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100:4-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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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진정한 감사란 무엇인가?
2023년 7월 2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시 100:4-5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이며,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1년에 두 번의 감사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상반기를 감사하면서 7월 첫 주일에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고, 1년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11월 셋째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맥추절이 있습니다. 이 절기는 첫 열매 수확을 감사하면서 드리는 절기(출23:16)인데,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맥추 감사 주일은 유대인들이 3대 절기로 지키는 이 맥추절과는 관련이 없는 절기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폐지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의 절기들을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장로교의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9장에 보면 하나님의 율법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율법은 크게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인 도덕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가르치고, 모든 지능 있는 피조물들에게 그 법에 대하여 완전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법에 대하여 완전한 순종을 드리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영생을 약속하고 동시에 이 순종을 드리지 않는 자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도덕법은 의롭게 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도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구약의 율법 중에서 도덕법에 해당하는 율법은 오늘날 우리도 지켜야 하고,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이 도덕법을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하셨습니다. 구약의 도덕법의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고, 이 십계명을 우리는 지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인 시민법은 다른 말로 하면 재판법이라고도 하는데, 한 국가를 이룬 이스라엘에게 여러 가지 법률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민족과 더불어 없어졌고, 현재는 그 법률에 있는 일반적인 정당성외에는 아무에게도 다른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9장 4항)은 말합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 21장이나 22장에 나온 구약의 율법에 나온 재판법대로 오늘날 우리가 재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즉 폐기되었다는 겁니다.
셋째인 의식법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와 같은 제사법이나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맥추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과 같은 절기법이나 정결법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에서 준수해야 하는 규례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메시야가 오기 전까지 유대 민족에게 적용되어졌고,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에서 성취하신 것들의 상징이요 그림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의식법은 예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단 번에 희생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동물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9장 3항)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의식에 관한 율법은 신약성경 시대에서는 폐기되었다”(엡 2:15,16; 골 2:14,16-17)
그래서 오늘 맥추감사주일인데 이것은 구약 율법의 맥추절과는 상관없는 우리 한국교회 전통에서 나온 감사주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1년에 두 번에 걸쳐서 감사의 절기를 정해서 지킬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만큼 감사가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초창기 한국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그 만큼 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농촌사회였기 때문에 보리추수를 한 이후에 맥추감사주일을 지킨 것이지요? 그리고 11월에는 추수감사주일로 지켰던 것이고요. 어쨌든 감사하는 마음이 강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4절의 말씀처럼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렇게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그런 신앙의 삶, 날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삶..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고난 중에 감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보통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 뒤에 현수막에 걸려진 것처럼 고난의 4가지 관점이라 하여 “변나명용 롬팔이팔”
말은 얼마나 좋아요? 말은 얼마나 쉬워 보여요?
고난은 변장하여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고난은 내 영혼을 깨우는 영적 기상 나팔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명품 만들기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용광로이다. 변나명용..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롬팔이팔..
이렇게 변나명용 롬팔이팔..이렇게 고난에 대하여 정의를 내릴 때는 얼마나 멋있어 보이고 좋아 보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참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겪는다면 이런 말이 우리 마음에 잘 와닿지 않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좋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아직 그런 엄청난 고난을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저런 말은 대체 누가 만들어 냈느냐? 물론 저런 좋은 말을 만들어 낸 사람도 엄청난 고난을 경험하고 깨달은 사람이 저런 멋진 말을 만들어 낸 겁니다. 고 여운학 장로님도 사업을 하면서 사채 빚을 쓰면서 엄청난 재정의 압박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에 힘을 얻고 신앙으로 견디어 내면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절 말씀을 하나님의 직통전화 번호라고 하면서 고난이 생길 때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절 말씀을 롬팔이팔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런 믿음 가운데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가면서 그 고난과 시련이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었구나를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고 여운학 장로님은 어떤 고난과 환경가운데서도 주안에서 항상 기기감찬순을 말씀하십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안에서 항상 기도하라. 주안에서 항상 감사하라. 주안에서 항상 찬송하라. 주안에서 항상 순종하라.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런 엄청난 고난을 처음에 탁 경험하게 되면 변나명용 롬팔이팔 이런 말은 잘 와닿지 않고, 좋은 말이고, 멋진 말이기는 한데 나의 가슴을 움직이는 그런 삶의 고백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 만큼 우리가 고난 가운데 감사하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감사의 삶을 산다는 것은 정말 최고의 신앙의 삶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어떠한 고난과 시련과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감사란 무엇인가?
첫째, 진정한 감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에 대한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감격의 예배는 사라지고 습관적인 예배로 바뀌게 됩니다. 누구나 다 이런 경험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믿음의 길을 떠나가겠습니까? 예수님의 희생과 그 사랑을 믿지 못하든지, 아니면 그 예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희생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것은 무엇과 같으냐면 자신을 낳아주고 오직 사랑으로 자신을 길러준 부모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을 매우 경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고, 무교절을 지키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이유였습니다.
“너희는 애굽 곧 종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말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출 13:3,6)”
그래서 그들은 이 예식을 지키는 것을 아들에게 보여서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치면서 이것으로 그들의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그들의 입에 있게 하였습니다(출 13:8,9).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진정한 감사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친하게 지내다가도 가끔 보면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잊어버리는 겁니다. 이 사람이 나를 위하여 지금까지 나를 도와주고, 나에게 잘 해 주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지금 조금 섭섭하고, 지금 자신에게 한 잘못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사람이 나를 위하여 했던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지금 나에게 잘못을 해도, 과거에 나를 도와주고, 과거에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과거 나에게 해주었던 좋은 기억을 갖고 지금 나에게 잘못하는 것도 그 과거의 나에게 해준 것 때문에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성도간의 관계에서도 그러하고,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그러하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 진정한 감사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감사하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감사하면 아내의 말을 잘 듣습니다. 선생님에게 감사하면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불순종은 감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부모님께 불순종하면서 감사하다고 백번을 말해 보십시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믿지 않고 형제들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배우자의 말을 무시하면서 백번을 감사하다고 해보십시오.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합니다. 아니 순종하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불순종합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믿지 않고, 여러분의 형제들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늘 감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순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셋째, 진정한 감사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선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매주 수요일마다 수요예배로 모임을 갖지만 전에는 수요성경공부로 교리공부를 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요한계시록 성경공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리문답을 공부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공부한 덕택에 경남노회 장로피택자 교리교육을 제가 맡고 있는데 별도로 따로 준비하지 않고 우리가 공부했던 그 내용으로 교리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교리교육을 했고, 하반기에도 교리교육을 할 예정입니다. 그 가운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보면,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위로가 있는데 이런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복된 인생으로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2문)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답변을 보면? 다음의 세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이델 베르크 요리문답은 총 129문답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크게 세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우리의 죄와 비참함에 대하여
둘째는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셋째는 우리의 감사에 대하여
크게 이렇게 구성이 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셋째 부분인 우리의 감사에 대하여 배우는데,
우리의 감사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인가? 하면“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선행을 해야 합니까?”(86문) 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감사에 대한 부분에서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이 바로 선행입니다.
우리가 왜 선행을 해야 하는가?
이렇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선행을 할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합니다.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90문)
답변을 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마음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모든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을 행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진정한 감사란 무엇인가?
첫째, 진정한 감사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 진정한 감사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진정한 감사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2023년 맥추감사주일을 맞아서 오늘 본문 말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라는 말씀처럼 날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며,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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