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문

  • 더사랑의 말씀 >
  • 주일설교문
비교 불가의 존재
강동협 2020-08-15 추천 0 댓글 0 조회 528
[성경본문] 사도행전12:1-12 개역개정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비교 불가의 존재

 

2020816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by 강동협 목사)

 

본문: 사도행전 12:1-12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이달의 성경읽기로 사도행전을 읽고 있고, 새벽기도회도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일예배도 오늘부터 몇 주간은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하여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성령 받은 제자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주의 깊게 보시면 매우 재미있게 사도행전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받는 박해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가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고, 천사에 의한 베드로의 옥중 탈출 사건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야고보의 순교는 사도행전 문맥상 이해가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강림사건 이후에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에 박해가 있어서 사도를 제외한 많은 제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해왔고, 또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울(바울)이 교회를 박해하는 모습도 있어왔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고보의 순교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야고보를 죽인 인물이 유대인이 아니라 헤롯왕이라는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왜 갑자기 헤롯이 교회를 박해했을까?

 

사실 앞서서 나오는 교회에 대한 모든 박해는 유대인들에 의한 박해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도 유대인들이 박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도 유대인으로서 교회를 박해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오늘 본문에서 헤롯왕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왜 갑자기 헤롯왕은 교회를 박해하였을까요? 그것이 성경을 읽는 중에 드는 궁금증이었습니다. , 그럼 왜 그런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보면 ‘[그 때에] 헤롯왕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고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란 언제입니까?

 

오늘 본문의 바로 앞 부분인 사도행전 1127절 이하를 보면 글라우디오 황제 때 천하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천하에 큰 흉년이 들었는데 아마도 유대에서가 더 극심하게 흉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서 유대에 있는 형제들에게 부조금을 보내기로 작정하고 헌금을 모아서 바나바와 바울 편으로 부조금을 보냈습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즉 유대에 흉년이 들어서 매우 혼란스러울 때입니다.

 

여러분, 흉년이 들면 어떻게 됩니까?

제 고향이 제주도인데 과거에는 제주도지사 선거를 하는 전 해의 감귤 가격이 도지사를 바꾼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흉년이 들면 백성들은 누구를 원망하느냐...바로 정치 지도자를 원망한다는 것이지요. 유대 땅에 흉년이 들자 백성들은 자연스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유대 땅을 다스리던 헤롯 아그립바왕에게 그 원망이 돌아갔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헤롯 아그립바왕은 유대인들의 그 원망을 바로 교회의 지도자들을 박해하는 것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고 했는데, 누구를 지목했습니까?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베드로를 지목했습니다. 아마도 헤롯왕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예수님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명 의 제자를 죽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잡은 사람이 바로 야고보였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까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마음을 산 헤롯은 더욱더 힘을 내서 베드로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중심은 베드로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지죠.

 

감옥에 갇혀 있던 베드로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잠을 자던 베드로를 툭툭 치면서 깨우는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손에 있던 쇠사슬이 저절로 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띠를 띠고 신을 신고 따라오라고 하자 베드로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도 못하고 천사를 따라가는데.. (세상에...) 감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지요.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서 하는 말이 뭡니까?

 

11절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베드로가 이 사실을 깨닫고 마가의 집에 가보니 거기에는 여러 사람이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간증하고는 다른 곳으로 갔다..하는 것이 오늘 내용의 뒷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야고보는 죽게 놔두시고, 베드로는 살리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야고보는 죽게 놔주시고 베드로는 살리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베드로가 잡혔을 때는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는데, 그러면, 야고보가 잡혔을 때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야고보가 잡혔을 때도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는 죽게 놔두시고 베드로는 살리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네 이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보통 우리는 상반된 결과를 안게 되면 당황해 합니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같이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 사람은 합격하고, 나는 떨어지고..그러면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실까?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이 열심히 일했는데 이 사람은 승진하고 나는 떨어지고..하나님이 나는 사랑하지 않으시나...하나님이 나에게 왜 그러실까?

 

디베랴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목양 사명을 주시지요. 목양 사명을 주시면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영광 돌릴지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썩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마침 그 옆에서 함께 예수님을 따르는 요한을 보고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뭐라고 질문했습니까?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21:21)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21:22)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서로 비교하면서 나 자신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려는 경향은 바로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도 서로 비교를 하면서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느냐며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교 자체를 거부하십니다. 서로 비교하면서 우리를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 이렇게 비교하지 않아요. 오직 우리의 죄성이 서로 비교하면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은 야고보를 순교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베드로는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베드로는 살리셨는데 왜 야고보는 죽이셨는가? 이런 질문은 서로 비교하려는 죄의 본성이 하는 질문이지 사실 하나님께는 필요가 없는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는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서로 비교하면서 판단하고 평가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고 그런 게 없어요. 누구는 부자고 나는 가난하고 그런 것이 하나님께는 없어요. 누구는 공부 잘하고 나는 공부 못하고, 누구는 예쁘게 만들어 주시고, 나에는 이런 얼굴을 주고, 누구는 똑똑하고 나는 못나게 해주시고, 누구에게는 건강주시고 나에게는 질병을 주고, 누구 집은 부자고 우리 집은 가난하고, 그런 질문이 하나님께는 필요 없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비교 자체를 하지 않으세요.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존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질문은 오직 죄의 본성이 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이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어요. 손도 있고 발도 있고, 눈도 있고, 코도 있고, 귀도 있고, 심장도 있어요. 그런데 각자의 기능이 다 달라요.

 

각자의 기능이 다르다는 말은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로의 기능이 다른 데 어떻게 서로 비교를 합니까? 애초에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비교 불가..우리는 애초에 서로 비교 불가의 존재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뭡니까? 비교 불가의 존재.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비교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귀한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그렇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이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비교 불가의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의 본성이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니까 시기 질투가 나고, 상대방이 미워지는 겁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니까 열등감을 가지고, 비교하기 시작하니까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하기 시작합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니까 내 자신이 초라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잊어버리고 불평불만이 쌓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비교불가의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여러분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각자의 길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면 될 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바로 서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비교불가의 존재로 만드시어, 우리 모든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하고 존귀하게 만드셨사오니 우리 모든 사람이 존귀한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고난을 선한 에너지로 바꾸는 사람 강동협 2020.08.21 0 496
다음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강동협 2020.08.08 0 432

51374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용로443번길 1 (팔용동, 혜성빌딩) 7층 더사랑교회 TEL : 055-299-7171 지도보기

Copyright © 창원더사랑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42
  • Total58,681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