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14:1-12 개역개정
-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너희가 서로 받으라
2023년 8월 6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설교
본문: 롬 14:1-12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유의하시고 시원한 여름, 행복한 여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너희가 서로 받으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몇 일 전에 제주도에 살고 계시는 어떤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원래 서울에서 알게 된 권사님인데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살고 계신 분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 전화통화도 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전화통화도 하지 못하다가 지난 주에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우리 도시락 사역이라든가, 행복전도와 목회훈련원 사역들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댓글이나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다 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페이스북을 통해서 어느 정도 페북 친구들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자주 만나지 않지만 가끔 만나도 낯설지 않고 자주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매우 좋은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단점도 있습니다. 저는 평소 알고 지내던 분들과 페북 친구를 맺고는 가끔 후회가 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분은 매우 인격적이고, 반듯하고 좋은 분인데, 그 분과 페북 친구를 맺고 그 분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그 분이 욕을 많이 하고, 비판도 많이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때부터 알아온 사람들도 있고, 과거 교회에서 함께 신앙 생활했던 사람들도 있고,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사람도 있고, 여러 사역을 하면서 알아온 분들도 계십니다. 목사도 있고, 평신도도 있습니다. 다 괜찮은 사람들이었고, 현재도 제법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욕을 잘 해요. 비판도 잘 하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냐? 아니요. 믿음도 좋아 보여요. 그런데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안에 대하여는 비판을 잘 해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얼마나 비판하는지 몰라요. 어떤 경우에는 진보적인 성향 가진 사람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을 엄청 비판해요. 이런 경우에는 나이도 없어요.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어른을 비판합니다.
그러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좀 나으냐? 그렇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도 만만치 않아요. 욕도 잘하고요. 그래도 신앙이 좋고 나름대로 인간성도 좋은 사람들인데 괜히 그런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페이스북 어플을 삭제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비판하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을 보면 로마교회 안에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었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고기라 함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인데요, 당시에는 이방신전에 드려졌던 고기들이 시장 안에 유통이 되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까 시장에 가서 고기를 사면 그 고기가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인지, 아니면 깨끗한 고기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 신자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는 일을 아예 피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 고기는 이방신의 신전에 드려졌던 제물일 수도 있고, 제대로 피를 빼지 않은 고기일수도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다만 채소만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 안에는 또 다른 문제로 서로를 정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대인 그리스도인 중에는 구약 때부터 조상들이 지켜왔던 안식일을 동시에 지켰고, 그 중에는 안식일과 유대 절기들을 다른 날보다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안식일과 날과 절기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을 다 같게, 모든 날을 다 거룩하게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하면서 서로를 비판했던 것 같습니다.
자, 오늘 본문 로마서 14:1-6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아멘!
너희 중에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고기를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나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사람이나 서로를 받으라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성경이 말하는 바는 어떤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그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받아들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인내하고, 참고, 기다려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사람을 용납하여주고, 부족함을 인정하여 주고, 그 사람의 단점을 그대로 감싸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왜 우리가 서로 비판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서 먹는 사람은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소리,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하나님이 주셨는데 감사함으로 먹으면 버릴 것이 없지. 저렇게 믿음이 약해서야 어디..쯧쯧쯧” 이렇게 업신여기는 겁니다.
반면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떻게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우상의 더러운 것을 멀리하라는 사도들의 결정을 함부로 무시할 수가 있어..말로는 모든 음식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합리화시키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모욕하지? 그들은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 거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셨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채소만 먹겠다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겁니다.
반대로 고기를 먹는 사람도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먹겠다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는데 왜 너희들이 이 사람은 안된다고 하느냐..내가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니 너희도 그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서로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 때문입니다. 6-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대단한 착각을 합니다. 자기만 국가를 위하는 줄 알고, 자기와 다른 사람은 다 매국노에요.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교회를 위한 일이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기 의견은 옳은 것이고, 다른 의견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고, 누가 자기 일을 방해 하면 사탄이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불법을 행하면서도 하나님께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것을 누가 방해하면 사탄이 방해하는 줄로 압니다. 이것은 대단한 자기 착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으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뭡니까? 우리..입니다.
나 자신만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주를 위하여 살고, 다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주를 위하여 산다. 그러니 서로 비판하지 말고, 서로를 받아들이라...
셋째로, 우리가 서로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9절과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가 서로를 비판하지 않고 서로를 받아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의 하인이 아니냐? 그런데 너는 왜 너의 하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인을 함부로 비판하느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나 다 그의 주인인 하나님 소관인데 네가 감히 하나님이 할 일을 네가 대신하느냐? 이런 말씀입니다.
금방 읽었던 10절 말씀도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서로 비판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서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 성경이 말하는 바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나’입니다. 성경은 바로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것을 봐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 자신을 잘 살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위험해 질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성경으로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비추어 본다면 성경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성경을 우리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성경을 많이 알면 알수록 더 해로운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나다”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할까요? 대단히 죄송하지만 너무 의로운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의롭다는 것이지요. 내가 그래도 너보다는 낫다는 것이지요. 나는 적어도 당신보다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보고, 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 봉사도 많이 하고, 내가 그래도 당신보다는 더 선하고, 내가 그래도 당신보다는 더 낫다는 그 의로움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비판하는 거에요.
맞지요? 맞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요. 다른 사람보다 교회 봉사도 많이 하고, 여러분이 생각 하는 대로 다른 사람보다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선한 일도 많이 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다 죄인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흉악무도한 죄인인지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만한 흉악무도한 죄인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그 죄를 씻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백만장자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바쳐도 우리 죄를 씻을 수가 없어요. 그 만큼 우리는 큰 죄를 짓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귀한 외아들을 희생해야만, 그것도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아 죽어야만 용서받을 수 있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만 죄인 중의 괴수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죄인중의 괴수에요. 괴수가 뭡니까? 우두머리입니다. 죄인들 중에서 가장 흉악무도한 죄인이라는 거에요. 벌을 받아도 다른 사람보다 열 배나 더 받아야 할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업신여기는 데서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옆 사람을 한 번 보세요.
따라하겠습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당신 보다 더 흉악무도한 죄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용서받을 흉악무도한 죄인입니다 ”
정말 그렇습니까? 여러분!
정말 그래요.
사도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뭘까요? 죄인 중의 괴수라는 자기 인식이 있어서 그래요.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인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선택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얼마나 큰지 아는 거에요.
그래서 그는 자신을 박해하는 동족들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에서 자유를 얻고 오직 하나님의 사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에 미워하고, 판단하고, 늘 비판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에 오면 부딪치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미 그 사람은 하나님이 다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받으셔서 집사로 세우고, 권사로 세우고, 장로로 세우고, 목사로 세우고, 교사로 세우고, 직분자로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을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신 그 사람을 용납하고, 참고, 인내하고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 사람을 비판하며 업신여기며 판단하며 평생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삶을 사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람을 서로 받아들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받아주신 사람을 받아주지 못하고, 참아주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못하고, 판단하며 비판하여 왔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너희가 서로 받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저희가 주님의 말씀대로 서로 용납하고 서로 잘 받아들일수 있도록 저희에게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먼저 내가 다른 사람보다 그나마 낫다는 생각을 버리고, 사도바울처럼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