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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넘치나이다
강동협 2019-03-27 추천 0 댓글 0 조회 642

내 잔이 넘치나이다

 

2019217일 창원더사랑교회 설교

(by 강동협 목사)

 

본문: 시편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샬롬!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가정에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에는 제 2회 신학생 암송수련회가 있었습니다. 9분의 신학생들이 모였답니다. 원래 12분이 신청을 하여 신청마감을 하였으나 세분의 결원이 생겨서 9분이 암송수련회를 하였는데, 모두 열정적으로 말씀을 암송수련회를 하였고, 모두에게 뜨거운 감동이 있는 수련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는 날에는 헌금을 하겠다고 봉투를 준비하길래, 제가 헌금은 받지 않는다고, 여러분이 헌금을 할 돈으로 학교에 돌아가서 동기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좋은 언니와 좋은 형님이 되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 어떤 분은 우리가 헌금을 받지 않으니까 헌금바구니에 헌금을 넣어두고 가신 것을 나중에서야 발견했습니다.

 

1기도 그렇고, 2기 암송수련회도 북면 온천에 숙소를 잡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식사도 최고의 식사로, 간식도 풍성하게 준비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몇 몇 분이 숙소비와 식사비 정도는 받아도 될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정미 사모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고 해요.

 

이 신학생 암송수련회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기 때문에 무료로 해드리는 것이라고..제가 그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정말 돈으로 값을 매길수 없는 것은 무료로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말 돈으로 값을 매길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생명에 꼭 필요한 공기가 그렇고, 햇빛이 그러하며, 물이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햇빛과 공기와 물은 돈을 주고 사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은혜로 선물로 받는 겁니다.

 

부모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의 사랑, 아빠의 사랑도 돈으로 값을 매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그저 은혜로만 받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영생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 영생도 돈으로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천국 영생, 우리가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살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은혜로만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신학생 암송수련회도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신학생들이 이 신학생 암송수련회에 와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회복하여서 말씀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한국교회를 말씀으로 이끌어갈 지도자로 거듭난다면 이것이야말로 돈으로 살수가 없는 가장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이 신학생 암송수련회를 100% 무료로 섬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헌금을 하고 가신 분은 우리교회의 섬김에 대한 고마움의 작은 표시라 생각합니다.

 

이번 신학생 암송수련회에서 시편 23편을 암송할 때였습니다. 한 전도사님이 시편 235절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달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했는데, 제가 설명을 하면서 또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성도 여러분에게도 다시 한번 오늘 그 은혜를 나누고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다 함께 따랍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잔이란 물이나 음료 혹은 액체로 된 것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잔이 넘친다는 것은 부어지는 그 내용물이 잔이 다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가득 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잔이 넘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에서 내 잔이 넘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부어주신 은혜가 너무 너무 많아서 그것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넘치는 표현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시편 23편을 통해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23:5절 말씀입니다. 시작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첫째로,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상이란 잔칫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원수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잔칫상을 차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이 말하는 원수의 대표적인 사람은 사울 왕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왕이 얼마나 다윗을 미워했는지 몰라요. 사울 왕이 자신의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서 연약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서 도망다녔어요. 그런데 얼마나 사울왕이 잔인한지 다윗을 도와주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죽이는 겁니다. 심지어 제사장까지,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유로 놉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비롯하여 놉에 있는 제사장 85명을 죽이고,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의 모든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애들까지, 소와 나귀와 양까지 다 죽여버릴 정도로 얼마나 다윗을 미워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원수 앞에서 다윗을 얼마나 높여주시는지, 다윗에게 잔칫상을 베풀어주시는데, 원수가 보란 듯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잔칫상을 베풀어주시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윗을 인정해 준다는 겁니다. 내가 다윗을 돌보고 있으니까 함부로 다윗을 건들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 원수 앞에서 자신에게 잔칫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다윗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잔칫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것도 원수가 보는 앞에서 잔칫상을 베풀어주세요. 그러면서 그 원수 앞에서 저와 여러분을 인정해 주십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내가 이 사람을 사랑한다.

