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문

  • 더사랑의 말씀 >
  • 주일설교문
십자가의 핵심사상
강동협 2024-03-31 추천 0 댓글 0 조회 27
[성경본문] 마가복음15:16-32 개역개정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자가의 핵심 사상

 

2024324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마가복음 15:16-32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종려주일이자 고난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예수님을 맞이 했는데, 이렇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생각하면서 이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편의상 오늘을 고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난주일을 맞아서 십자가의 핵심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핵심은 역시 십자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고린도전서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6: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빼면 기독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독교가 기독교인 이유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라는 겁니다.

, 그러면 이 십자가의 핵심 사상은 무엇인가?

 

여러분, 십자가 하면 가장 먼저 어떤 단어가 떠오릅니까?

십자가? 사랑입니다. 십자가 사랑..

저는 누군가가 십자가의 핵심 사상 첫 번째를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면서까지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그러니까 여러분이 십자가를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행복전도를 하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이름이 너무 좋다고 했더니 이 얘기를 해요.

사랑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은데 자신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겠습니까? 그 부모님이 짓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사랑이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그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여러분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절대로 삐딱서니 타면 안됩니다. 삐딱서니는 누가 타는 겁니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삐딱서니 타는 겁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절대로 삐딱서니 안탑니다. 여러분이 계속 삐딱서니 타면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속삭이는 사탄에게 속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예배하는 여러분은 모두 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십자가의 핵심 사상 두 번째는 용서입니다. 용서.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가? 하나님께 범한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죄사함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이 사형당하는 장소이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죄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가?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가 얼마나 큰 죄용서함을 받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임금에게 빚을 진 종이 끌려왔습니다. 임금이 그 종이 얼마를 빚졌는지 살펴보니까 일만 달란트를 빚을 진 겁니다. 일만 달란트는 그 종이 평생을 벌어도 갚지 못하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습니다.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되는데, 1데나리온은 근로자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니까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이니까 근로자가 6000일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1달란트를 모을 수 있습니다.

6000일 하니까 감이 잘 오지 않는데 1365일로 계산하니까 6000일은 16년이 넘습니다. 그러니까 근로자가 16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단 한푼도 쓰지 않고 번 돈을 다 모아야 1달란트를 모을수가 있습니다.

하루 일당 10만원으로 계산하면 1달란트는 6억입니다. 그러면 일만 달란트는 얼마나 큰 돈인가? 10,000*16=160,00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벌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1만 달란트를 모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임금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임금이 딱 보니까 이 종이 도저히 갚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한 정도가 아니라 명확하고, 확실하고, 또 확실하고, 100, 1000, 10000퍼입니다. 억퍼까지 갈 정도로 아주 확실해요.

그래서 그 종이 도저히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임금이 과감한 결정을 합니다. 다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 종에게 100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이 있었는데,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자신에게 100데나리온의 빚을 진 종의 목을 잡으면서 자신에게 빌려간 돈을 다 갚으라고 빚 독촉을 합니다. 그러자 100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이 꿇어 엎드려서 사정 사정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면 나중에 빚을 꼭 갚겠다고..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에게 빚 진 종이 빚을 다 갚기 전까지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이것을 주위 사람들이 보고 기가 찬 겁니다. 그래서 임금에게 찾아가서 이 모든 사실을 다 얘기하지요. 그 얘기를 듣고 임금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으면, 너도 다른 종에게 그렇게 해야 마땅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느냐..”그러면서 그 종을 감옥에 처 넣어버립니다.

 

이 얘기를 하시면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았으니 너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늘 하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준 것과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게 하옵소서이렇게 가르치지 않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기도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죄도 용서하지 말아달라는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이 주기도를 하면서 얼마나 놀라운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왜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셨을까요? 용서가 십자가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이렇게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사람은 반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나는 도저히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반문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그러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에 오늘 성경 본문 마가복음 15장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앞에 누가 있는가?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로마군병이 채찍을 때리자 예수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너무 버거워서 몇 번이고 쓰러집니다. 주위 사람들은 예수님을 놀리고 장난치고, 희롱하고 멸시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예수님께서 심하게 소리를 지르시고 괴로워하십니다. 예수님의 신음과 고통 소리가 여러분의 귀에 들리고 여러분은 차마 고통당하는 예수님을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이 아무런 잘못이 없으시고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를 지고 채찍에 맞으시는 이유가 바로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통과 신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런 현장에서 직접 예수님을 목격했을 때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였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였을 것 같습니까?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토를 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설령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셨어도 여러분은 기꺼이 용서하겠다고 대답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용서를 할 수가 없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서 모진 고통을 당하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전적인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는 순간 우리는 용서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받은 상처는 언제 치유되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에게 복수한다고 우리가 받은 상처가 치료되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형제에게 받은 상처가 언제 치료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바로 그 사람을 용서했을 때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용서가 우리가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고, 용서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용서가 바로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십자가의 핵심 사상 세 번째는 희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대신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원래는 우리가 달려야 할 십자가였고, 우리가 죽어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희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을 에베소서 5: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희생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희생의 십자가를 경험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에베소서 5:2절의 말씀처럼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희생의 십자가를 경험한 우리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부모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희생으로 오늘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희생을 아는 자녀는 형제간에 사랑하며 우애있게 지내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로서의 도리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경험한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희생하면서 자녀를 키웠는데 그 자녀들이 서로 싸우고 헐뜯고 살아가면 그것이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 되는 것처럼 만약에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을 경험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다툼과 분쟁가운데 있다면 예수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고난 주일을 맞아서 십자가의 핵심 사상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둘째로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셋째로 십자가는 희생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담겨진 사랑과 용서와 희생의 의미를 꼭 기억하고 우리의 삶에서 사랑과 용서, 희생의 핵심 사상을 녹여내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고난주일을 맞아서 사랑과 용서, 희생의 정신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용서와 희생의 정신을 녹여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예수 부활하셨네 강동협 2024.03.31 0 36
다음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강동협 2024.03.17 0 47

51374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용로443번길 1 (팔용동, 혜성빌딩) 7층 더사랑교회 TEL : 055-299-7171 지도보기

Copyright © 창원더사랑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
  • Total60,380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