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11:5-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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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기도의 자세와 최종목적
2025년 12월 21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설교
■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
찬양: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시니까?
■ 설교를 위한 기도
■ 본문: 눅 11:5-13절
서론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시 분들과 천국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누가복음 11장 5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본문으로 「기도의 자세와 최종목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그 가르침의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핵심을 주기도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실제로 본문 앞부분을 보면, 한 제자가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합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이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오늘 본문을 통해 기도에 반드시 필요한 자세와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에 반드시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1. 기도에 반드시 필요한 자세 (5–8절)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밤중에 벗의 집을 찾아가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거절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합니다. 그 결과, 벗 된 관계 때문이 아니라 그 간청함 때문에 결국 필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는 포기하지 않는 간절함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함이란 다른 대안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만 붙드는 태도입니다.
간절함은 절박함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이 간절함에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힘이 있을까요? 간청함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간청함이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끈질김, 체면을 내려놓은 집요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간청함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예화1)
한밤중에 아이가 갑작스러운 고열로 경련을 일으킨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는 체면도, 시간도 생각할 겨를 없이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제 아이가 죽어가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 어머니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조건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간청함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체면을 내려놓고, 다른 대안을 모두 포기한 채 하나님만 붙드는 기도가 바로 간절한 기도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의 응답은 말의 유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간절함의 깊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2.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9–10절)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세 동사는 점점 더 적극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구하는 것은 말로 요청하는 단계이고, 찾는 것은 행동으로 나아가는 단계이며, 두드리는 것은 거절을 각오한 지속적인 시도입니다.
기도는 한 번의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끝까지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거절당했다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이 열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이며,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예화2)
기도는 우물을 파는 일과도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땅을 파다가 흙이 조금 젖기 시작하면 그만둡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물이 터질 때까지 계속 팝니다. 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깊이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많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응답 바로 앞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더 깊이, 더 가까이, 더 끝까지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초청입니다. |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반복해서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실까?
하나님은 우리가 조용히 기도해도, 마음속으로만 기도해도 다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실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있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3. 우리가 반드시 구해야 할 것, 성령 (13절)
예수님은 마침내 기도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기도의 최종 목적지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응답의 목록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기도의 목적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기도의 최종 목적지는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명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얻기 위하여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되 가볍게 ‘똑똑똑’ 노크하는 것이 아니라, 문이 열릴 때까지 ‘쾅쾅쾅’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령 충만은 간절하고도 절박한 문제입니다.
(예화3)
아무리 최신형 전자기기라도 전원이 연결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버튼은 있고, 기능도 많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 없는 신앙이 그렇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능력이 없고, 말씀은 알지만 삶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의 모든 가르침을 마치시며, 다른 것이 아니라 성령을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전원입니다. |
4. 성령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성령 충만은 받으면 좋고, 받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의 것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실상 우리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그렇게 사는 것 같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면 견디지 못할 정도의 간절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기도에 대한 모든 가르침을 마치시면서 이렇게 끝내셨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의 최종 목적지는 성령 충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고난을 이길 힘도 없고, 성령이 없으면 세상의 유혹을 이길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환경을 이길 힘이 생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5장 16절과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5.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대림절의 마지막 주간을 지나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단순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으로 사역하셨으며,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남겨 주셨습니다. 성탄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의 기도는 무엇을 향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성탄을 기다리며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문제의 해결입니까, 환경의 변화입니까, 아니면 성령 충만입니까?
성령 충만은 성탄의 가장 실제적인 열매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고,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겸손히 오신 예수님을 닮아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이번 한 주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삽시다. 형식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로 주님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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