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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강동협 2020-08-08 추천 0 댓글 0 조회 440
[성경본문] 갈라디아서5:1-15 개역개정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02089일 창원더사랑교회 광복기념주일 예배

 

갈라디아서 5:1-15

 

오늘은 광복절 7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나라가 19051117일에 을사 조약(강제로 체결되었다고 하여 을사늑약이라고도 함)을 강제로 체결되면서 외교권을 일제에 뺏기고, 1907년에는 정미 7조약을 맺어서 사법권을 박탈당하고, 군대가 해산이 됩니다. 그리고 1910829일에 합방조약을 맺어서 완전히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경술국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약 35년 후인 1945815일에 대한독립만세, 드디어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라를 일제에 뺏긴 이래로 독립을 위한 국민들의 많은 저항이 있었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불길같이 일어났고, 많은 무장 투쟁이 있었습니다.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가 대표적인 무장투쟁이었지요. 또 빼놓을 수 없는 독립운동이 저는 계몽운동이라 생각합니다. 선교사들과 남강 이승훈과 같은 의식 있는 기독교인에 의해 세워진 학교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교육을 받았습니다. 동아일보의 기록에 의하면 1920년대 초반 당시 문맹률이 99%,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상당수의 국민이 문맹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독립을 위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팔고,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희생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독립 쟁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은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행기 한 대 없던 시절에 일본은 항공모함도 18척도 있었는데 세계최초의 항공모함이 바로 일본입니다.(참고로, 현재 우리나라도 항공모함이 없음) 게다가 그 당시에 잠수함도 184척까지 보유하여 세계 3위의 해군력을 갖고 있었고, 공군력도 어마어마 합니다. 전투기가 22859, 폭격기가 7,182, 해군항공기와 육군항공기가 총 55천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대 중국과 러시아까지 이기고, 저 멀리 있는 미국까지 먼저 침공하여 전쟁을 일으킬 정도이니 일본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일본과 일대일로 싸워서(우리나라는 요인 암살할 때도 도시락 폭탄을 사용하고, 전쟁에서도 소총을 가지고 무장투쟁, 소총도 다양하다. -러시아제, 독일제, 영국제, 프랑스제, 일본제, 미국제 등- 중화기도 기관총이 전부)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일본을 상대로 하여 독립운동을 펼치고, 무장투쟁을 하고, 요인암살을 하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비교할수 없는 큰 덩어리아와 어마어마한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도 하지 못한 그런 일을 우리나라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우리의 독립운동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나라의 독립이 도둑처럼 다가왔습니다. 잠자던 호랑이 미국을 건드린 일본이 미국에 의해 원자폭탄 2개를 두들겨 맞고서는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참여를 안했거나 또는 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의 위치에 섰더라면 우리나라의 독립은 지금도 어려웠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우리나라에 독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고난을 통하여 많은 국민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수 많은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립한 이후에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부흥과 성장을 이루게 되었고,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인 세계선교를 위해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815일 광복절을 맞아서 기념예배를 하는 것이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독립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독립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이루신 겁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해마다 절기를 지키라..왜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했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무교절을 지키라. 왜 무교절을 지켜야 하는가? 네가 그 달에 애굽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초막절을 지키라. 초막절을 왜 지켜야 하는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23:43).

 

안식일을 지키라.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신명기 5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절기를 해마다, 혹은 매주 절기를 지키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날마다 기억되어야만 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역사는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의 노예에 있던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은 날을 그들은 자자손손 기억해야만 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날을 우리는 자자손손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지나 온 세월이 올해로 75주년이 되었습니다. 저도 우리교회에 부임하기 이전 교회에 있을 때는 815일이 되면 광복절 기념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날은 휴가 나가 있던 교역자도 교회에 와서 광복절 기념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준 이 날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너무나 중요했던 것입니다.

오늘 드려지는 광복 75주년 기념예배가 우리나라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갈라디아교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이곳에 예루살렘교회에서 몇몇 유대 사람들이 찾아와서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도 자신들처럼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모세가 말하는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동안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전한 복음이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오직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었던 갈라디아교회 사람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는 다른 복음을 전한 예루살렘교회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방인인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믿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유대그리스도인들의 말을 듣고는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바로 갈라디아서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매우 격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갈라디아서 1:6-9절까지 말씀을 보면,

1:6-9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3: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3:1-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바울의 표현이 상당히 과격하지요? “저주를 받을지어다. 어리석도다

 

