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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신앙은 부활신앙이다
강동협 2022-06-12 추천 0 댓글 0 조회 441
[성경본문] 갈라디아서2:20 개역개정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순교자 신앙은 부활 신앙이다.

2022612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본문 갈: 2:20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주셨습니다. 즉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 안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야 우리는 진정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0-11절 말씀을 보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도 여러분에게 행복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오늘은 순교자 기념 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는 순교자의 역사입니다. 어디나 잘 되는 곳은 겉모습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잘되게 하는 정신이 있게 마련입니다. 음식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이 맛있는 곳,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을 찾아가 보면 단순히 음식만 맛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는 음식점 주인의 정신이 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정신이 있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정신이 있기에 그 기업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업이 계속 잘되기 위해서는 그 정신이 계승되어져야지 그 정신이 사라지면 놀랍게도 그 기업은 쇠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시작, 초대 교회 시절부터 오늘날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한 정신은 무엇일까? 저는 그것이 순교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교회는 생명력을 갖고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가 그리고 우리 더사랑교회가 계속 생명력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순교자 정신이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순교자 정신은 바로 예수님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순교자 정신, 순교자 신앙의 시작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교는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일어났습니다. 일본에서도 복음이 처음 들어갔을 때 많은 순교자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천주교에서 엄청난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개신교 교회 역사에서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그 안에 선교사님들의 순교도 있었고, 선교사 가족들의 순교도 있었고, 목사님들의 순교와 성도님들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신사참배 반대문제로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많은 옥중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 북한에서 그리고 6.25전쟁 기간에는 교회를 박해하는 공산당에 의해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더욱 든든하게 서가게 되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박해가 있게 되면 교회는 점점 쇠퇴해야 하는데 박해가 있고 순교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교회는 날로 날로 부흥해 갑니다. 왜 그럴까요? 순교자 신앙은 곧 부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십자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사망권세를 이기셨음을 보이셨고, 사망 권세는 더 이상 성도들에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다시 부활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 죽음의 신앙, 순교자 신앙은 곧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승리의 십자가도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고, 부활이 있기에 십자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죽음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는 날마다 죽음 앞에 직면해 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사도바울은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바울은 부활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날마다 순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교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 죽음과 직면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과거에만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오늘도 미래도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의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도 어제의 부활, 오늘의 부활, 내일의 부활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우리의 첫째 부활, 우리의 생명이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우리의 생명이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째 부활입니다.

 

이것처럼 우리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님이 살고, 내가 죽어야 아내가 살고, 내가 죽어야 남편이 삽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날마다 일어나야 할 십자가 신앙이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서 날마다 일어나야할 순교자의 신앙입니다.

 

언제 우리에게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순교의 기회가 오겠습니까? 우리에게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순교의 기회가 오겠습니까? 우리에게 사도바울과 같은 순교의 기회가 오겠습니까?

 

아니면 그런 순교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순교를 하겠습니까? 그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순교를 위해서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순교자의 삶을 살 것인가? 우리 일상의 삶에서 순교자의 정신으로 살면 그것이 순교자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 가정에서 복음으로 사십시오. 남편에게 복음으로 살아내십시오. 아내에게 복음으로 살아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가족에게 복음으로 살아내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너무 억울합니다. 왜 나만 양보해야하고, 왜 나만 죽어야 하냐고 우리는 억울해 합니다.

나도 성질이 있는 사람인데 왜 내가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하고, 너무 자존심 상합니다.

그래서 너무 억울해서 성질이 벌떡 벌떡 일어납니다. 그러면 내 안에 예수님이 죽어요. 나 때문에 살아야 할 남편이 죽고, 나 때문에 살아야 할 자녀들이 죽습니다.

 

순교자 신앙은 주기철 목사님을 추모하고, 손양원 목사님을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추모한다고 순교자 신앙이 내것이 되겠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자 정신은 너무 좋아요. 그런데 내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 추모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순교자 신앙은 지금 바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지금 바로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말씀을 보며 순교자 신앙이 일어나는 겁니다. 지금 이 예배 시간에서, 지금 설교를 듣는 바로 이 시간에 벌써 순교자 신앙이 일어나는 겁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받아들이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지금 내 안에 솟구치는 그 분노를 성령의 능력으로 제어하고, 나를 악하게 대하는 자를 선하게 대하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이 순교가 있을 때 진정한 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내 안에 예수가 살고, 내가 죽을 때 진정한 내 속사람이 살아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죽으면 손해 볼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으면 부활합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가 살고, 내가 죽으면 남편이 살고, 내가 죽으면 아내가 살고, 내가 죽으면 자녀들이 삽니다.

내가 죽으면 큰 손해가 있을 것 같고, 내가 죽으면 억울할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으면 영광이 있고, 내가 죽으면 승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누가 순교해야 합니까?

여러분 손가락을 들어보세요. 누가 순교해야 합니까? 우리교회에서 순교해야 할 사람을 가리켜 보겠습니다. 그래서 제일 많이 지적받은 사람이 순교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 사람이 순교해야 우리교회가 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을 지적해 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교회가 살기 위해서 누가 순교해야 합니까?

 

바로 내가 순교해야 합니다. 순교는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강요해서 죽는 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누가 순교해야 합니까? 내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 강요해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까? 스스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날마다 순교자가 됩시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서서 말씀 앞에 순종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교자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날마다 순교할 때 우리 가정이 천국가정이 되고, 내가 날마다 순교할 때 우리교회가 천국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순교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더사랑의 모든 성도가 날마다 순교자가 되어서 우리교회가 천국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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