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문

  • 더사랑의 말씀 >
  • 주일설교문
기독교인의 신비한 삶
강동협 2023-01-22 추천 0 댓글 0 조회 315
[성경본문] 출애굽기15:22-27 개역개정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기독교인의 신비한 삶

 

2023122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15:22-27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천국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새해 인사도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특별히 우리가 받을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입니다. 올해 돈도 많이 버시고, 사업도 번창하시고,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은 올해 꼭 건강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가정이 화목하고 평안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삶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 땅에서 행복하게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난해도 행복해야 하고, 부자여도 행복하고, 건강을 잃어도 행복해야하고, 사업이 잘되도 행복하고,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행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독교인의 삶은 너무 신비합니다. 어떻게 가난해도 행복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가난하면 불행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불행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건강을 잃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삶 자체가 신비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신비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신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새롭게 주신 삶은 기독교인의 신비한 삶입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마라의 쓴물을 달게 만드신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가 신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장애물을 만납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있는데,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 막혀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고 나자 다시 갈라졌던 홍해바다가 다시 합쳐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오던 애굽 군대를 다 몰살시켜 버립니다.

그 장면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일으킨 열 가지 재앙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고 모세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4:30,3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된 것은 바로 홍해 사건 이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그 만큼 홍해를 가르신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사건입니다.

 

홍해의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광야를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흘길을 걸어도 물을 얻지 못하다가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마침 그 곳에 물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너무 너무 반가워서 물을 마셨는데 물이 써서 도저히 물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 곳에서 물이 써서 마실수 없게 되자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며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나무 가지를 가리키며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라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자 물이 달게 되어서 그 물을 마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그러면 이 사건과 기독교인의 신비한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상을 보고 판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라의 쓴물을 보고 불평합니다. 마실 것이 없다. 우리에게 물을 달라. 이러다가 우리 모두가 다 목말라 죽겠다.

이미 출애굽 당시 열가지 재앙을 눈으로 보고, 홍해의 기적을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능력과 이적을 경험했으면서도 지금 당장 마실 물이 없게 되자 불평과 원망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무려 물을 마시지 못한지 삼일이 지났고, 언제 마실 물을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모처럼 발견한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게 되자 불평과 원망이 튀어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빠서라든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반응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물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 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5절부터 26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만드는 사건을 통해서 이것을 알려주기 원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의를 행하여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다

 

여러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상한 마음을 치료하시고, 병든 마음을 치료하시고, 병든 육신을 치료하시고, 여러 가지 얽히고 꼬인 여러분의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은 현재의 상황만을 보지 않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왜 기독교인이 신비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가?

현재의 상황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신비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목마른 가운데에서 마라의 쓴물을 마시지 못해도 나뭇가지로 그 쓴 물을 달게 만드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마라의 쓴물과 같은 상황을 겪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립니다. 직장을 잃어버립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고난이 찾아옵니다. 모두 다 마라의 쓴물입니다.

 

이 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을 원망합니다. 부모를 원망하고, 자녀를 원망하고, 목회자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마라의 쓴 물을 주신 것은 그렇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물에 나뭇가지를 던져 달게 만들어서 그 단 물을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계획이었습니다. 마라의 쓴물을 치료하여 그 단 물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규례를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환경들, 아프고 병들고, 고통스런 모든 순간들을 치료해 주실 것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닥치는 환경들을 바라보지만 우리 기독교인은 그 환경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신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작지만 큰 교회 더사랑교회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작지만 큰 교회라는 말은 제가 쓴 말이 아니었습니다. 방송을 제작한 CTS PD들이 정한 제목입니다. 우리교회가 외형적으로는 작아도 큰 교회라는 겁니다.

우리 교회같이 작은 교회가 수련전도사 5분을 청빙하여 농촌교회로 파송하는 것 자체가 신비한 것입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지요. 대한민국 그 어느 교회도 이런 일을 하는 작은 교회가 없습니다.

 

노숙인 도시락 봉사를 2년간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사람들은 신기해 합니다. 어떻게 그 모든 재정을 감당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노숙인 도시락 봉사를 시작하니까 여러분들이 더욱 더 힘써서 모퉁이 헌금을 하게 되고, 강요한 것이 아닌데도 여러분들이 스스로 열심히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도 헌금이 들어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팔용동에 사시는 어떤 타교회 권사님이 우리가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굉장히 감명깊게 봤어요. 그리고 우리 주보를 한 장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주보를 보니까 노숙인 도시락 봉사 광고를 보고는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감동을 받아서 본인이 헌금을 하고 싶다면서 고기 반찬으로 대접해 달라고 하면서 20만원을 입금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왜 감동을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작은 교회여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솔직히 말하면 큰 교회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합니까?

우리는 노숙인 도시락 봉사, 이거 하나 하지만 큰 교회는 얼마나 사회적 봉사 활동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런데 그런 일 한다고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했다하면 감동받습니다. 감동받아서 돈을 막 보내줍니다. 지난 주에도 제가 아는 분이 갑자기 연락 와서는 요즘도 페이스북으로 잘 보고 있다고 하면서 노숙인 도시락 봉사하는데 사용하라며 무명으로 100만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는 일이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했다 하면 감동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교회가 작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큰 교회였다면 우리가 이런 일을 해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우리같이 작은 교회를 들어서 이런 일을 하게 하는가? 원래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다.

작은 자를 들어서 큰 자를 부끄럽게 하고, 연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고, 가난한 자를 들어서 부자를 부끄럽게 하고, 병든 자를 들어서 건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분입니다.

 

우리교회는 작아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생각은 마라의 쓴물입니다. 저는 이 작은 더사랑교회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어서 하나님의 큰 역사, 치료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각자의 마라의 쓴물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환경이 마라의 쓴물일수가 있고, 여러분의 자녀의 문제들이 마라의 쓴물일수도 있고, 여러분의 직장의 문제들, 사업장의 문제들이 마라의 쓴 물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이 마라의 쓴 물일수가 있고,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하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환경들이 마라의 쓴 물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의 그런 환경들, 마라의 쓴물만 쳐다보지 마시고, 그 뒤에서 나뭇가지로 그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신비를 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마라의 쓴 물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 곳이 어디입니까?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여러분, 수르광야에서 삼일간 물을 찾아 헤메고, 마라의 쓴 물을 경험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안식할 곳으로 안내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엘림으로 인도하셨는데 그 곳에는 물 샘 열 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아시스로 인도한 것입니다. 사막을 지나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금의 광야 생활 가운데 계속 두지 않습니다. 지금의 마라의 쓴 물같은 상황가운데 그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엘림으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지금의 마라의 쓴 물 같은 환경들을 잘 참아내시고, 살아가다 보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물 샘이 열 두개나 있고, 종려나무70그루가 있는 쉴만한 물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나뭇가지를 던져서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독교인으로서 신비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주변의 마라의 쓴 물을 바라보지 말고, 그 뒤에서 나뭇가지를 던져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독교인의 신비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종말에 의인과 악인 구분법 강동협 2023.01.29 0 312
다음글 성령충만한 공동체 강동협 2023.01.15 0 317

51374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용로443번길 1 (팔용동, 혜성빌딩) 7층 더사랑교회 TEL : 055-299-7171 지도보기

Copyright © 창원더사랑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34
  • Total59,537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