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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로만
강동협 2020-10-24 추천 0 댓글 0 조회 650
[성경본문] 에베소서2:8-9 개역개정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직 은혜로만

20201025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

(by 강동협 목사)

 

본문: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오늘은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이하는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1031일에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 교회 문 앞에 내걸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교회 문 앞에 내건 것이지요.

루터는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 있는가? 이 문제로 괴로워하다가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는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거저 주어진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모금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에 영혼은 연옥으로부터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라는 당시 로마교황청의 면죄부 판매구호를 신성모독으로 여기게 되었고 드디어 루터는 15171031일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게 됩니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다섯 가지 오직을 외쳤습니다.

첫 번째가 오직 성경으로만

두 번째가 오직 은혜로만

세 번째가 오직 믿음으로만

네 번째가 오직 그리스도로만

다섯 번째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다섯 가지 오직을 외쳤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모토이자 종교개혁의 핵심사상입니다.

 

그래서 작년 종교개혁기념주일에는 오직 성경으로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고 올해는 오직 은혜로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오직 은혜로만

 

네 우리는 오직 은혜로만구원을 받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다섯 가지 오직 중에 세 번째가 오직 믿음으로만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당시 종교개혁가들이 오직 믿음으로만을 외친 것은 당시 중세교회의 공덕사상을 배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중세교회는 사람이 믿음으로만은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선행을 많이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선행을 많이 해서 구원을 이루고도 남을 만큼 공덕을 많이 쌓으면 그 남은 공덕을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보태줄 수 있다고 가르쳤어요. 심지어 교회가 사도들의 공덕과 순교자들의 공덕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헌금을 많이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공덕을 나눠줄 수 있다는 면죄부 사상까지 발전시켰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모금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에 영혼은 연옥으로부터 하늘나라로 올라 간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교회에는 순교자들의 공덕이 많이 비축되어 있기 때문에 교황이 헌금을 많이 한 사람에게 그 공덕을 분배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구호는 당시 중세교회의 공덕사상을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얻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인 오직 은혜로만이라는 구호는 신인협력사상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만이라는 이 구호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의 협력(협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데, 그 구원받는 믿음이 우리 자신의 의지나 결단이나 노력의 소산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가 믿으니까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안 믿으면 그만인 것을 내가 믿었으니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데 나의 의지와 나의 결정으로 내가 예수를 믿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의지로 믿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있는 이 믿음조차도 내가 믿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잘 믿어서 구원받았다면 이것은 또 다른 나의 공로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이 아닙니다. 나의 믿음이 곧 나의 공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

 

즉 우리가 믿기 이전부터, 더 엄밀히 말하면 창세전부터 하나님은 일방적인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구원을 깨닫게 해주시고, 이제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준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우리의 행위를 조금도 자랑할 수가 없고,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의 믿음조차도 자랑할 수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전에 제가 전임전도사로 동안교회에서 사역할 때에 청년부를 맡아서 사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맡고 있던 청년들 중에 믿음이 좋은 청년들이 자기는 교만하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기는 교만하답니다.

왜 믿음 좋은 청년들이 교만할까요? 믿음이 좋지 않은 청년들은 교만하지도 않아요. 누가 교만한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 교만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미안해합니다. 교만할 수가 없지요.

 

참 아이러니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좋은 사람이 겸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믿음이 좋은 사람이 당연히 겸손해야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에요. 믿음이 좋은 사람이 교만해요.

 

그런데 여러분, 교만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좋은 사람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교만을 사랑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결국 교만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만을 멀리하고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늘 자기 자신의 마음상태를 돌아보면 교만이가 싹트고 있지는 않는가? 교만이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또아리고 있지는 않나? 늘 돌아봐야 합니다.

 

어거스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다

 

여러분의 상황이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상황이 교만을 불러오는 좋은 환경이라면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지금 겸손할 수밖에 없잖아요? 교회 내부적으로 보면 얼마나 좋아요. 담임목사 좋지, 성도 좋지, 교회 비전 좋지, 아이들 미래 좋지..그런데 숫자가 늘어나지 않으니까 얼마나 감사해요. 겸손할 수 있어요.

