같은 믿음의 사람도 준비해 놓으시고, 느헤미야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도 준비해 놓으시고, 에스라와 같은 학사도 준비해 놓으시고..얼마나 철저하신지 바사왕 고레스가 성경을 배우고는 이사야에 자신을 위한 예언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알고 그 예언을 보고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하셔서 바벨론 포로들을 귀환하게끔 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하에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바벨론을 확실하게 심판한 것이다.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확실하게 새겨서 달려가면서도 읽을수 있게 해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바벨론을 말하는 겁니다. 바벨론은 교만하며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직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살수 있는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 이것이 의인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살겠습니까? 돈으로 살아요? 명예로 살아요? 권력으로 삽니까? 사람들은 돈으로 살고, 명예로 살고, 권력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 곧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바로 의인입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 곧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두렵지 않습니다. 공부 못해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서 두려운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지 못하여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서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가 있으면 무엇이 두렵고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있으면 무엇이 두렵습니까? 내가 현재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이고, 현재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자리인데 이곳에서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자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임을 확신하면 여러분은 지금 있는 바로 이 곳에서 행복할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우리 더사랑교회를 개척하고, 여러분이 우리 더사랑교회에 등록하여 더사랑교회 성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확신할진대 여러분이 다른 교회를 부러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 더사랑교회에서 예배하는 여러분이 가장 행복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고, 지금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를 갖는 것, 이것이 바로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셋째로,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즐겁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하나님 때문에 힘을 내고, 하나님 때문에 춤을 추는 사람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보니 얼마나 좋은지..바벨론의 심판 이유가 명확하거든요..2장 마지막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이 말을 듣고는 너무 감동이 됩니다. 그래서 3장으로 가는 겁니다. 3장보니까 하박국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기도가 참 멋지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막 합니다.그 내용이 33절부터 15절까인데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하박국은 바벨론 침략소식을 듣습니다.

1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바벨론 침략 소식을 들으니 창자가 흔들려요. 바벨론 군대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워서 입이 벌벌떨려요. 그 사람들이 쳐들어 오는 환난날을 기다리는 것이 마치 내 뼈가 썩어들어가는 것 같고, 내 몸이 벌벌 떨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하박국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자 보십시오. 이런 맥락에서 보니까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는 이 내용이 단순히 농부가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요? 농부가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이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서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남유다 전역에 먹을 것이 없어요. 바벨론 군대가 와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갑니다. 무화과나무 열매도 빼앗아가고, 포도열매도 빼앗아가고, 감람나무 소출도 빼앗아가고, 밭에서 나는 곡식도 빼앗아가고, 우리에 있는 양도, 외양간에 있는 소도 다 빼앗아갑니다. 이제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완전 빈털터리..아무런 삶의 희망도 의욕도 없어요. 다시 일어날 용기도 없고 힘도 없어요.

그런데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18, 19절 다 함께 읽겠습니다.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다 빼앗겼습니다. 다 뺏겼고, 이제 남은 것은 내 목숨 하나만 남았어요. 어떤 사람은 남편이 죽고, 어떤 사람은 아내가 죽고, 어떤 사람은 남편만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어떤 사람은 아내만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자식과도 생이별, 부부간에 생이별..나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다 사라졌어요.

 

그런데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하나님 때문에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하나님 때문에 힘을 얻고, 하나님 때문에 용기를 내어서 높은 곳으로 다니는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있다면 바로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바로 내 옆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살아가는 겁니다. 이것이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이 힘들지요. 많이 아프지요. 많이 고통스럽지요.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옆에 계시고, 하나님이 나의 탄식을 들어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때문에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 모두가 오직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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