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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강동협 2020-10-31 추천 0 댓글 0 조회 834
[성경본문] 빌립보서1:27-30 개역개정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2020111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

 

1:27-30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새벽기도회 시간에 유니게 3단계 첫 시작인 빌립보서 4장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을 암송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 빌립보서를 통째로 암송하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암송하기 보다는 함께 암송하려는 동역자들을 모집하여 그들의 암송도 돕고, 저도 암송의 유익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1월부터 줌 온라인으로 신청자를 모집하여 빌립보서 통째 암송 도전을 계획하였습니다. 매주 화,,,금 오전 730분부터 8시까지, 30분 동안 빌립보서 통째 암송을 계획하고 있는데, 현재 39분이 신청하였습니다.

신청하신 분 중에는 담임목사님도 있고, 부목사님, 선교사님, 전도사님, 신학생, 사모님, 권사님, 집사님 등 직분을 초월하여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살고 있는 지역도 우리가 살고 있는 창원을 비롯하여 창녕, 서울, 일산, 부산, 제주, 미얀마, 베트남 등 장소를 초월하여서 신청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함께 참여를 해도 됩니다.

또한 11월 이달의 성경읽기를 빌립보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빌립보서 읽기와 암송에 열심을 내어 말씀의 인도를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11월에는 빌립보서를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마이애미 롱비치 법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남편 없이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정성을 다해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중년 미국 여성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 형제가 동네 한구석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지역의 유력한 저명인사가 말을 타고 그곳을 산책하다가 하필 아들 형제의 죽창이 저명인사가 타고 있던 말의 눈을 찔러서, 놀란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말과 저명인사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말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도 문제인데, 그 말의 가격도 작으마치 천만불이 넘는 세계에 몇 마리 밖에 없는 엄청 비싼 말이었다고 합니다.

 

두 아들이 재판을 받게 됩니다.

판사가 형제 둘에게 누구의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렸는냐고 묻습니다.

두 형제는 서로 자기가 쏜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다고 주장합니다.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청한 것이지요.

 

판사는 마음씨 아름답고 형제 우애가 남달은 그 형제의 어머니를 재판정에 불러 세우고 말합니다.

 

''부인, 한 아들만 사형에 처하면 되는데 형제가 서로 자기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다고 주장하니 부인이 한 아들을 정하도록 하시오!''

 

한참 침묵을 지키더니 기도가 끝난 부인이 대답을 합니다.

 

''작은 아들을 사형에 처해 주십시오''

 

판사가 말하기를

 

''왜 작은 아들입니까?''

 

판사님, 큰 아들은 전처(前妻)의 아들이고, 작을 아들은 제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부인!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하고,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판사님,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 몸으로 낳은 아들이 더 귀하지요.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서 배우고 익힌 나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제가 큰 아들을 죽게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내가 숙연해지고 재판정이 쥐 죽은듯 고요 속에 묻혀 있을 때

방청객들은 물론, 부인의 말에 감동받은 판사가 힘을 주어 말합니다.

 

''부인! 지금까지 30년 넘게 재판하면서 오늘과 같이 감동 받기는 처음입니다.''

 

두 아들도 또 그 어머니도 미국사회를 아름답게 선도할 모범적 가족이라고 판단한 판사는 힘주어 판결문을 낭독합니다

 

''내가 판사의 권한으로 두 아들을 무죄로 석방한다''

 

두 아들과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이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

 

유진피터슨의 메시지는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명예로운 삶을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명예로운 삶

 

앞에서 언급한 예화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뜻보다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내려는 자세, 바로 이 자세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머니도 두 아들에게 그렇게 가르쳤겠지요? 항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라.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겠는가? 동생의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으니까 사실대로 동생의 죽창이 말을 찔렀다고 말을 해야 하는가? 그 반대로 형의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기 때문에 사실대로 형의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다고 말을 해야 하는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란 무엇일까?

두 아들은 고민하지 않고 자신의 죽창이 말의 눈을 찔렀다고 말을 했겠지요. 그것이 바로 그 어머니의 자식다운 삶입니다.

 

, 그러면 오늘 본문말씀에 비추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명예로운 삶을 살 것인가?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27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먼저 성도 간에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다툼이었습니다. 분쟁입니다. 그런데 이 다툼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 바울과 함께 복음에 열심히 힘썼던 주의 일꾼들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빌립보교회의 다툼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울이 아끼는 신실한 복음의 일꾼들, 바울과 함께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일했던 일군들이 빌립보 교회 분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서 전하는 말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너희의 삶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지 않다.

