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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혀를 주소서
강동협 2023-12-10 추천 0 댓글 0 조회 95
[성경본문] 이사야50:4-9 개역개정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자의 혀를 주소서

 

20231210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50:4-9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준비하는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이달의 성경읽기로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이 땅에서 직접 수행하고 실현시키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특별히 예비하셔서 이 땅에 보내실 위대한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총 4편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종의 노래(Song of the Lord's servant)'라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4편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 중에서 세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인 오늘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 50:4-9절까지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여기에서 1인칭으로 기록된 는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 그러면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첫째, 예수님은 곤고한 자를 말로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예수님은 곤고한 자를 말로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곤고한 자, 지치고 피곤한 자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무엇으로 도와주십니까? 말로..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아시는 분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참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지, 위로받고, 격려 받아야 할 사람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그 만큼 이 세상에는 슬픔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큰 슬픔을 당한 경우에는 말로 위로가 안됩니다. 슬픔을 당한 유족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뭔가 위로가 되어야 하는데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그런 가슴 아픈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다고 했습니까? 학자들의 혀를 주셔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학자의 혀를 주셔서 슬픔 당한 자를 위로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시는 분입니다. 5,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이 학자들의 혀를 가졌다는 말씀은 학자들처럼 말 잘하는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학자의 혀로 곤고한 자를 도와주신 것은 단순히 말 잘하는 혀로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달변가라 할지라도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은 위로가 안됩니다. 어떤 사람의 말이 위로가 됩니까? 같은 아픔을 겪거나, 더 큰 슬픔을 당한 사람의 말이 위로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바른 말이고,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말은 도리어 상대방에게 아픔이 되고 가시가 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학자의 혀를 가져서 말로 모든 곤고한 자를 도우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그 공감대를 형성할 만큼 모든 사람의 슬픔과 아픔과 고난과 질고를 다 겪으셨다는 말입니다.

 

5, 6절 말씀,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드는 자처럼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매를 맞아도 견뎌냈고, 수염이 뽑힐 때에도 가만히 있었고, 사람들이 뺨을 치며 조롱할 때도, 사람들이 침을 뱉어도 숨지 않았습니다. 모든 모욕과 조롱과 멸시를 참아내고 견뎌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모욕과 멸시받음과 같은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좌절과 절망과 슬픔에 대한 모든 것을 공감하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근심과 슬픔과 아픔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다 치료되고, 회복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통..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겪는 모든 아픔과 슬픔들..예수님은 다 공감하시고 여러분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슬픔과 아픔가운데 여러분을 그냥 방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예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십시오. 예수님을 만나세요.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가 치료되고 회복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인생도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지 않을 인생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어둠 가운데 방치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아픔과 슬픔과 모욕과 고통을 당하는 그런 순간에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그 모든 멸시의 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7절부터 9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여러분,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모욕을 당하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자식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부모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부끄럽지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들과 관계를 끊기도 하고, 부모님과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만 아니라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알고 따랐지요. 그러니까 오늘날로 따지자면 예수님은 명예와 명성이 있는 분이셨고, 제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혀서 십자가를 지시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기도 하고, 뺨을 맞기도 하고, 조롱을 받고,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옷을 벗긴 채로 죄인들이 메달리는 십자가에 못박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다 봤습니다. 자신을 따랐던 제자들도 봤고, 예루살렘의 온 유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유투브에 올라가서 전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그런 수치를 다 보여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9절 말씀을 보면,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도우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부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난하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얼굴 못 생겼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 가지 못했다고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어요.

좋은 직장 다니지 못한다고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혼하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편 조금 못났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아내 못생겼다고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부끄러워 합니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너무 나이가 많아 보여서 부끄럽고,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부끄럽고, 우리 아빠가 술을 많이 먹어서 부끄럽고, 아빠 직업이 부끄럽고, 공부못해서 부끄럽고, 얼굴 못생겨서 부끄럽고, 공부 잘 못해서 부끄럽고, 고등학교 실업계 다녀서 부끄럽고, 재수해서 부끄럽고, 명문대학 가지 못해서 부끄럽고, 내가 질병을 갖고 있어서 부끄럽고...얼마나 부끄러워하는 것이 많은지 몰라요. 지금도 말하라고 하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아주 많이 나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던지 우리는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십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십니다.” 아멘!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학자의 혀를 주셔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위로자가 될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런 위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어떤 아픔과 슬픔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잘 견뎌내고 참아내면 그것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곤고한 자를 말로 위로하고, 곤고한 자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여 어떤 환경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되시고, 우리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다 공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위로자의 삶을 살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위로자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당당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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