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1:1-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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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환난 중에 믿는 믿음
2024년 10월 6일 창원더사랑교회 설교
본문: 살전 1:1-10절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다시 한번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능력이 되게 하십시오”
많은 사람을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거나,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나 동일한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입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크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울 때는 자녀양육의 문제가 크고, 부모님의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부모님을 어떻게 모실 것인가?를 놓고 형제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그 이후에는 유산 문제로 형제간에 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상황에 따라 부부간의 관계의 어려움도 있고, 직장 내에서 관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둘째는 환경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건강과 재정문제가 그러하고 외부적으로 발생하는 고난이나 어려움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모든 문제는 누구에게나 겪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한번 정도는 다 겪어 보았을 문제이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이런 문제와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겠는가?
저는 그것에 대한 해결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결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는 방면 어떤 사람은 그 해결방법을 잘 사용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능력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달의 성경읽기로 10월에는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디모데 전서와 후서의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의 내용을 본문으로 하여 “환난 중에 믿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있을 때 데살로니가에서 온 실라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교회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너무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데살로니가교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한 사람이 나타나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환상을 봅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게도냐인 환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그의 일행이었던 디모데와 실라 그리고 누가가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자색 옷감장사인 루디아의 가족들과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들을 전도해서 빌립보교회를 개척합니다.
그 후에 바울일행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간 장소가 바로 데살로니가입니다. 이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바울은 신이 났지요. 왜냐하면 빌립보에서의 사역이 매우 성공적으로 됐거든요. 루디아 가족들을 전도하는 것은 물론 바울일행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는데 그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는 기적까지 체험하면서 빌립보 감옥 간수를 비롯한 그 가족들을 다 구원하고, 빌립보 교회가 떡 하니 세워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신이 나서 다음 장소인 데살로니가로 갔겠습니까?
역시나 데살로니가에서도 얼마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는지 3주 동안 회당에 가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데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예수를 믿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는 거에요.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이 데살로니가에 사는 유대인들의 텃새가 너무 심한 거에요. 뭐 그냥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자거리의 깡패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와서 바울이 머물고 있던 야손의 집으로 쳐들어와 가지고, 집주인인 야손과 몇몇 형제들을 끌고 감옥에 가두는 겁니다.
다행이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서 베뢰아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이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소동을 부립니다. 그러자 바울은 다시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에 남겨두고 아덴으로, 그러니까 지금의 아테네로 떠납니다. 아덴에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와 쟁론을 벌이던 바울은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서 아레오바고 법정에 가서 거기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 때 예수를 믿은 사람이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몇 사람이 믿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아덴을 떠나서 고린도에 갔는데 여기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서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로 이 때 마게도냐에서부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데살로니가로부터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을 만나기 위해 내려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 와서도 힘이 들었던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2:3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던 바울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고린도에 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18:5절이하의 말씀을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합니다. 그리고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이 환상을 보고 바울은 더욱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다’(고전 2:4)고 말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 와중에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감동이 되고 너무 기뻐서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발신자가 누구입니까?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입니다. 왜 발신자가 이 세 사람이 되는 지 이해되지요?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마게도냐 데살로니가로부터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와서 데살로니가교회 이야기를 전한 겁니다. 바울이 그 얘기를 들은 다음에 이 세 사람이 편지를 쓴 겁니다.
바울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부터 어떤 소식을 들었습니까?
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들었어요. 자, 그런데 바울이 정말 기뻐하고 칭찬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많은 환란가운데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본받고, 주 예수님을 본 받는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자,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고 감동이 되는 말씀이 바로 6절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가운데 있었다는 겁니다. 고난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박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 박해를 피해서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피신했고, 또 거기까지 따라와서 박해하니까 배를 타고 아예 다른 지역인 아가야 지방의 아덴으로 피한 겁니다.
여러분, 웬만한 박해면 바울이 피신하겠습니까? 데살로니가에 겨우 3주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더 남아 있을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은 아덴으로 피신을 했지만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마게도냐 지방에 남겨 둔 것이지요. 생명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베뢰아에서도 데살로니가 유대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이 있어서 아예 다른 지방인 아가야의 아덴으로 피신한 겁니다.
자, 이러한 사정을 본다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얼마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서도 믿음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지 바울은 그것을 매우 기뻐하였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보는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고난과 환란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서 바울과 주 예수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고난과 환난 중에 믿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고난 중에 더욱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과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명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이나 시련을 주시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6,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신약성경 386쪽에 있습니다. 시작!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여러 가지 시험’이란 말은 고난과 환난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고난과 환난 때문에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오히려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음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되고, 예수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의 확실함이란 믿음이 순수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많은 단련을 받아 우리 믿음이 순수한 믿음이 되어서 우리 주님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고난과 시련을 당할 수밖에 없으나 그런 가운데 있는 사람은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 바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처음 믿을 때부터 고난과 환난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주 예수님과 사도바울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오늘 본문 1:7,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각처에 퍼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고난 중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 있더라도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기 바랍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단련할만한 기회가 너무 많습니다. 가끔 그런 기회가 생기면 별로 안좋습니다. 자주 있어야 합니다. 가끔 그런 기회가 있다면 언제 단련합니까?
운동선수가 올림픽에 나가기 전에 시합에 많이 출전해 봐야 올림픽 준비를 제대로 할 수가 있듯이 우리도 우리의 믿음을 연습하고 단련하는 기회가 많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실패해도 다음에 또 기회를 노릴 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회를 우리에게 많이 주셨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고난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면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단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 고난 중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환난 중에 더욱 믿음 가운데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게 살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만약에 그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나의 믿음의 부족함이 드러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해야지요. 나의 믿음의 부족함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입니다. 모든 발전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을 통해 발전하는 겁니다. 인간관계속에서도 대부분의 문제는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는데서 발생합니다. 부부관계속에서도 배우자가 각자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자신은 좋은 배우자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남편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아내의 고마움을 아는 것이고, 아내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남편이 고마운 것이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자신과 함께 살아주는 사람이 고마운 겁니다.
부모와 자녀관계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자신의 불효를 알아야 더욱 부모님께 미안하고 부모님께 감사한 법이고, 형제간에도 겸손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은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있는데 형은 부모님께 불효를 하고..이렇게 생각하면 형제간에 싸움이 나는 법입니다. 이것은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자신의 믿음의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나의 믿음이 고작 이런 믿음이었구나”
자신의 믿음의 수준을 깨닫게 되니 얼마나 좋아요.
“아, 그래 다음에는 이런 상황이 오면 더 굳건하고 단단한 믿음으로 살아야하겠구나” 더욱 기도하고, 더 다짐하면 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더 성장해 나가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의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좋아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있는 믿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믿음의 크기에 멈추지 말고 더욱더 큰 믿음이 되도록 살아있는 믿음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점점 더 자라야 한다는 겁니다. 죽은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그나마 있던 믿음조차도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믿음생활은 오늘 믿음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라는 겁니다. 성장하는 거에요. 오늘 넘어져도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넘어짐을 내일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환란과 고난 중에도 끝까지 믿음으로 버텨내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고난과 환난 가운데 많은 시험과 단련을 받아 더욱 성숙하고 큰 믿음을 갖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살아있는 믿음생활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 중에 더욱 믿음을 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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