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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강동협 2023-12-24 추천 0 댓글 0 조회 105
[성경본문] 누가복음2:8-14 개역개정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20231224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2:8-14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이며, 크리스마스 이브날입니다. 여러분, 이브가 뭔지 아십니까?

 

이브는 이브닝의 줄임말로서 성탄절 전야를 카리킵니다. 그러니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노래가 바로 그리스도 탄생 전야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대림절 넷째 주일, 성탄절 이브날을 맞아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평화의 왕, 화평의 왕..예수그리스도..

 

오늘 본문을 보면 한 천사가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10-12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한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며 구주 탄생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말은 그들이 고통가운데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고통가운데서 구원할 구원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구주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구주를 기다리는 상황인 그 고통은 무엇이겠습니까?

육신적으로 보면 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식민생활에서 오는 육신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말하는 구주는 그들을 로마 식민 지배에서 구원할 구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주로 오신 목적도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말하는 그들의 고통은 바로 죄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죄의 고통은 정작 그들도 잘 깨닫지 못하는 고통이었습니다.

 

놀랍지요? 자신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이 고통의 원인을 모릅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입니까?

로마식민지배로부터 오는 고통이지요? 그러니까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슬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배하에 있을 때에 느끼는 고통이 그들에게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질병의 고통이 있습니다. 중풍병자의 고통이 있고,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의 고통이 있고, 걷지 못하는 지체 장애의 고통이 있고,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나병환자의 고통이 있고, 남편을 잃은 슬픔과 고통이 있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이 있고, 가난과 굶주림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있었고, 인간관계의 깨어짐에서 나오는 고통이 있고, 형제간에 서로 싸우고 다투고, 사람끼리 서로 죽이고 죽이는 그러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 외도 얼마나 고통이 많겠습니까?

 

이러한 고통 가운데 있지만 그들은 그 고통의 근원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어요.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원래 인생이 그러한 것이고, 늘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 고통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그들이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다 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조상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기는 올 텐데 언제 올지 모르니까 정말 막연한 기대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천사가 말하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구원자입니까? 너희의 죄로부터 구원할 구주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죄의 고통가운데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자신들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사실을 천사가 알려주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 그들이 죄의 고통가운데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곧 불화입니다. 불화가 무엇입니까?

가정에 불화가 있다? 형제간에 불화가 있다? 여기에서 불화는 화목하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가정에 불화가 있다는 말은 가정이 화평하지 못한 것이고, 형제간에 화평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은 곧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곧 하나님과의 불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인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향해 화해의 손길, 엄밀히 말하면 용서의 손길을 내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동안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화평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되는 한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쁨의 소식인데, 이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놀라운 권세를 누리게 되었으니 이것만큼 놀라운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화평을 잘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마음껏 화평을 누리세요. 얼마나 좋아요. 하나님과 화목하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화목하면 너무 너무 행복하잖아요.

하나님과 화목하면 하나님께 못할 말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과 화목하면 부끄러운 것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과 화목하면 너무 행복해요. 그런데 그것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껄끄러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하나님 속도 모르고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께 늘 미안해요..죄를 지으니까 또 어떻게 합니까? 숨어버려요.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되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니까 숨어버려요. 죄를 지으면 숨게 마련입니다. 그게 본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51,2절 말씀을 보면,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아멘!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만 아니라 이웃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분열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까?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가정에서 평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부부간에 평화를 만들고, 부모와 자녀간에 평화를 만들고, 형제간에 평화를 만들어가고, 친인척 간에 평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가정에서 평화를 만들겠습니까? 부부간에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면 됩니다. 왠만하면 남편이 하는 부탁 거절하지 마시고, 아내가 하는 부탁? 거절하지 않으면 됩니다. 때로는 남편이 하는 부탁이 귀찮을 수가 있고, 아내가 하는 부탁이 귀찮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탁이라 할지라도 귀찮고 번거로운 부탁이라할지라도 투덜거리면서라도 그 부탁은 들어주면 됩니다. 안 들어주면 뒤끝이 있습니다.

왠만하면 가족이 하는 부탁은 거절하지 말고 들어줘야 합니다. 물론 가족이 하는 부탁이라 할지라도 가정이 무너지거나, 가정 경제가 어렵거나 하면 들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가정경제가 어려운데 막 부탁을 들어주면 안되지요. 그건 어리석은 겁니다. 지혜롭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왠만하면 가족이 하는 부탁은 거절하지 말고 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절로 솟아납니다.

 

교회에서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분열과 다툼의 원인이 되게 만들어서도 안되고, 나 자신을 분열과 다툼의 자리에 들어가도록 방치해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을 분열과 다툼의 자리로 끌어들여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신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와 사회를 보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투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물론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겠지요. 불의와 타협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나 싸우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해 본 다음에 도저히 안될 때 그 때 싸워도 됩니다. 어쨌든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잘 싸워요. 신앙의 투사입니다.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그 사람들 말 들어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 잘하는 사람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객관적이지 않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데는 제일 앞서서 가고, 분열과 다툼의 자리는 최대한 가지 않되 만약에 평화를 만들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분열과 다툼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맨 나중에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 이웃들과 평화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평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일에 자신의 전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사도바울은 간절하게 사람들에게 간청을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간절하게 요청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알 사람이 없고, 우리가 이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화목할 사람이 없고, 우리가 이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죄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할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대림절 넷째 주일을 맞아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평하고, 이웃과 화평하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욱 이웃과 화평하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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