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6세기에 독일의 선제후령(選帝侯領) 팔츠(Pfalz)에서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작성된 신앙고백서이며(1563년), 이 요리문답의 이름도 팔쯔의 수도인 하이델베르크에서 나왔다.
개혁교회에서는 주일 아침에 성경 본문으로 설교하고 오후에는 요리문답 설교를 하는 전통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은 성경의 교훈을 잘 요약한 요리문답을 설교하는 것이 목사 개인의 한계와 성향에 제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부분을 고루 전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당시에 작성된 요리문답들이 많이 있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7세기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요리문답으로 인정되고 있다.
2. 요리문답의 서론, 제 1문
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1문)
1) 우리에게는 왜 유일한 위로(위안)가 필요한가?
왜냐하면 인간은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에 죄로 인하여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의 권세에서 고통과 근심과 걱정과 염려에 눌려 살아가고 있다. 질병과 사업에 대한 염려,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 결혼에 대한 염려, 자녀문제, 재정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또한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심판의 두려움 가운데 놓여있다. 즉 영혼이 고통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원한 위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살아서도 위로가 되며 죽어서도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은 돈이 위로가 될 수 있다. 병든 사람은 병 치료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학생은 공부 잘하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위로에 불과하다. 돈을 벌고 나면 더 이상 돈이 위로가 될 수 없고, 질병이 낫고 나면 건강이 더 이상 위로가 될 수 없고, 졸업을 하고 나면 더 이상 공부를 잘하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영혼을 갖고 있는 우리는 영원한 위로가 필요하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서론, 제 1문에서 문답하고 있다.
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1문)
답: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하므로 그분은 그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2) 우리의 유일한 위로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가) 성자께서 주시는 위로<그리스도의 구속>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 서 해방하셨습니다.
(1)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내 몸도 내 영혼도 신실하신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소유이다. 이 사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변함이 없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사실은 나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며,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이유이다. 천국에서도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천국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천국에서도 내가 주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2) 또한 나의 몸과 영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죄의 비참함으로부터 구원하셨고, 나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다는 사실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의 유일한 위로가 된다.
인간이 마귀에게 속해 있었던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소유였으나 죄 때문에 마귀의 소유권에 속하게 되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벌로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것이다. 이 때문에 마귀는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명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불안의 궁극적 원인인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우리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켜서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다. 이제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우리에 대하여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 오직 우리는 신실하신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소유이다.
나) 성부께서 주시는 위로<아버지 하나님의 보호하심>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1)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구속받았다고 하더라도 죄를 지으면 또 다시 마귀의 권세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이제 우리의 몸과 영혼은 신실하신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소유이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털은 우리 신체의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소유를 철저하게 보호하신다. 이 보호의 은혜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인생은 염려와 걱정, 근심거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보호하신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수천 번씩이라도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2) 물론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다. 심지어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처럼 여김을 받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조차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합력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다.
다)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성령의 도우심>
그러하므로 그분은 그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1) 영생의 확신, 즉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면 크게 불안하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셨다. 이 약속에 대한 확신을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얻게 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롬8:16,17) 가 된다.
(2) 영생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영생이 없는 다른 모든 위로는 덧없이 사라지고, 불만족스러운 위로일 수밖에 없다.
(3)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살아가게 하시는가?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참된 회개를 일으키고, 하나님을 믿고 그의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고자 하는 확고한 목적을 우리 속에서 자각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진정한 열망을 불러일으키신다. 이렇게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가 된다.
(4)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며 사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겠는가? 인생 자체에 목적을 두면 그 인생 자체가 허무하기에 결국 허무하게 끝이 난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겠는가? 성령께서 우리를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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