바울이 쓰는 단어에 담겨진 바울의 마음을 보면 다른 복음을 전한 이들에게 대한 분노와 바른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실망, 그리고 그들을 다시 주님께로 바로 인도해야겠다는 강한 의지와 사랑의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지금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자유를 잃어버리고 다시 율법의 종의 멍에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종이 된 거에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다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니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잃어버리고 다시 율법의 종의 멍에를 메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할 때 이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곧 해방을 말합니다.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는 다른 복음에 빠져서 그 자유를 내던져 버리고 다시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다시 율법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례를 행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받은 우리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종교생활이라고 표현합니다. 무언가 나의 종교생활로 나의 의로움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 아이들이 마태복음 3,4,5,6장을 암송하고 있는데, 그 중 6장에 보면 이런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구제를 많이 하는 것을 드러내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나팔을 불었습니다. 금식하는 것을 드러내려고 슬픈 기색을 보였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헌금을 많이 했어요.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보다 못하는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잘 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고, 자신보다 기도를 많이 하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구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헌금을 많이 하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이 그렇게 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곤 합니다. 그래서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에요.

 

사실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세상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세상은 다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지 않아요. 오히려 권장하고 칭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은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며,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종교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종의 멍에가 아닌 진정한 자유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5:13절 말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것은 억지로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종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서서 더 종이 되라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종이 되었다면 이제는 나의 자유로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교회생활을 했다면 이제는 즐거움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마지못해 헌금을 했다면 이제는 나의 자유로 자원하여 헌금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배우자와 살아주었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자유로 기꺼이 배우자와 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부모님께 효도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자유로 진심으로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공부했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자유로 즐거움으로 공부하라는 거에요.

지금까지는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일을 했다면 이제는 나의 자유로 기꺼이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교회를 나왔다면 이제는 나의 자유로 즐겁게 교회에 나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암송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자유로 즐거이 암송하라는 거에요.

 

이것이 종의 멍에, 율법에 메이지 않는 자유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껏 종노릇하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오직 사랑으로 기꺼이 서로의 종이 되십시오.

마음껏 봉사하고, 마음껏 헌신하고, 마음껏 공부하고, 마음껏 열심히 일을 하십시오. 그러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오직 사랑으로 하십시오. 부부간에 더 사랑하고, 부모님을 더 잘 모시고, 자녀를 더 사랑하십시오. 형제간에 더 신뢰하고 사랑하세요.

 

사랑으로 행하는 일에는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행하면 자녀에게 배신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유롭습니다.

 

왜 사람들이 억울해 할까?

부모들이 왜 자식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억울해 할까?

왜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 반대로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배신감을 느끼는가?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사람은 조금의 보상심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느 종이 하루 종일 일한다고 보상을 기대하는 종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사람은 그냥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것 그 자체로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종노릇하는 그 자체가 나의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다른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아요. 우리가 오직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면 그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교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그만이에요. 목회자와 교인들이 자신의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교회를 섬기는 것 자체가 나의 행복이요 기쁨이에요. 이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 그런데 이런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생활이 되기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데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생기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요. 내가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들이 이렇게 하면 안되지요. 내가 남편(아내)에게 어떻게 했는데, 남편(아내)이 나한테 그러면 안되지요.

성경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고, 그 성경 말씀이 내 마음에 다가오지 않아요. 성경말씀은 알겠는데, 가만히 앉아서 그 자식을 생각하면, ‘그 놈을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릅니다. 이 모습이 사실 저와 여러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어쩌면 좋습니까?

 

사랑하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버전으로 말하면 사랑으로 종노릇하기 연습인데, 어감상 사랑하기 연습이 좋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기 연습을 해야 해요. 사랑하기 연습을 통해서 우리의 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그릇이 커야 많이 담아낼 수가 있어요.

 

오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 마음으로 끌어안아 보세요. 그리고 자녀를 두 팔로 안아주세요. 그러나 자녀를 실제로 끌어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자녀를 사랑하는 징표입니다.

자녀에게 인내해 보세요. 그런데 인내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한 번 인내하기 위해 노력한 것 자체가 사랑이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진 것이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에요. 연습이니까..처음부터 잘하는 것 없어요. 연습을 통해서 실력가가 되어 가듯이 우리는 연습을 통해서 우리 그릇이 커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부모일수 있고, 형제일수가 있고, 이웃일 수가 있고, 함께 예배하는 우리 교인일수가 있어요. 어쨌든 우리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종노릇해도 억울할 게 없어요. 모르는 사람 종노릇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인데, 그들의 종노릇한다고 억울할 게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잘할 수 없듯이, 사랑하기 연습이 없이는 절대로 우리의 그릇을 크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그릇이 커야만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잘 받아낼 수가 있고, 그들을 품어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그릇이 작으면 그들의 실수나 잘못을 받아줄 수가 없어요.

그들의 실수나 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그릇이 작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그릇을 넓게 하여 그들의 실수나 잘못을 잘 받아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종의 멍에,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나의 종교 활동으로 무언가 의로움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서 우리 더사랑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짜 자유를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함으로 주께서 주신 참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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