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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 방법
강동협 2020-11-07 추천 0 댓글 0 조회 840
[성경본문] 빌립보서2:1-11 개역개정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2020118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예배

 

빌립보서 2:1-11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빌립보 교회 안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 다툼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는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인가 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다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사랑하고, 이해하고만 살아가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부간에 다툼이 있고, 형제간에 분쟁이 있고, 부모와 자녀 간에도 다툼이 있는 경우도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빌립보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두 열심히 복음을 위해 힘쓰던 사람들인데 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런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그 분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아멘!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사랑의 무슨 위로를 받았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를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는 거에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양심에 호소하는 바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겠습니까? 아니면 무시했겠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바울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들이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누가 우리에게 우리 믿음의 양심에 호소하겠습니까?

 

성령께서 하십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성령께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는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었는가? 너는 정말 그리스도로부터 용서를 받았는가? 너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입었는가?

정말 그렇다면 네 남편 사랑하는 것이 어떻겠니? 정말 그렇다면 김집사 용서해주는 것이 어떻겠니?

 

성령께서 늘 우리 믿음의 양심에 호소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보통은 무시를 합니다. 아예 귀를 막아요. 귀를 막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닫아 버려요. 성령은 항상 부드럽게 말합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크게 반응합니다. 마음의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립니다.

 

바울도 아주 작은 소리로 아주 부드럽게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어느 누구처럼 싸우는 자녀들을 모아서 버럭 소리 지르면서 너희들 왜 그렇게 싸우냐! 내가 너희를 이러라고 키운 줄 아냐! 그렇게 서로 싸울 거면 집을 나가라!

 

이렇게 꾸중하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살살살 얘기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을 받지 않았느냐! 그리스도 안에 사랑의 무슨 위로를 받지 않았느냐!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를 받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는 것이 어떻겠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어때?

자기 일을 돌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는 것이 어떻겠니? 너희들이 그렇게 하면 나의 기쁨이 가득할 거야..“

 

얼마나 부드럽게 권면하는지 그 부드러움에 사람들의 마음이 살살 녹아버릴 것만 같습니다. 바울의 말은 아주 부드럽지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한 마음을 품어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자기 일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

 

이렇게 세 가지인데 이 세 가지 중 핵심은 겸손입니다. 겸손..

 

겸손하면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겸손하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깁니다.

겸손하면 자기 일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봅니다.

 

바울이 말하는 문제 해결의 핵심은 겸손입니다. 분쟁과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겸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분쟁 가운데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교만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의견만 고집합니다. 그러니 교만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다툼이 있는 것이지요.

 

잠언 13:10절을 보면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권면을 듣는 자가 지혜 있는 자요, 권면을 듣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기 고집이 좀 세지 않습니까? 저는 태생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최 고집도 알아주지만 강 고집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고집이 센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하는 말 잘 듣고, 남편은 아내가 하는 말 잘 들어보세요. 배우자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잘못을 지적하거든 기분 나빠하지 말고 그 지적을 감사한 마음으로 잘 받아들여 보세요. 그러면 나중에 알게 되요. 내가 부인 말 듣기를 참 잘했다. 혹은 내가 남편 말 듣기를 참 잘했다. 내가 그 사람의 지적을 듣고 화내지 않고 잘 참았다.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그게 잘 안되요. 다른 사람이 나를 지적하면 화가 납니다. 그래서 그냥 들이 받아 버려요. 마치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들이받고 싸웁니다. 그러면 꼭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요.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겸손할 수 있겠습니다.

빌립보서 2:5절부터 8절까지 말씀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죄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왜 마귀가 되었습니까? 그는 본래 천사장입니다. 그런데 천사장이 교만한 마음을 품으니 천사장이 마귀가 된 것입니다.

죽음의 원인이 죄라면 죄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교만을 얼마나 싫어하시겠습니까?

또 그 반대로 이 교만이 얼마나 셉니까? 쉽게 우리의 마음의 교만이 사라지지 않아요. 우리 마음 깊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아도 그래서 우리는 겸손한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 우리의 교만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어요. 교만이 없어지지 않고 우리 마음 깊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우리의 교만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을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교만이 웅쿠리고 있는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서 그 교만을 완전히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교만이가 들어설 자리가 없도록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죄의 뿌리인 교만이도 꼼짝 못하는 그 예수님의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죄의 뿌리인 교만이도 꼼짝 못하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우리의 신분과 위상에 맞게 대우받으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신분과 위상에 맞게 대우 받으려는 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신분이 있어요. 교회에서는 목사의 신분이 있고, 장로의 신분이 있고, 권사, 안수집사의 신분이 있어요. 전도사의 신분이 있고, 교사의 신분이 있어요. 가정에서는 아버지로서의 신분이 있고, 어머니로서의 신분이 있어요. 사회에서도 각자가 갖고 있는 신분과 위상이 있어요.

보통은 우리가 그 신분과 위상에 맞게 대우받으려고 합니다. 그 신분과 위상에 맞게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자존심에 상처받고, 분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수고한 것 다 압니다. 그런데요 사람들은 몰라줘요. 자식들도 몰라줍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면서 얼마나 애를 썼고, 수고했고, 정성을 다해서 자식을 키웠는지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과 수고와 헌신을 제대로 아는 자식들이 없어요. 부모가 100을 노력했다면 자식들이 아는 것은 열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식들이 몰라줘도 섭섭해 하지 맙시다. 그것이 인생인 것 같아요. 그냥 섭섭함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니까..자식들이 몰라주는 것도 하나님은 아시고, 남편이 몰라주는 것도 하나님은 아시고, 아내가 몰라주는 것도 하나님은 다 아세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누가 나의 수고한 것 잘 몰라줘도 섭섭해 하지 맙시다. 그게 인생인 거에요. 장로 안뽑아주고, 권사 안뽑아줘서 섭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여러분, 그것 가지고 섭섭해 하지 맙시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은 없어지지 않고 하늘나라에 다 쌓여 있어요. 그러니 섭섭해 하지 맙시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어요. 그것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마굿간 말구유 안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 시골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어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신다고 해도 이 땅에 왕자로 태어나도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어요.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우리가 우리의 신분과 위상에 맞게 대우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섭섭해 하고 자존심 상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비워서 더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맡고 있는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있어요. 강동협 목사는 더사랑교회 담임 목사로서, 김병수 장로님과 김영준 장로님은 더사랑교회 장로로서 신분과 지위와 위상이 있어요. 강동협 목사는 더사랑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하면 자존심 상해 하고 기분 나빠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섬기라는 겁니다. 김병수 장로님과 김영준 장로님은 장로로서 설령 잘 대우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더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권사로서 설령 잘 대우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기분 상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섬기라는 겁니다. 이것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정이나 혹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런데 여러분 이 정도로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첫째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둘째는,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셋째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이렇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 마음을 우리에게 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진짜 겸손할 수 있으며, 그래야 우리의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문제 해결방법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가정의 문제, 우리 교회의 문제, 이 사회의 문제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부부간의 문제 해결?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문제 해결?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이 사회의 문제 해결?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핵심은 겸손입니다. 분쟁과 다툼 문제 해결은 겸손입니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교만한 우리가 어떻게 그 겸손을 배울 수 있는가? 바로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첫째로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며, 둘째로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는 마음이며, 셋째는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죽는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 각 가정과 직장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더욱 겸손한 성도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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