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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류의 사람
강동협 2023-08-26 추천 0 댓글 0 조회 323
[성경본문] 역대하19:1-11 개역개정

1.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4.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

5. 또 유다 온 나라의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읍마다 있게 하고

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8. 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9.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10. 어떤 성읍에 사는 너희 형제가 혹 피를 흘림이나 혹 율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와서 송사하거든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행하면 죄가 없으리라

11.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다스리고 레위 사람들은 너희 앞에 관리가 되리라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세 부류의 사람

 

2023827일 창원더사랑교회 설교

본문: 역대하 19:1-11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즉시 심판, 둘째는 나중심판, 셋째는 내버려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해도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두면 참 좋겠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냥 잘못가운데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즉시 심판하실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을 내리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잘못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경고하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고에 반응하는 정도가 각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역대기하 19장의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우리가 잘못 지적받았을 때 반응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합 왕을 도와서 길르앗라못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죽을 뻔 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명을 건진 여호사밧왕이 남유다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동맹을 맺고 길르앗라못에서 아람군대와 싸우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남유다왕 여호사밧과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동맹을 맺은 남유다왕 여호사밧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변장을 하고 전쟁터에 들어갈 테니 여호사밧왕은 왕복을 입으십시오이렇게 말하고 북이스라엘왕은 변장을 하고, 둘이 전쟁터에 들어가게 됩니다.

 

한편 아람왕은 그의 군사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워라

 

아람 군대들이 유다와 이스라엘 연합군을 보니까 왕복을 입은 사람이 한 명이 있는 겁니다. 바로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의 모든 군대가 왕복 입은 사람이 이스라엘 왕인 줄 알고 여호사밧왕을 향해 달려드니 여호사밧왕이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무엇이라고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신앙의 말로 하면 주여 삼창을 한 겁니다.

주여! 살려 주십시오. 주여! 살려주십시오. 주여! 살려주십시오. 이걸 한 겁니다.

하나님이 여호사밧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를 도우시고 아람군대를 감동시켰는데 그들이 딱 보니까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이 아닌 겁니다. 분명히 자기들이 명을 받기는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는 명을 받았는데 지금 왕복을 입은 자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게 됩니다.

 

반면, 변장을 한 아합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반 병사의 옷으로 변장을 하고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름도 없는 아람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하게 되고, 결국 해가 질 즈음에 죽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을 보면 정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합 왕을 보십시오. 그렇게 자기 머리를 싸메고 꾀를 내어서 변장까지 하고 전쟁에 나갔는데 이름도 없는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반면 여호사밧왕은 아람 모든 군대가 여호사밧을 추격하고 죽이려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사밧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여호사밧왕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왕을 맞이하는데 여호사밧왕이 듣기에 매우 귀에 거슬린 말을 합니다. 왕이 전쟁에서 죽을 위기를 넘기고 살아 돌아왔으면 반갑게 맞이하면서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며 위로해도 모자랄 분위기인데 선견자 예후는 오히려 왕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여호사밧왕의 아픈 부분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라 말하는지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아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여러분, 왕 앞에서 이렇게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요? 과연 예후는 아사왕 시절에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아니라 아람 왕에게 도움을 요청한 아사왕의 잘못을 과감하게 책망한 아버지 하나니처럼 여호사밧의 잘못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하나니가 아사왕의 잘못을 책망하였다가 감옥에 갇히고 그의 친척들뿐만 아니라 하나니와 관련된 백성들까지 학대당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견자 예후는 과감하게 여호사밧왕의 잘못을 책망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왕의 잘못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충언을 올리는 선지자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시대에는 다윗의 잘못에 대하여 선지자 나단이 책망하였고, 아사왕의 시대에는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왕의 잘못에 대하여 책망하였고, 아합왕의 시대에는 선지자 미가야가 아합왕의 잘못에 대하여 책망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선지자에 대하여 대처하는 왕들의 처신들이 사뭇 다릅니다.

 

다윗왕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하며 회개합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합니다.

 

반면 아사왕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선견자 하나니를 감옥에 가두고 친척들과 하나니와 가까운 백성들을 학대까지 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어떠했습니까? 참 선지자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왕들의 모습에서 성군이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듯 합니다. 성군은 자신이 잘못을 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부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반면 성군이 아닌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부분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목숨을 걸고 충언을 하는 신하를 옥에 가두고 고통을 주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여호사밧왕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예후에게 어떻게 했겠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후의 책망을 듣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을 보면 예후를 핍박한 것이 아니라 회개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개했다면 확실히 성경은 회개했다는 부분을 기록했을 텐데 회개했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여호사밧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회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대하 20:35절을 이하를 보면 여호사밧왕이 나중에 북이스라엘왕 아하시야와 교제했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다시 예후가 책망한 것 같이 똑같은 실수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기자는 이 부분에서 회개했다는 말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대한 세 부류의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의 부류는 아사 왕이나 아합 왕처럼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 대하여 화를 내면서 반응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우 독재적이고,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교만한 사람이라 볼 수가 있고, 이런 사람은 하나님도 어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에게 아무리 훌륭하고 참 선지자를 보내어도 그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의 부류의 사람은 여호사밧 왕처럼 겉으로는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심으로 속까지 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못을 하기는 하였지만 자신의 잘못의 심각성은 인정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아마도 여호사밧왕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하였지만 그 죄가 그렇게 심각한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에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사돈 관계를 맺고 군사 동맹을 한 것처럼 다시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과 다시 교제하며 연합하여 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다시/ 엘리에셀이라는 선지자를 보내어 그것을 책망하십니다.

 

세 번째의 부류의 사람은 다윗 왕처럼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죄의 심각성에 따라서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자복하는 스타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통회 자복하고 회개하면서 시편 51편을 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부류에 속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사 왕과 아합 왕처럼 첫 번째입니까? 아니면 여호사밧 왕처럼 두 번째에 속하십니까? 아니면 다윗 왕처럼 세 번째에 속하십니까?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수용하십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지적할 때 우리에게는 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와 여러분에게는 첫 번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의 지적을 받는 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하여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에는 느리지만 남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인격의 성숙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아픔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싫은 소리도 듣고 수모도 당하면서 억울한 일도 당하면서 우리의 인격은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비판받기를 두려워말고, 책망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적 받기를 두려워말고 모든 비난과 화살을 넉넉하게 받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얼마나 비판을 많이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마디 변명하지도 않으시고 모든 수모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53:7절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비판을 받고 억울한 누명을 쓰면서도 변명하지 않고 모든 비난과 조롱소리를 다 감당하셨습니다. 결국 그것이 온 인류를 살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지적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 그것이 자신을 찌르고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저와 여러분이 아사왕과 아합왕의 수준이지만 점차 여호사밧왕의 단계를 거쳐 나중에는 다윗왕의 수준까지 이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남에게 책망 듣고, 잘못을 지적당할 때, 때로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의 마음이 심히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너무나 억울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할 때 주여 우리에게 비판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주옵소서. 당당하게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도 주옵소서. 그래서 지금의 모습보다 더 나은 인격의 성숙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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