 

여러분,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신다는 말은 우리가 인정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할터이니 너는 너의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9절 말씀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4절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자신을 추격하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옷자락만 자르고 살려 보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원수 같은 사람이 생깁니다. 그 원수는 여러분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의 원수가 될 수 있어요. 여러분의 아내가 원수가 될 수 있고요,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늘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가 여러분의 원수처럼 행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원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항상 원수처럼 행합니다.

 

여러분의 웬수가 누굽니까? 누구라고 딱 말하기는 뭐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 원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라..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원수를 사랑해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여러분의 원수의 목전에서 여러분에게 근사한 잔칫상을 차려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오늘 우리도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내 잔이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둘째로,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물론 기름부음을 받고나서 곧바로 왕으로 취임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더라면 다윗은 그러한 고난을 겪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것처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2문은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

 

그 질문에 이렇게 답변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부음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며, 제사장으로서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 또한 왕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 이후로는 영원히 그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것입니다

 

구약에는 사람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세우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세웁니다.

두 번째는 제사장으로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세웁니다.

세 번째는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세웁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메시야라고 하면 그 뜻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데,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그리스도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러니까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모두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진 예수님은 바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왕으로서의 모든 직분을 다 수행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보면,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 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고 있다고요?

 

왜냐하면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부으심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통찰력은 어머 어마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의 지체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의 지체가 된 우리도 함께 기름부음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답변합니다.

 

나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며, 제사장으로서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 또한 왕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 이후로는 영원히 그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것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인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안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뜻이 숨겨져 있어요. 우리 기독교인 중에도 이 어마어마한 이 놀라운 비밀을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저는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을 공부하기 전에는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런 말을 들어 본적이 없어요.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한 나를 예수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로 인정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어서 이제는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왕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기름부음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제사장으로서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 있는가?

나는 왕으로서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가?

 

나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영광중의 영광입니다. 사람마다 죄 가운데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그 사망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생명을 얻도록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바울도 자신이 사도가 된 이유가 영생의 소망을 위해서라고 말했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영생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을 통해 말씀하시느냐? 전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디도서 1:1-3절을 보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내게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영생은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세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영생을 이제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시는데, 전도로 나타낸다는 겁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의 삶을 산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와 여러분을 통한 전도로 나타내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일에 쓰임받는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래서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의 삶을 사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잔인 넘치나이다

 

둘째로, 나는 제사장으로 날마다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 있는가?

여러분,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가 그를 영화롭게 합니다.

 

시편 50:23절 말씀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런데 감사는 우리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를 돈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사헌금을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감사헌금이라는 것은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기 위해서 감사헌금이라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교회도 운영을 해야 하니 감사헌금이라는 명목으로 헌금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대체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지난 주간에 제2회 신학생 암송수련회가 34일동안 있었습니다. 지난 1기 때도 그렇고 마지막 날이 되면 몇 몇 분이 헌금봉투를 찾아요. 너무 고맙다는 것이지요. 온천숙소와 모든 식사와 간식, 모든 강의를 무료로 섬김을 받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서 신학생들이 자그마한 성의표현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1기 때도 그렇고, 2기 때도 헌금을 받지 않는다고 광고를 했어요. 그래도 몰래 헌금바구니에 헌금을 하고 가고 계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제가 진정으로 그 분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헌금이 아니지요. 헌금을 받을 것이면 애초에 처음부터 참가비를 받고 수련회를 했겠지요..제가 그 분들에게 원하는 것은 감사헌금이 아니라 그 분들이 이제 돌아가서 신학생으로서 공부하는 동안 정말 말씀에 목숨 걸고,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이 아니지요.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생활 속에서 진짜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겁니다. 말씀에 순종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헌금은 그 다음입니다. 교회가 운영이 되어야 하니까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말 부끄럽지만 저의 마음입니다. 받아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으로 감사의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말씀 순종이 없는 감사는 헛 것입니다. 오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감사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사의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셋째로, 나는 왕으로서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습니까? 억지로가 아닌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왕으로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지 못하고 피하고 도망다니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왕은 불의를 미워하고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왕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삶속에서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역시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아주 영광스런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을 때 우리도 그의 지체로서 그의 기름부음에 함께 참여하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오늘 우리가 불리우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날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내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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