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45:5-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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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 [성경본문] 창세기50:2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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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감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2025년 11월 16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
찬양: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시니까?
■ 설교를 위한 기도
■ 설교 본문: 창 45:5-8, 50:20
1. 서론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1년에 두 번 맥추감사주일과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며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절기 가운데 혹 생략하는 경우가 있어도, 감사절만큼은 반드시 지켜 설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를 잃으면 다 잃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으면 하나님을 잃고, 부모에 대한 감사를 잃으면 부모를 잃고, 배우자에 대한 감사를 잃으면 배우자를 잃습니다.
반대로 감사를 회복하면 하나님을 다시 얻고, 관계가 회복되고, 삶이 다시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주일은 단순히 한 해의 곡식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신앙 회복의 날입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감사는 쉽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도 있고, 손해 보는 일도 있고, 뜻하지 않은 고난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 요셉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의 고백이 피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은 요셉의 인생을 통해,
감사는 믿음의 고백이며, 감사가 믿음의 통찰을 낳고, 감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으로 이끈다는 메시지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2. 요셉의 삶에 드러난 하나님의 섭리와 감사
1) 감사할 수 없는 현실
요셉의 삶은 감사할 수 없는 현실의 연속이었습니다. 요셉의 청소년 시절은 왕따 인생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만 요셉을 사랑했을 뿐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완전히 왕따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들로부터 왕따가 된 주요 원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였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낳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훨씬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에게는 입히지 않은 ‘채색옷’을 지어 입혔는데 이것은 형제들에게 큰 질투심과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창 37:4)
게다가 요셉은 그 질투심과 분노에 기름을 더 붓게 되는데, 형들이 양을 칠 때 저지른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게 되고, 이것 때문에 형들의 분노는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꿈을 꾸게 되는데,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 단에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 이야기를 형들과 아버지에게 그대로 말해 버립니다. 이 꿈들은 요셉이 장차 형들 위에 군림할 것을 암시했기 때문에 형들은 요셉을 더 미워하고 시기하게 됩니다.
결국 요셉은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 하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개에 팔리게 되고, 애굽으로 팔려가서 보디발 장군의 노예가 됩니다. 형들에게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팔려가서 노예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보디발 장군과 그 가족에게 충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보디발 장군 집의 가정총무가 되어서 집안의 모든 일을 관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서 이제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노예로 팔려가도 좌절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았는데 오히려 이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힙니다. 노예보다 더 낮은 신분의 죄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원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2)하나님의 섭리와 감사
요셉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요셉이 감사할 수 없는 현실에 닥쳤을 때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요셉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요셉의 태도를 잘 봐야 합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인생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았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노예들에게는 볼 수 없는 비범함과 총명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다른 노예들과 달랐어요. 불평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거나 원망하거나 비관적이지 않았고, 희망을 말하였고, 감사를 말하였어요. 이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로 사는 동안 요셉은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요셉은 이전에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자질하는 못된 동생이었습니다. 자신의 꿈 이야기를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없이 자랑하는 철없고, 눈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요셉이 언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까?
바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와서 보디발 장군 집의 노예로 있는 동안 그는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는 감사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의 모든 행동과 정신까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그를 유혹할 때 요셉의 행동을 보면 요셉이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젊은 부인이 자신을 유혹할 때 완강히 거부합니다.
부인의 유혹은 아주 집요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니 예쁘기도 했거니와 부인의 협박을 이겨낸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당당하게 거부합니다. 그가 그 강력한 유혹과 협박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 큰 악을 행할 수 없다는 ‘하나님 앞에서’신앙을 가졌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이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반예화1)
암 말기 환자였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며 누워 있었습니다.
수간호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더 오래 살겠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오늘 숨 쉬는 것 하나만이라도 감사하며 살아보세요.”
그래서 청년은 하루에 “감사합니다” 한마디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침에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감사합니다.”
물을 마실 수 있으면 “감사합니다.”
누가 방문만 해도 “감사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표정이 변하고, 관계가 변하고, 삶의 태도가 변했습니다.
몸은 여전히 약했지만 마음은 완전히 강해졌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몸을 치료하지 못했지만, 그의 감사가 그의 영혼을 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환경을 바꾸지 못해도 사람을 바꿉니다.
요셉도 그러했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삶이었지만 감사의 태도가 그의 인격과 시선을 바꿔놓았습니다. 그의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꿔졌어요.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가 된 것은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고, 안되어 보이는 일이며, 요셉의 입장에서는 실패한 인생이었겠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미래의 준비’였고, 요셉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히 준비되는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과 삶도 그러한 관점으로 바라봐 볼 수 있는 여유를 조금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고, 내 인생이 초라한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시선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믿으시기 비랍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감사의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통찰을 불러오는 감사.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할 때 믿음의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창세기 45:5-8절에서 요셉의 믿음의 통찰력을 보십시오.
5절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절에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8절에서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이것은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인생을 해석하는 능력, 즉 믿음의 통찰력입니다.
자신이 당하는 환난과 고난을 하나님의 시선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환난과 고난 중에서도 감사의 고백을 할 수가 있고, 그러한 감사의 고백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자 자신의 전 인생을 관통하는 믿음의 큰 통찰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고, 당신들이 나를 미워해서 나를 죽이려 하고 나를 이곳에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냈고.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놀라운 믿음의 통찰력입니다. 정말 우리가 이런 믿음의 통찰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위대한 믿음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믿음의 통찰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감사의 고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에서 믿음의 통찰력이 생기고, 감사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감사에서 병이 낫고, 감사에서 깨어진 인간관계가 회복이 되고, 감사에서 용서가 나오고, 감사에서 사랑이 나오고, 감사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4.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 50:20절을 보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것은 요셉의 일생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저는 저의 일생을 통틀어서 정말 이렇게 고백하고 싶어요. 이것은 대단한 고백입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나에게 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어요. 여러분!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요.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아멘? 못 믿겠어도 그래도 아멘!
여러분에게 닥치는 모든 악을 하나님은 반드시 선으로 바꾸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야 해요. 우리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꼭 그렇게 살아갑시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무엇입니까? 감사에요. 모든 상황가운데 감사하는 노력을 하고, 감사의 습관을 가진 사람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5.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감사는 환경이 아니라 믿음의 선택이자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하면 믿음의 통찰력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감사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감사하면 관계가 회복되고,
감사하면 삶이 새로워집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통해 “감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의 삶에 가득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전인생을 감사함으로 믿음의 통찰력을 갖게 하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시고, 감사함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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