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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
강동협 2019-03-20 추천 2 댓글 0 조회 639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2019210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예배 설교

(by 강동협 목사)

 

본문: 15:4-12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오늘도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가득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은 모두가 아주 익숙한 말씀입니다. 우리 꿈나무들도 다 암송하고 있는 구절이고, 우리 청소년부 학생들도 모두 암송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도 대부분 암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암송하지 않으신 분들도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이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그 만큼 이 본문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많이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소위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잘 알려진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 요한복음 15장을 포도나무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포도나무이다라고 자기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운학 장로님은 이 본문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사랑장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어떤 주석을 보더라도 이 장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사랑장이라고 설명한 주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주석들은 포도나무장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잘 붙어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많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가면 여의도가 있습니다. 흔히 여의도 하면 여의도 광장과 국회의사당이 떠오르고, 63빌딩, 쌍둥이 빌딩, kbs 방송국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산업은행, 국민은행,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서울국제금융센터 등 금융의 중심지로써 한국의 월스트리트가로 불려 집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의도에는 제법 잘 사시는 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금융의 중심지이며, 정치와 언론의 중심가인 여의도가 전에는 조그만 섬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사역할 때 여의도 구역을 맡게 되어서 심방을 했는데, 그곳에 살던 성도님들이 해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여의도는 옛날에 이름이 너섬이라고 불렸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너섬이라고 치면 너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점들이 여의도에 있습니다.

 

, 그런데 그 분들 얘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왜 이름이 너섬이냐?

 

옛다 너나 가져라..그래서 섬 이름이 너섬이라는 겁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옛다 너나 가져라

 

한마디로 말하면 쓸모없는 땅이라는 거에요. 얼마나 쓸모가 없으면 아무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옛다 너나 가져라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요, ‘옛다 너나 가져라는 이름의 너섬’, 쓸모없는 섬, 너섬에 큰 대교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가 쓸모없는 섬인 너섬을 육지와 연결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쓸모없는 너섬이 금싸라기 땅, 여의도가 된 겁니다.

 

저는 그 지역에 사는 분들에게 여의도의 옛 이름 너섬의 뜻을 듣는 순간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5장이 생각나면서 어마어마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옛다 너나 가져라

쓸모 없는 섬, 너섬에 큰 다리 대교가 한 개 두 개 세 개 척척 붙어서 육지와 연결이 되는 순간 너섬이 한국의 금융의 중심지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는 금싸라기 땅인 여의도가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인생이지만 예수님과 꼬옥 연결되어서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보배롭고 존귀한 인생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랑하는 우리 어린이, 그리고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겠습니까? 정말 솔직하게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여러분은 자신에게 몇 점을 주고 싶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에게 가치를 매긴다면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가치를 매긴다면 여러분은 자신에게 얼마만한 가치를 매기겠습니까?

 

스스로에게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솔직하게 스스로 자신의 점수와 가치를 매겨서 정말 자기 자신이 볼품없게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쓸모없는 너섬이 금싸라기 땅 여의도가 되는 것처럼 쓸모없고,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인생이 보배롭고 존귀한 인생이 되는 비결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면 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예수님을 꼬옥 붙들어서 예수님 안에 거하여 있기만 하면 우리의 인생은 보배로운 인생으로, 금싸라기 인생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얼마나 좋아요. 생각만 해도 즐겁고, 생각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 집니다.

 

그러면 매우 중요한 주제를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 거해야만 풍성한 열매를 맺고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을 포도나무장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그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제자훈련 받고, 새벽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고, 교회 봉사하고, 혹은 전도를 하거나, 봉사활동을 비롯하여 착한 일을 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4절 말씀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은 바로 9절과 10절에 나옵니다.

 

9절과 10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보잘 것 없는 인생, 하찮은 인생이 보배롭고 존귀한 인생으로 바뀌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럼 도대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우리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예수님의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암송하고, 주일 성수하고, 교회 봉사하고, 전도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더라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직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 그러면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12,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이라고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그러니까 결국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에고에이미...‘나는 포도나무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이유는 결국 이것을 말씀하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니까 여운학 장로님이 고전 13장은 바울의 사랑장이요, 예수님의 사랑장은 요한복음 15장이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암송하고 있는 유니게 과정 1단계, 100절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고전 13장을 맨 앞에 두고, 요한복음 15장을 맨 뒤에 두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놀라워요.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읽고, 주일성수하고, 기도하고, 교회 봉사하고..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다 풀립니다.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의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지게 되고, 불에 던져져 살라집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예수님의 계명,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모두 응답받습니다. 기도응답의 비결이지요. 반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싸우고 다투는 가운데서는 무엇을 구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돈을 많이 벌고,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요한복음 15장이 풀렸습니까? 풀렸어요.

 

,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현장 곧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삶의 현장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현장이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장소입니다. 그 삶의 현장이 교회일 수도 있고요, 그 삶의 현장이 가정일수도 있고, 그 삶의 현장이 직장일수 있고, 그 삶의 현장이 학교일수가 있어요.

 

우리의 삶의 현장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자리라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장소가 바로 삶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삶의 현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주어진 매우 거룩한 자리입니다. 서로 싸우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우리의 삶의 현장은 서로 시기하고 분내라고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어떤 자리라고요? 서로 사랑하라고..서로 사랑하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주어진 거룩한 자리..

 

사랑하는 더사랑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현장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가운데 처하든지 여러분이 처해 있는 삶의 현장은 매우 소중한 자리 곧 사명의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사명의 자리이며, 여러분의 직장도, 여러분의 사업장도 사명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처한 삶의 현장은 매우 소중한 곳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현장도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은 어디입니까? 가정이고, 학교가 여러분의 삶의 현장입니다. 집이 싫다고 집을 나가거나, 학교가 싫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 모습은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삶의 현장은 학교입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어떻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학교는 배움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성실하게 배움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 거룩한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말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인생에서 보배롭고 존귀한 인생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 보배롭고 존귀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 예수님 안에 온전히 거하게 하시고, 이제는 참으로 보배롭고 존귀한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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