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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
강동협 2025-02-02 추천 0 댓글 0 조회 14
[성경본문] 사도행전1:1-11 개역개정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

 

202522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1:1-11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설 연휴를 잘 보내고 계시지요? 사람 사는 것이 다 다르겠지만 어떻게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런데 그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거나 다른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자신에게서? 그렇지 않지요. 어떻게 행복이 내 자신에게서 나옵니까?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진정한 행복이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놀라운 말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행복이 나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한다면 여러분, 정말 여러분 자신에게서 행복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입니까?

 

불완전하고, 성질도 못됐고, 조금만 섭섭해도 미워하는 존재잖아요. 그러니 우리에게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진정한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에게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찾을 수가 없어요. 나 자신에게서 내가 찾을 수 없는 행복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의 원동력을 찾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힘들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냥 속아주는 거지요.

 

저도 여러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속아도 그냥 믿어주는 것이지요. 그게 우리 사람인 거에요. 여러분, 자식도 믿지 마시고, 남편도 믿지 마시고, 아내도 믿지 마세요.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믿어주고 사십시오. 믿어 주는게 속아주는 겁니다. 그냥 속아주면서 사는 겁니다. 믿으면 실망합니다. 우리가 믿을 대상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 잘 믿으시고, 사람은 사랑하며 사십시오. 원래 우리 사람은 사랑하면서 살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예수그리스도에게 나옵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남편 제대로 만나지 못해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할 수 있고, 아내 제대로 만나지 못했어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할 수가 있고, 자식 제대로 만나지 못했어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오늘은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지난 달 이달의 성경읽기가 누가복음이었는데 누가복음에 이어서 이번 달에는 사도행전입니다. 저자가 같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의 책으로 봐도 됩니다.

그래서 지난 번 누가 복음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었는데, 오늘은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만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성령님을 빼면 앙꼬빠진 찐빵과 같은 책이기 때문에 성령님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성령님을 빼면 우리의 삶은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인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바른 정체성은 항상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령님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저자인 누가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도입부에서도 성령님을 말하고 있어요. 4,5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그런데 제자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6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이까?”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어요. 여러분, 나라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던 유대가 회복되는 것이 유대민족에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우리나라가 그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것이 가장 우선이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큰 일이요, 그것이 의로움을 결정하는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습니까? 나라를 위하는 것은 이고, ‘애국이고, 나라의 독립을 막는 것은 불의요, 매국노였을 정도로 나라가 회복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너희가 알바 아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입니까? 그것은 너희가 알바 아니다. 오직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오직 제자들이 받을 성령, 그리고 성령 충만에 관심이 있었어요.

 

오늘날 저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너무 애국자가 많아요. 당연히 애국해야지요. 그런데 성령 충만하지 않은 애국자가 너무 많아요. 교인으로서, 성도로서 진정한 애국은 성령 충만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7-8)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시기는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지금 너희는 오직 성령을 받으라..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롯유다 빼고 11명 이름이 다 있고, 여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들이 다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다고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받기 위해서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서..

간절하게 성령님을 사모하면서 기다렸어요. 이것이 오늘 성경본문의 내용입니다.

 

, 그러면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늘 성령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하고,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하여 성령님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 그러면 성령님은 생명의 영이지요? 로마서 8:6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영의 생각, 바로 성령님의 생각입니다. 성령님의 생각은 생명입니다. 성령님은 생명의 영이에요. 항상 생명을 사랑하고, 살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죽이는 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항상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항상 생명을 생각합니다. 죽이는 생각이 들어오면 너무 힘들어요. 고통스러워요. 평안이 없어요. 왜냐하면 내 안에 성령님이 괴로워하는 거에요. 내가 죽이는 생각을 하면 성령님이 힘들어해요. 성령님이 싫어해요. 그래서 내 안에 평안이 없어요.

 

여러분, 마음껏 미워하고, 저주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보세요. 잘 살아지나. 제가 백퍼센트 장담하는데 마음에 미워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고, 인생이 평탄할 수가 없고, 평안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럴까요?

우리가 미워하고 불평하고 싸우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너무 불편해 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해요. 마음이 안 맞잖아요?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은 힘들거든요. 그것처럼 성령님도 힘들어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4:30-32절까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반대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성령님이 기뻐하세요. 즐거워하는 겁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즐거워하니까 우리의 영도 즐거워요. 우리의 영이 즐거우니니까 우리 삶이 행복해요.

 

둘째로,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탄식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항상 성령충만한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성령충만한 삶을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항상 마귀의 유혹을 받고 있는데, 마귀는 악한 영이고, 우리는 육신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지도 않아도 될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이 받은 세 가지 시험과 같은 시험을 받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시험을 받을 때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겨낼 것을 시범으로 보여주셨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어도 우리는 항상 넘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됩니다. 죄짓지 않고 항상 의롭게 사는 사람은 없어요. 마음으로든, 생각으로든 우리는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삽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님을 기억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받아서 다 쓰러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넘어지고 쓰러지고, 마음이 무너지고, 좌절과 절망가운데서도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하고 있는 성령님을 생각하고 반드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로마서 8:26절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우리가 잘못하고 넘어지고 쓰러질 때 우리는 성령님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가 있습니다.

 

흔히들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살렸다고들 하지요?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머니가 기도한 내용을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해서 나의 모든 잘못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어주고,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해서 내가 더 이상 이런 삶을 살수가 없다. 나는 이제 나의 모든 삶을 청산하고 어머니의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생각하고 우리는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좌절과 절망을 던져버리고 일어나야 하고,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새 희망을 품고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을 사모하며 살아갑시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보다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더 너희에게 유익하다. 왜냐하면 내가 떠나지 않으면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떠나면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16:7)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우리에게 성령님이 계시는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보물입니다.

이 성령님과 함께 하면 행복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늘 성령님을 생각하고, 성령님이 나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어떤 환경에 있든지 다시 일어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두다 일어서게 하여 주십시오. 성령님을 사모함으로 절망가운데서, 눈물과 한숨 가운데서, 잿더미 같은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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