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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으로 승리합시다
강동협 2023-06-03 추천 0 댓글 0 조회 351
[성경본문] 사도행전7:54-60 개역개정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령충만으로 승리합시다.

 

사도행전 7:54-60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이 성령강림주일이었고, 오늘이 성령강림절 후 첫째주일이기 때문에 이달의 성경읽기로 성령행전이라고 불리우는 사도행전을 정하고, 주일 설교도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하여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 성령강림주일에는 성령의 권능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고, 오늘은 성령충만으로 승리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스데반 집사입니다.

초대교회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 중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7명을 선택하면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은 그 일곱 명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말씀 사역에 집중하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7명의 집사를 선출하는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스데반은 이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명입니다.

 

사도행전 6:5절 말씀을 보면, 스데반을 가리켜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이라고 합니다. , 그런데 이 스데반 집사가 하는 일을 보니 집사가 하는 일을 뛰어넘어 거의 사도급의 사역을 하는 겁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일곱 집사가 교회안의 일을 돌아보았겠지만 나중에는 교회 안의 일만 아니라 복음전도자의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만이 아니라 빌립집사도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마리아 전도를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6:8절 말씀을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게 행하였고, 복음을 전하는데 회당에서 나온 사람들도 스데반과 논쟁을 하면 누구도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스데반은 거짓증인들의 고발로 인해 공회에 잡혀가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공회에서 스데반이 자신을 변론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 내용이 얼마나 율법에 박식한지 그 수준이 거의 사도수준입니다. 이달의 성경읽기로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 설교를 한번 쭈욱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스데반 설교를 듣고 난 이후 그들의 반응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입니다.

 

그들이 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마음에 찔려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갈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얌전하게 이를 갈았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의 상황은 매우 과격하고 격렬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51절부터 53절의 말씀을 보면, 그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여러분, 스데반 집사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된다.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다.”

 

스데반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거의 폭도 수준으로 험악해져 갔습니다. 여기저기서 욕도 들리고, 휘파람 소리도 들리고, 야유소리도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밖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55절부터 56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는데,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것을 보게 되지요. 그래서 그가 하늘을 우러러 외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하니까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던 사람들의 꼭지가 돌아버립니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귀를 막고(듣기 싫은 거지요)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서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스데반을 칩니다.

 

이 때 돌에 맞은 스데반의 반응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자 죽음을 직감하고 스데반이 부르짖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는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장면을 보면서 누가 순교하고, 그리스도인이 순교자의 신앙을 갖는 방법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순교합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이 순교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교자의 신앙을 갖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성령 충만을 입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성령 충만을 입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영적 전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영적 전쟁 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늘 싸우고 있어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본래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7:18,19)”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7:21-24)

 

이렇게 육체의 소욕은 우리가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적전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육체의 소욕을 물리칠 수 있는가?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입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입어야 껍데기 신앙을 벗고 알곡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성령으로 충만한 것을 말하고, 성령이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성령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 충만을 입을까요?

성령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물건이나 물체가 아니라 인격체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고, 우리의 변호자가 되시고, 우리를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시고, 우리를 돕는 분입니다. 단순히 어떤 힘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그래서 방언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이 성령충만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인격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마치 무엇과 같으냐면 사랑에 빠진 사람 마음안에 그 사랑하는 사람이 그 안에 가득한 것과 같습니다. 온통 사랑하는 사람 생각으로 충만합니다. 모든 삶의 기준에 그 사랑하는 사람이 빠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성령님의 생각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성령님과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님과 사랑에 안빠져요. 성령님께 푹 빠지면 광신도가 될까봐 적당하게 빠져요. 성령님과 사랑에 빠지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담근 발을 뺄 수 있도록 적당하게 성령님과 사귑니다.

마치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줘버리면 나중에 상처받을까봐 마음을 다 주지 않고 적당하게 선을 그으면서 사귀는 것처럼 절대 성령님께 나의 온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적당하게 성령님과 어느 정도 성의껏, 성령님이 섭섭하지 않도록 적당하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절대 성령 충만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의를 나타내고, 육신의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해야 합니까? 날마다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면서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고는 절대로 성령 충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기는 선물로 받는 것이지만 성령 충만은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생활에 실천하고, 기도하고..성령충만을 받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이기 때문에 감정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모독 받거나 거절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쓰는 능력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성도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에 무관심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충만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 충만에 무관심하면 성령께서 강제로 들어가서 충만히 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오고 싶을 겁니다. 힘들어서..우리가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는 것을 성령님이 아시는데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싶겠습니까? 인격이신데...

 

성령님은 인격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허락없이 막 들어와서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오느냐..마귀가 들어옵니다. 마귀도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보통 인격적인 존재라고 하면 지, , 의를 가졌다고 하지요? 인격적인 존재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천사, 인간..그런데 마귀는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인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격은 악한 인격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막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성령이 적당하게 있는 정도에서 멈추면 되겠지만, 그래서 적당히 거룩하게 살면 되겠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사람은 타락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바로 마귀가 우리의 허락도 없이 그냥 막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비어있는 집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 있지 않으면 그 빈 집에 마귀세력이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은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성도들에게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면 성령께서 충만하게 여러분에게 임하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삶에 큰 기쁨과 감사와 성령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충만에 무관심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치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주님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신앙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5장을 읽다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리고 얼마나 믿음이 좋아 보입니까? 그런데 성경의 평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사모하면 성령께서 아시고, 우리와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오시고, 우리의 모든 삶의 주권을 성령께 맡기게 되고, 우리는 성령 충만으로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성령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서 우리의 모든 삶의 주권을 성령님께 드리고,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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