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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믿음의 표지
강동협 2023-02-04 추천 0 댓글 0 조회 279
[성경본문] 야고보서2:1-17 개역개정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참 믿음의 표지

 

202325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2:1-17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이달의 성경읽기 2월은 신약성경 야고보서와 구약성경 말라기서를 읽겠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는 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약성경 말라기서는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월 한 달 동안 야고보서와 말라기를 읽으시면서 경건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일에는 야고보서를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고, 수요일에는 말라기서를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사도가 쓴 편지입니다. 수신자들에 대하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은 박해를 받고 예루살렘을 떠나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고, 그 가운데서 많은 박해와 환란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의 내용들을 볼 때 그들이 공동체 가운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흩어져서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처한 믿음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고보 사도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야고보는 실천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도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같지요? 예수님도 실천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머리로 알고 이해하는 지식형이라기 보다는 율법을 몸으로 실천하는 행동가에 가깝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도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차원의 참 믿음의 표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참 믿음의 표지라고 정했습니다.

 

참 믿음이란 진짜 믿음을 말합니다. 참 믿음이 있다는 말은 가짜 믿음이 많기 때문에 참 믿음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분명히 믿음을 가진 사람인데, 정말 믿음의 사람이 맞나?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바른 믿음을 가진 삶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참 믿음을 가진 삶인가?

 

제가 우리교회에서 야고보서를 본문으로 한 설교한 내용을 살펴보니까 야고보서 1장을 본문으로 해서 참된 경건에 대하여 말씀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야고보서 2장의 내용을 본문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참 믿음 가진 삶인지, 참 믿음의 표지가 무엇인지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째, 가난한 자와 부자를 차별하지 않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은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아멘!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즉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너희가 어떻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입니다.

 

차별한다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2절부터 4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부자를 대하는 태도와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 모두는 본성적으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차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를 대하는 자세와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합니다. 사람들이 왜 돈이 없는데도 명품 백을 사고, 명품 브랜드 옷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은 없는데도 외제차를 사려고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우리 학생들은 왜 갤럭시는 싫다고 하고 왜 아이폰을 고집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다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누구는 차별하고 누구는 차별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차별하고, 저도 차별합니다. 이 세상에 차별하지 않는 인간들은 없습니다. 다 차별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우리는 누구인가? 영광의 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인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양심의 소리이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요청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본성만 아니라 이성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는 죄로 오염된 이성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회복된 이성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도 수신자들의 그 이성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5절부터 13절까지 내용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다. 그런데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있다. 부자들을 보아라. 부자가 누구냐. 그 부자들은 너희를 억압하며 너희를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더냐. 그리고 그 부자들은 너희들이 받은 그 아름다운 이름,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비방하지 않더냐..

모순덩어리인 그들의 모습을 이성적으로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강력한 말씀을 전합니다.

8절과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사람은 누구나 다 차별하여 대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차별하여 대합니다. 그러나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차별하여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율법이 우리를 범법자로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과 구별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원하시고, 적게 받은 사람에게는 적은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은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인에게 걸맞는 거룩한 삶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을 거슬러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성숙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죄된 본성이 저절로 솟아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본성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을 한 다음에 우리는 곧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했구나.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다음에는 더 조심해야겠다.’ 결심하고 나의 삶을 더욱 다음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람을 차별하여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이 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참 믿음인가?

오늘 본문 14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의 믿음이 참 믿음인가?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참 믿음의 중요한 표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을 보면 긍휼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도울 생각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도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참 믿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표지는 바로 내가 지금 가난한 사람을 보면 긍휼한 마음이 들어서 그 사람을 돕고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난한 사람을 도울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는 가장 먼저 긍휼한 마음이 우선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가장 기초적인 마음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 곧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러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떤 마음을 회복하게 되는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회복이 됩니다. 내가 분명히 예수를 믿는다면 헐벗은 사람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어야 정상인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불쌍한 마음이 들기만 하면 그 믿음이 참 믿음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헐벗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실제로 그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즉 행동하는 양심이 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는 어떤 분이 들기름 10병을 갖고 왔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입니다. 어머니가 직접 농사 짓고 만든 것인데 어머니께서 우리교회에 갖다 주라고 하셨다면서 지난 주일 저녁에 우리교회 로비에 갖다 놓았습니다. 지난 번에는 서리태를 갖고 오시더니 이번에는 들기름을 갖고 오셨습니다. 헌금도 하시고, 아이와 함께 와서 봉사도 하고, 농사짓는데 뭐가 있다하면 갖다 줍니다. 완전 우리교회에 꽂힌 것 같습니다. 이 분은 우리교회에 꽂힐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긍휼히 여기는 참 믿음을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했더니 부인 집사님은 보육원에 가서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 하는 겁니다.

 

지난 수요일에 이 지역에 사는 한 권사님이 20만원과 20kg 쌀 한포대를 갖고 오셨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권사님이 돈이 있어서 20만원을 헌금하고, 쌀을 갖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일을 하니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헌금을 한 것입니다.

 

어제는 우리교회에 어떤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 분 말 그대로 구걸하러 왔습니다. 이틀 동안 주위 교회들을 돌아다녔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자신을 경찰에게 신고하더랍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물어보니 다행히도 그분이 교회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위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도교회에 갔는데 목사님이 5000원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본인에게 48000원이 필요한데 저에게 43000원을 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도시락을 받으러 매주 마산역으로 오라고 했더니 마스크를 벗으면서 이빨이 없다고 말합니다. 제 사무실에 있던 미숫가루를 다 털어서 그 분에게 주고, 그 중에 하나는 직접 뜨거운 물에 타주고 그 분과 함께 우체국에 가서 돈을 찾아서 5만원을 건네주었습니다. 5만원을 건네주면서 평일에 오면 제가 자리에 없을 수가 있으니 토요일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오면 내가 그 때마다 줄 수 없으니 꼭 필요할 때 한 달에 한번 정도 오면 내가 오늘처럼 많이 챙겨 드릴 수는 없고 만원 정도는 챙겨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는 제가 호구같이 보일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호구면 어떻습니까? 노숙인 대하기를 예수님 대하듯 친절하게 할 수만 있다면 호구란 소리 들으면 어떻고, 바보란 소리를 들으면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합니다. 몸으로 봉사를 하든, 아니면 돈으로 기부를 하든,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든 뭐라도 해야 합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은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뭐라도 하기를 바랍니다. 어린이와 학생들도 뭐라도 하세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노숙인 도시락 봉사에 참여하여 도시락을 나눠드리고 직접 그 분들을 만나서 그 분들을 섬기십시오. 성도 여러분들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노숙인 도시락 봉사에 참여하여 섬기십시오. 물론 모퉁이 헌금을 다 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하나 더 권면합니다. 모퉁이 헌금만 아니라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직접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간접적으로 돕는 것도 좋지만 우리교회에서 하는 것이니까 직접 참여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남을 돕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를 믿은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인가? 아니면 죽어있는 믿음인가?를 아는 방법은 우리에게 행함이 있는가? 행함이 없는가?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을 봐도 반응이 없는 사람은 죽어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죽어있는 믿음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믿음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반응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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