지금 너희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삶이 아니다.

지금 너희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명예로운 삶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이 정말 듣고 싶은 소식이 무엇인가?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결국 어떻게 살아간다는 것입니까? 바울이 있든지 없든지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다툼에 있던 자들이 각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복음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게 됩니다.

 

여러분, 협력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협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요. 그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우리 개역개정성경에는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새번역 성경에는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라고 번역하고 있어요. 그리고 공동번역성경은 한 마음 한 뜻으로 굳게 서서 분투 노력하라라고 번역합니다.

NIV 성경도 그렇고, KJV(킹제임스버전) 성경도 다 그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적을 똑바로 보라는 겁니다. 우리의 적이 누굽니까? 이 장로가 우리의 적입니까? 강 권사가 우리의 적입니까? 박 목사가 우리의 적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그러니까 성도끼리 서로 싸우지 말고 오직 성도는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서로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 서로 협력하여서 함께 마귀의 권세와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을 명확하게 알고 분투 노력하면 우리는 비록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제 해결방법이 다르고, 서로의 성격이 달라도 우리는 서로 협력할 수 있어요.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있어요. 바울은 다툼가운데 있는 빌립보교회로부터 그런 소식을 듣고 싶었어요.

잠언 25:25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정말 냉수와 같은 소식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반대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빌립보 교회는 성도들 간에 다툼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는 회당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곳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유대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빌립보교회에 들어와서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반대하면서 무엇이라고 주장했냐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주장했어요.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혼란스러워했어요. 왜냐하면 아무래도 빌립보 성도들은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예수님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와서 말을 하면 이방인인 그들로서는 그 말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주의자들이 말하는 복음이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빌립보 교회 안에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따르는 사람과 유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을 따르는 사람으로 나눠졌을 것이고, 당연히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적했겠지요. 그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빌립보서 3장을 설교할 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런 가운데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2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앞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첫 번째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게 된다고 했어요.

 

두 번째가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당당하지요. 내 영혼이 기쁘지요. 무서울 것이 없어요. 그 누가 대적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조금도 무섭지 않은 법입니다.

 

디도서 1장을 보면 감독의 자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을 감독으로 세워야 하는가?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저는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어요. 목사의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왜 목사의 말이 성도에게 힘이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았어요.

9절 말씀,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목사가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면 능히 성도들을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사람, 대적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지 않으니까 성도들을 바른 교훈으로 가르칠 수가 없고, 거슬러 말하는 사람들을 책망해도 그 책망을 듣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오늘날 왜 교회의 말이 힘이 없는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지 않으니까 바른 교훈으로 세상 사람들을 교훈할 수가 없고,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책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이는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되면 우리를 대적하는 그 어떤 사람들의 말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되면 우리를 박해하는 그 어떤 내용도 두렵지 않아요. 동성애와 관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두렵지 않게 되어 있어요. 물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겠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그 어떤 것에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박해도 두렵지 않고,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고, 순교하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즐거이 받습니다.

2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은 누구나 본성상 고난을 두려워합니다.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고난 받기 싫어하지요.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변나명용 롬팔이팔를 가르칩니다.

 

고난은 장하여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고난은 내 영혼을 깨우는 영적 기상 팔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품 만들기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광로이다.” 용광로에 푹 담갔다 나와야 순금이 나오듯이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용광로에 푹 담그고 나와야 순금 같은 사람이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지금 당하는 고난을 잘 이겨내자.

 

교회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실상은 너무 고난당하는 것이 무섭고, 피하고 싶어요. 왜냐? 우리가 본래 그런 본성을 갖고 있으니까 고난은 다 피하고 싶지요. 여러분이 고난을 받고 싶지 않으시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신앙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은 정답을 알고 있어요. 그 정답은 고난을 겪어야만 사람이 바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알고 있어요.

이건 기독교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삶의 노하우가 축적이 된 것으로 증명됩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 말이 있고, ‘고난은 역경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했고, 맹자도 걱정과 어려움이 나를 살게 하고, 안락함이 나를 죽음으로 이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67,71절 말씀,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보통 우리가 은혜혹은 선물이라고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8절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 아니라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1:29)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일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즐거이 받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 곧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이제 그 고난을 즐거이 받을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그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넉넉히 그 고난을 이겨 낼 수가 있고, 비로소 우리는 그 고난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오직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은 첫째,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셋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즐거이 받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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