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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비가 풀리던 날
강동협 2020-05-30 추천 0 댓글 0 조회 530
[성경본문] 요한복음14:25-27 개역개정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신비가 풀리던 날

 

2020531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by 강동협 목사)

요한복음 14:25-27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부터 50일을 기쁨의 50일로 보내고,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만큼 성령님을 기다리는 50일이 기쁨의 날이고 보면 오늘 성령강림주일이 교회력으로 보면 얼마나 의미가 있고 기쁜 날인지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신비가 풀리던 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늘 함께 존재하시면서 천지창조의 사역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 비치기에는 하나의 하나님으로 보이셨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여주셨지요.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의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그렇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당신의 실체를 드러낼 계획을 창세부터 이미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을 드러내는 최초의 말씀이 창세기 3:15절 말씀인데, 이 본문을 신학적으로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이 말씀은 하나님이 뱀에게 한 말씀입니다. 뱀은 사탄이지요.

사탄이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된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사탄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여기서 여자의 후손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고, 사탄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아담과 하와시절부터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드러날 것을 이미 예고하셨고, 계속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드러내신 날은 정말 하나님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날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시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계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천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 그 메시아를 짜잔하고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 이 순간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잊어 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지요. 최고로 가슴이 벅차는 기쁨의 순간일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아들이 그렇게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고, 그 선물을 꼬옥 꼬옥 숨겨두었다가 그 선물을 아들 앞에 짜잔... 하고 내어놓고 환하게 웃는 그 아버지의 마음이지요.

 

죄악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이 세상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회심의 카드,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신비가 풀리던 날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열리던 날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신비가 예수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분명히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세 분은 항상 같이 모든 사역가운데 함께 하시는데 하나의 하나님으로 세상에 나타내시다가 2000년 전에 그 하나님의 신비를 성자 예수님으로 세상에 드러내신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신비가 또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또 다른 신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님이세요.

 

오늘 본문 말씀이 있는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말씀하시는 내용이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14:1-4)

 

그러자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도마가 질문을 합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14:5)

사실 이 질문은 도마 한 사람만의 질문이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도 몰랐기 때문에 다들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이 완전 동문서답처럼 들려집니다. 어쩌면 답변이 너무 철학적입니다. 무엇이라고 답변합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완전 엉뚱한 대답이면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철학적인 답변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지적 능력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또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세요.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14:7)

 

이 말씀은 도대체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야 지금 이 말씀에 대하여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아..그렇구나 하겠지만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입장에서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되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고 또 보았다이해가 안되요.

 

아니나 다를까? 빌립이 질문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14:8)

 

당연한 질문이지요.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모르니까 빌립이 당연히 질문하지요. 빌립만 모르는 게 아닙니다. 열두제자가 다 몰라요. 그것을 빌립이 대신하여 질문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이 또 제자들의 마음을 햇갈리게 합니다. 알 듯 모를 듯 한 답변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나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4:9-12)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말씀,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해 될 것 같으면서도 안되는 것이지요. 말씀이 안풀려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말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5-27)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신비를 이제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련한 거처가 무엇인지 이해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이 믿어지고,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할 것이요 이보다 큰 일도 할 것이라는 말씀이 믿어지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라는 말씀도 믿어져요.

 

하나님의 첫 번째 신비가 예수님이고, 하나님의 두 번째 신비가 바로 성령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신비를 알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의 신비를 알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세 이래로 꼭꼭 숨겨놓은 비밀이거든요. 그 비밀인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는데, 그 비밀을 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리고 성자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성령님이 오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지상 대명령을 주시면서 어서 빨리 지상대명령을 수행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무엇을 먼저 하라고 했습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그것이 더 중요했어요.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예수님의 지상 대명령은 성령 받은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자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 받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야 지상 대명령을 이룰 수 있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어떻게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항상 함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성부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아버지를 모신 것이고,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예수님도 승천하여 하늘에 계시는데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성령 충만해야 예수님과 동행함을 깨닫고,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성령 충만해야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고, 성령 충만해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자유롭게 역사하세요. 그래서 성령 충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성령 충만하면 우울증이 사라지고, 성령 충만하면 담대해져요. 무서움이 사라져요.

 

성령 충만하면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성령 충만하면 남편을 사랑하고, 성령 충만하면 며느리를 사랑하게 되고, 성령 충만하면 아버지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님이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생기고, 성령 충만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되고, 성령 충만하면 성경의 말씀이 깨달아 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비인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성경대로 살 수 있는가? 성경대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경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성경대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성경은 이미 우리 선배들이 살았던 삶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능력이 있고, 우리보다 더 뛰어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 우리처럼 의심 많고, 우리처럼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 우리처럼 연약하고, 우리처럼 물질에 약하고, 우리처럼 삶의 고뇌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정치적인 일에 관심이 많고, 우리처럼 분노하는 사람들, 우리와 별 다를 바가 없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의 삶이 성경에 그대로 담겨져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원수를 용서합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면서 순교를 합니다. 정치가 아니라 복음을 전해요.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오히려 기도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받기 전에는 그들도 그렇게 사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들 자신을 너무 잘 알거든요. 자신들은 이미 예수님을 배신했고, 예수님을 저주했고,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쳤고, 생활가운데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면서 살았거든요. 너무 잘 알아요. 자신들의 상태를 너무 잘 알아요. 그런데 그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지요. 당시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신기하기만 했을 겁니다. 아니 신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신비한 겁니다. 너무 신비하지요. 그들이 왜 그렇게 됐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어도 서로 싸우고, 헐뜯고, 비방하고, 법정에 서로 소송 걸고, 간음했어요.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살잖아요? 예수님을 믿어도 서로 싸우고,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소송 걸잖아요. 목사도 그렇게 하고, 장로도 그렇게 하고, 권사도 그렇게 하고..다 그렇게 살잖아요. 그 때도 그랬어요. 예수님을 믿어도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 당시 기독인들이 다 그렇게 산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삶을 살았어요. 어떻게 그들은 그렇게 신비한 삶을 살았을까? 그들은 성령 충만 했어요.

 

똑같이 예수를 믿어도 그들의 삶이 달랐어요.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하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기독교인의 신비한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성령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5:15-18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이 오신 이 날은 하나님의 신비가 풀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인 예수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나님의 또 다른 신비인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의 신비요, 우리 삶 자체가 천국입니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자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진정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신비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신비를 안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성령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아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신비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 자체가 천국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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