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인간의 전적 부패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8문답
8문: 그렇다면 우리는 그토록 부패하여,
선은 조금도 행할 수 없으며
온갖 악만 행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참으로 그렇습니다.
2. 아담 부패의 결과
가. 인간의 전적 타락
1) 아담의 부패가 모든 사람의 본성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주고 있는가? 인간에게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악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어떤 능력도 남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죄가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워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본성 자체로부터 죄를 범하고 있다.
2)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여 남을 돕거나 선한 일을 행하지 않는가? 물론 자연인 상태에서 외적으로 선한 사업을 하거나 좋은 일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한 행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이나 자신의 명예 또는 처벌의 두려움 가운데 행하는 행위는 선한 일로 간주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행은 무엇인가?
3)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 것만을 선행이라 하며,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사람의 계명에 근거한 것은 선행이 아니다(91문). 그렇다면 세상이 이나마 평화를 누리는 것은 인간의 선행에 의한 결과가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그러나 인간들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완전히 악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악을 제어하시기 때문이지 결코 인간 스스로의 덕 때문에 세상이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5) 그렇다면 전적으로 부패한 본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가능하다. 인간의 의지로는 절대로 거듭날 수 없다. 간혹 자신의 의지로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자신의 의지로는 영적 성질로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결국 결심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되면 포기하는 자들이 되거나 명목상의 신자로서 단지 종교생활만 하게 된다.
진실한 믿음은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믿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데에는 나의 의로움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믿겠다고 결심한 것조차 나의 의로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나면 부패한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자유의지를 살펴봄으로써 알아보도록 하자.
3. 자유의지(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
가. 자유의지의 종류
1) 타락하지 않은 상태의 자유 의지(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사람은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서 하나님의 보존하심을 받아 계속해서 선한 상태 속에 있을 수도 있으나 동시에 악한 상태로 기울어져서 거기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전자는 사람이 창조 때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함을 생각할 때 그러하고, 후자는 성경의 증언 즉, 전도서 7:29절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를 볼 때 그러하다.
2) 중생(거듭남)하지 않은 타락한 상태의 자유의지
이 상태에서는 의지가 자유로이 행동하지만 오로지 악한 것에만 이끌리고 그것만을 지향하며, 죄밖에는 아무 것도 행할 수가 없다. 즉 악한 것만을 선택하는 성향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탁월한 일들을 많이 행했고 많은 덕성을 보여준 인물들이 많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중생하기 이전이라도 선한 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능력이 있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선행의 본질을 생각할 때 그렇지 않다. 선행의 본질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행한 것이다. 즉 선한 일을 행하는 자유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복종을 드리는 능력에 대한 자유이다.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또한 그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덕성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섭리로 심지어 악인들의 마음까지도 통제하시며 본성적으로 죄를 범하도록 되어 있는 그들을 억제시킴으로써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다.
3) 중생(거듭남)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영화가 아닌 상태의 자유의지
이 상태에서는 중생하기 이전의 상태와 같이 똑같이 악한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선한 일도 행한다. 성령께서 그의 특별하신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본성을 새롭게 하셨고, 지성 속에 새로운 빛과 지식을 밝히셨고, 마음과 의지 속에 하나님의 법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소원과 성향을 일깨우셨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복종을 드릴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며, 또한 그 능력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하였다고 하여 그들의 정신과 의지가 금생에서는 완전히 새로워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신자라도 육체를 입고 있는 한 그들에게는 부패성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그들이 행하는 행위들이 불완전하여 죄로 얼룩져 있는 것이다. 중생한 자들이 항상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들을 시험하거나 그들을 낮추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그들을 버려두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동안 그들 스스로 내버려 있더라도 최종적으로 멸망하는 법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정하신 때와 방법으로 그들을 다시 부르사 회개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중생한 후에는 사람은 부분적으로는 선을 택하고, 부분적으로는 악을 택하는 성향이 있게 된다. 중생하면 선을 지향하는 성향이 어느 정도 돌아오기 시작하여 새로운 순종이 시작된다. 또한 금생에서는 성도들이 불완전한 상태로밖에는 새로워지지 않기 때문에 악을 향하는 성향이 남아 있고, 원죄로 인한 갖가지 연약함과 악한 정욕들이 여전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들이 행하는 선행들은 완전히 선한 상태가 아니다.
4) 이 세상의 삶 이후에 영화 상태(완전히 중생)의 자유의지
이 상태에서는 사람의 의지가 악이 아니라 선만을 선택할 자유를 갖게 된다. 이것은 인간 의지의 최고의 완전한 자유이며,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혐오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태는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의 상태보다도 훨씬 더 탁월한 상태가 될 것이다.
사실 아담은 완전하게 하나님께 굴복하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과 악 모두를 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리하여 모든 은사들을 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하여 그 은사들을 상실할 가능성이라는 특정한 연약함이 그에게 있었다. 그는 선하였으나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선한 것 이외에는 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악인들이 악하기 때문에 오로지 악만을 행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불변하도록 선하게 될 것이므로 오직 선한 것에게만 이끌리며 그것만을 사랑하고 선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죄의 부패로부터 완전한 자유는 우리가 영화에 이르게 될 때에 가능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쨌든 중생하기 이전의 인간은 그토록 부패하여 선은 조금도 선을 행할 수 없으며 온갖 악만 행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하여 요리문답은 9문에서 다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
9문. 하나님께서 사람이 행할 수 없는 것을 그의 율법에서 요구하신다면 이것은 부당한 일이 아닙니까? 이에 대한 답변은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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