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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정의를 외치다
강동협 2024-06-01 추천 0 댓글 0 조회 91
[성경본문] 아모스5:14-24 개역개정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17.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19.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공의와 정의를 외치다

 

202462일 창원더사랑교회 설교

 

본문: 아모스 5:14-15,21-24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입니다. 모두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5월 달에는 이달의 성경읽기로 호세아서와 요엘서를 읽었고, 이번 6월 달에는 이달의 성경읽기로 아모스, 오바댜, 요나서를 읽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이달의 성경읽기에 동참하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우리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 있고, 우리의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저는 아모스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심판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는 것이 단순히 이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모스서 8:11-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 하나님이 기근을 보내는데, 이 기근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 기근이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는 기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가장 가혹한 심판은 하나님이 숨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차라리 회초리를 드는 게 나아요. 차라리 우리가 하나님의 회초리를 맞는 게 나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꾸중을 듣고, 책망을 듣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전혀 펴보지 않는다는 것은 벌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을 펴십시오. 그리고 읽으시고,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 어쨌든 6월달에는 아모스서와 오바댜서, 요나서를 읽는 달입니다. 열심히 성경을 읽으셔서 저에게 알려주시면 주보 7쪽에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6월 첫째 주를 맞아서 아모스 5장을 본문으로 하여 공의와 정의를 외치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호세아 선지자와 동시대의 사람,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이 호세아와 같겠지요? 지난 설교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아모스와 호세아가 선지자로 활동을 할 때는 여로보암 2세 때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가 정치적으로 가정 번성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국력이 제일 강력하고, 땅덩이가 제일 컸을 때입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통틀어서 가장 번성했던 시대인 솔로몬 시대와 버금가는 땅덩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솔로몬 이후의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여로보암 2세의 시대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아주 심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유층이 가난한 자를 착취합니다. 은을 받고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사람을 팝니다. 힘 없는 자를 발로 밟고, 연약한 사람을 수렁에 빠지게 하고, 남자들은 매춘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남용하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습니다.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재판을 합니다. 정의는 패하고 악이 판 치는 세상. 바로 여로보암 2세 시대상이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호세아와 아모스는 동시대 예언자이고, 활동한 지역도 북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까 시대적 상황이 같습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말하는 북이스라엘의 주된 죄악이 무엇이었습니까? 호세아서에서 언급하는 북이스라엘의 주된 죄악은 북이스라엘의 영적 간음 곧 우상숭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것이 북이스라엘의 주된 죄악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바로 호세아에게 음녀가 된 고멜을 사랑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음녀가 된 북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며 회개를 촉구한 책이 바로 호세아서였다는 것입니다.

 

반면 아모스서는 북이스라엘의 주된 죄악으로 무엇을 지적하냐면 바로 사회적 불의를 지적합니니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사회 구조적으로 불의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는 책이 바로 아모스서입니다.

그래서 아모스서의 핵심 단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공의와 정의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공의와 정의를 외치다라고 정했습니다. 우리 다함께 오늘 본문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5:14-15, 21-24절 말씀입니다. 시작!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선지자는 선지자 중에도 유난히도 공의와 정의를 외친 선지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모스는 겉모양이 아니라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안목이 있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제사보다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진정성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보다는 그 예배하는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보고, 그런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을 아모스 선지자가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 암 5:21-24절까지의 말씀은 정말 속을 후비는 비수와 같은 말씀입니다. 5: 21-24절까지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여러분, 이런 말씀이 오늘날 선포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속이 후련한 말씀 아닙니까?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너희들의 예배를 받지 않겠다. 너희들의 찬양도 받지 않겠다. 너희들의 헌금도 받지 않겠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흐르게 하고,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여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가장 먼저 무엇이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가? 오직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는 겁니다.

 

, 그러면 무엇이 공의이고, 무엇이 정의입니까? 우리는 공의와 정의를 혼용하여 사용하곤 합니다. 성경 번역도 공의와 정의를 햇갈리게 사용하여 번역을 했습니다.

 

원래 공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미쉬파트이며 정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체데크입니다. 이 두 단어는 올바름이라는 측면에서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체데크(정의)와 미쉬파트(공의)는 약간 다른 개념입니다. 체데크(정의)는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덕목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는 성도들을 사랑으로 잘 목양하고,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경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며 이것이 정의로운 것입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잘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거나 자식이 부모를 멸시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불의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체데크(정의)’의 개념입니다.

 

반면에 미쉬파트(공의)’는 명시적인 법이 제시되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공평한 판단을 내리어야 하며, 그 판단에 따라 유죄가 확정이 되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전 과정을 가리켜 공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율법을 제시하였고, 그 율법대로 살아갈 것을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율법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의와 정의의 차이는 법적인 처벌의 유무에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정의롭지 못하면 윤리적인 비판은 받을 수 있지만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는다. 부모공경을 하지 않는 것이 정의롭지 못한 불의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공경하지 않는다고 비판은 받을 수 있어도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습니다.

반면 공의롭지 못하면 윤리적인 비판뿐만 아니라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왜냐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아모스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공의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라는 겁니다.

 

공의만 흐르면 안되요. 정의도 같이 흘러가야 합니다. 크리스찬은 공의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 공의와 정의는 하면 좋고, 안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이 공의와 정의가 우리의 삶의 가치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모든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예배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일상의 삶에서 공의와 정의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공의와 정의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공의와 정의를 촉구합니다. 아모스 5:14-1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우리 더사랑교회는 공의를 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법적인 부분을 잘 지켜야 하겠지요. 그러나 공의만 아니라 정의까지도 외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공의와 정의를 외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303행복말씀스쿨 문답형 암송구절을 보면 죄는 무엇입니까?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4:17)

 

이렇게 문답하고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은 벌을 받습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요. 그런데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입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죄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은 그것을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누구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불의한 것이고, 이것을 행하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기준을 따르자면 정의롭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정의를 세상에 흐르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공의를 행하고 정의를 행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잘못을 범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공의를 행하고, 정의를 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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