우리 교회가 갑자기 부흥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교만이가 꿈틀거려요. 담임목사도 교만하고, 장로님들도 교만하고, 여러분들도 교만해집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우리만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서 교만이가 숨통을 트는 순간 우리 교회는 부패하고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 그렇다면 왜 믿음이 좋은 사람이 교만할까요? 자신에게 있는 믿음이 내가 잘 믿기 때문에 된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듯하면서도 실제로 몸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먼저 선택할 수 없어요.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울 주셨기 때문에 그냥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여러분의 의지로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중풍 병자를 고치고, 나병환자를 고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바다도 잠잠케 하고, 실로암 맹인을 고치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승천하신 것을 여러분의 의지로 믿었습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고, 모세가 바위를 쳤더니 바위에서 물이 나오고, 구약에 나온 모든 하나님의 이적들을 여러분의 의지로 믿었습니까? 이것을 우리의 의지로 믿을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가 믿고 있어요. 왜냐?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믿음이 있어서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좋다고 교만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든지 아니면 이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잘 믿어서 된 줄 알고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교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안타까워하고 그들을 어떻게 잘 섬기고 어떻게 잘 도와줄까 고민하기보다는 그들의 믿음 없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 있는 이 믿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 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교만이 싹틉니다.

대형교회 목사님은 내가 대형교회에 올만하니까 청빙된 줄 알아요.

교회를 부흥시킨 목사님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교회를 부흥시킨 줄 압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회자가 답답하고, 미자립 교회 목회자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겉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아요. 겸손한 척합니다. 교양이 있으니까..

그런데 마음으로는 그렇게 판단하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음으로는 겸손하지 않고 교만합니다.

그래서 잠언 18:12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의 교만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얼마든지 겸손한 척 할 수 있어요. 행동으로는 얼마든지 겸손할 수 있어요. 겉으로 교만한 사람, 행동으로 교만한 사람은 아직 고수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 많아요. 겉으로만 보기에도 교만한 사람..그런 사람은 하수입니다.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 마음으로 싫어합니다. 겉으로는 인정해 주는 척할는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수인 사람은 겉으로는 겸손하게 보입니다. 행동으로는 겸손해요. 그런데 마음으로는 교만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이 얼마든지 겸손한 척, 사람을 속일수는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16:2),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21:2)은 절대로 속일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가지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을 속일래야 속일수가 없으니까 방법이 없어요. 사람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어요. 겉으로 얼마든지 겸손한 척 할수 있어요. 겉으로는 얼마든지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이것이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럼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진짜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겸손, 속으로부터 진짜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큰 교회 담임목사가 아니라 우리 더사랑교회 담임목사로 불러주셔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고, 또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규모가 있는 교회 담임목사로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합니다. 제가 멋도 모르고 교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것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참 공평하신분입니다. 큰 교회로 가신 목사님들 교만하지 말라고 엄청 힘들게 하시잖아요? 중대형교회 담임목사님들,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더사랑교회 담임목사처럼 행복하게 목회하는 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교회가 계속 작은 교회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정말 마음으로 겸손하고, 정말 한국교회 잘 섬기고, 정말 잘 준비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우리 더사랑교회 부흥시켜 줄줄 믿습니다.

 

, 그러면 겸손한 척이 아니라 진짜 마음으로부터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깨달아야할 것은 무엇인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사실을 몸으로 깨닫고 경험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믿음을 갖게 된 것도 나의 의지와 노력, 나의 수고는 1도 없고 100%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100% 하나님의 은혜이다. 지금까지 나의 노력과 나의 공로로 살아왔다면 나는 백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지만 이렇게 오늘날 살아 숨을 쉬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교회를 다니며 믿음 생활을 하게 된 것, 이렇게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성도로서 믿음 생활을 하고, 이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살아가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사실을 몸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5:9,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몸으로 깨달았어요. 그래서 다른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면 헌신할수록 그는 교만하지 않고 더욱더 겸손했어요. 모든 사역의 현장에서 자기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잊지 않았어요. 자신이 사도로 부름받기 전에 자신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음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세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100%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믿습니다.

오늘 종교개혁기념주일로 맞이하여 우리 스스로 개혁을 시작합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예수믿어 구원받은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오늘 내가 나된 것도 100%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나는 저주를 받아 지옥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 그러나 이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까지 잘 살아왔구나..그러니 내 마음으로부터 모든 교만을 던져버리고 이제는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한 삶을 살아가며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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