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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완성
강동협 2019-05-22 추천 0 댓글 0 조회 560
[성경본문] 마태복음5:17-20 개역개정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율법의 완성

 

2019324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

(by 강동협 목사)

 

 

5:17-20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오늘은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맞아서 예수님의 산상 수훈 세 번째 시간, 마태복음 5:17-20절까지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율법의 완성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법을 만들 때는 그 법을 만들게 된 취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입법취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생활을 보면 많은 경우에 우리를 위해 만든 법이 입법취지와는 다르게 적용이 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을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법이었습니다. 입법 취지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취지였으나 실제로는 어떻게 됐습니까?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입법취지가 완전히 무색해 진 것이지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최저임금을 인상했습니다. 현재 2019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입니다. 전년대비 10.9%가 인상이 되었습니다. 적용대상은 1인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이 되고요, 위반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원래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저 임금 1만원은 단순히 시급액수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권리를 상징한다

 

그런데 실제로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최저임금이 인상이 되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일자리가 줄어들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사는 아파트도 아파트 경비원 숫자를 줄였습니다. 시급을 올려주어서 어떤 사람은 혜택을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반면에 그것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입법취지와는 다르게 실생활에 적용이 되는 모습의 일례라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율법들이 인간에게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주신 율법이 우리에게 올무가 되고, 짐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율법을 주신 이유와는 다르게 해석이 되고, 적용이 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좋은 율법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동과 말씀들이 마치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율법에 반하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이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21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절 이하의 내용들을 우리는 이렇게 부릅니다.

 

예수님의 6대 반대 명제, 따라하겠습니다. 예수님의 6대 반대 명제.

 

살간이맹보원..이니셜만 딴 것인데요?

 

. 살인에 대하여

. 간음에 대하여

. 이혼에 대하여

. 맹세에 대하여

. 보복에 대하여

. 원수에 대하여

 

이렇게 6개의 주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반대 명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첫 번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1절입니다.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어디에서 들었습니까? 율법에서..그러니까 율법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율법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반대명제를 내십니다. 22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두 번째, 간음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27,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세 번째, 이혼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31,32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네 번째, 맹세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합니다.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다섯 번째는 보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38절부터 42절까지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지막 여섯 번째, 원수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3,4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율법을 통해서 듣는 것 중에 아주 핵심적인 내용들인 6가지의 명제에 대하여 아주 다른 반대의 시각으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율법 해석에 대한 아주 파격적인 해석이었습니다.

 

이러니 당시 사람들이 마치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에 대하여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즉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는 말은 율법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의미합니다. 그 만큼 이 율법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 법은 시대마다 바뀝니다. 우리 나라 헌법도 바뀝니다. 왜냐하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완전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3:8-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런데 이 사랑이 어마어마한 사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부부간의 사랑도 아니요, 남녀 간의 사랑도 아닙니다.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원 모델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사랑의 극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의 사랑이 곧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이 곧 율법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없는 율법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는 기독교는 본질을 잃어버린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싫어했습니까? 그들에게는 종교적 열심히 있었고, 종교적 경건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왜 그렇게 싫어했습니까?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지키는 율법에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실로암 맹인을 고쳐준 사건이 나옵니다.

 

여러분,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한 두 해 앞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에요.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일 날 그 병자를 고쳐주었다고, 안식일을 어겼다고 꼬투리를 잡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의 율법에는 사랑이 없어요.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그 고통과 어려움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그런 마음이 없어요.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연못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연못에는 행각이 다섯 개가 있는데 그 곳에 많은 병자들이 누워있었습니다.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서 베데스다 연못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끔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 물이 움직인 후에 못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많은 병자들이 그 행각에 누워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데 그곳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이야기가 참 안됐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자신을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낫지 못하고 누워있다고 하니 얼마나 안되고 불쌍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침 그 병자를 고쳐준 날이 안식일이라는 겁니다. 안식일 날 병자를 고쳐주어서 안식일을 어겼다는 겁니다. 그들의 율법에는 사랑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그렇게 싫어했습니다.

 

왜요? 그들에게는 율법은 있으되 그 본질인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율법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서 어마어마한 선포를 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굉장히 자신감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곧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성취될 것이다

 

이 말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율법은 곧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십자가의 예수님의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룰 것이다. 여러분,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갈 것인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가지요? 누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갑니까?

 

바로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누구인가?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바로 그 사랑을 이루어갈 존재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럽습니까? 천지가 없어지기 전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갈 존재...이 세상 끝날 때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면서 살아갈 존재..누가요? ‘바로 여러분

 

그래서 우리 더사랑교회는 앞으로 더욱더 사랑하고, 예수님의 바로 그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험담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목사로서, 장로로서 마땅히 행할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권사로서, 집사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부모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학생들, 그리고 어린이들, 사랑이에요. 사랑!

사랑이 최고에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갈 존재에요. 얼마나 멋있고, 존귀합니까?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이 세상에 전달이 되는 거에요.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랑을 잘 이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갈 것인가?

가정에서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하세요.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세요.

식사를 하고 나면 어머니!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아버지 구두 닦아드리고 신발 정리하면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춘기라고 인상 쓰고 다닐 수 있지요. 그런데 인상 쓰고 다니다가도 힘들고 지친 엄마, 아빠를 보면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세요. 지극히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합시다.

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것으로 시작합시다. 큰 목소리로 장로님 안녕하세요. 권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교회 정리 잘하는 것으로, 자기가 갖고 놀았던 것은 원래 자리에 갖다 놓는 것으로, 친구들과 말다툼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 이해해 주고, 용납해 주는 것으로, 서로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으로 시작합시다.

 

그러니 오늘부터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얼마나 매 순간 순간이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지 몰라요. 남편 얼굴만 보면 화가 나고, 아이들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확 솟아나고, 교회에 가면 그 사람 얼굴만 보는 순간 스트레스가 치밀어 올라오는지 몰라요.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보기에 흠이 많은 사람을 보게 되는 그 순간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갈 순간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그 사랑을 이어갈 준비가 안된거에요.

 

여러분, 사랑을 이어갈 준비를 날마다 하시기 바랍니다. 음식을 맛있게 준비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맛있게 음식을 먹일 시간을 기다립니다. 설교 준비가 잘 된 목회자는 그 설교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이어갈 준비가 된 사람은 그 사랑을 이어갈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여러분! 날마다 사랑을 이어갈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사랑을 이어갈 순간이 매일 매일 찾아 올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 사랑을 이어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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