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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는 존재
강동협 2020-06-06 추천 0 댓글 0 조회 746

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는 존재

 

202067일 창원더사랑교회 주일 설교

(by 강동협 목사)

 

본문: 출애굽기 13:11-16

 

샬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는 존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유대인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검은 상자를 머리에 붙이고, 손목에 감고 성경을 암송하거나 기도하는 장면이 떠오르지요. 그들이 이마와 손목에 붙이고 묶는 검은 상자를 테필린이라고 합니다. 이 테필린 안에는 4개의 방이 있는데, 첫 번째 방을 구속의 방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의 앞에 있는 출애굽기 13:1-10절까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7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을 행하라는 말씀인데, 9,10절 말씀을 보면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유럽이 네 입에 있게 하라는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테필린의 네 개의 방중에 첫 번째 방에 넣고 이 말씀을 암송 할뿐만 아니라 이 테필린을 이마에 붙이고, 손목에 메어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보면 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이 있습니다.

이 통곡의 벽은 AD 70년 경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추방되어서 전세계로 흩어져서 방랑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4세기가 되어서야 유대인들이 1년에 한번 성전 파괴기념일 하루만 예루살렘에 올라와 이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 받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날은 이 서쪽 벽 앞에 모여서 가나안 땅과 나라와 성전과 가족을 잃은 것을 슬퍼하고, 파괴된 성전의 회복과 나라의 회복을 위해서 파괴되고 남아 있는 이 성벽을 붙잡고 두드리며, 거룩한 성전 방향을 향하여 밤을 새워가며 슬프게 통곡하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서쪽 벽의 이름이 통곡의 벽이라고 불려지고, 전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이 날에는 모여서 파괴된 성벽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전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곳에 가보면 검은 옷을 입고 테필린을 머리에 두르고 손목에 감은 유대남자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읆조리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테필린 두 번째 방에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출애굽기 13:11-16절까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두 번째 방 이름을 봉헌의 방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테필린 안에 넣고 암송하는 이유는 15, 16절 때문입니다.

15,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3:15,16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테필린 안에 넣고 테필린을 이마와 손에 메는 이유는 바로 16절에서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 그러면 이 말씀의 방을 봉헌의 방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12,13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거든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 즉 너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은 다 구별하여서 여호와께 드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봉헌의 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이렇게 이 말씀을 테필린에 넣어서 이 테필린을 손목에 메고, 이마에 붙이고 이 말씀을 암송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다는 의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도하여 낼 때 애굽에서 처음 난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은 다 죽게 하셨는데, 이스라엘에 속한 장자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은 살리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장자와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래서 그들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겠습니까?

 

먼저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합니다. 나귀는 부정한 짐승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부정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수가 없으니까 대신 어린양으로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린양이 아까워서 어린양으로 대속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나귀의 목을 꺽으라. 즉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유는 두 가지 방법으로 구별하여 드립니다. 다른 것으로 대속하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 그러면 사람의 장자는 어떻게 대속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을 레위인으로 대속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민수기 34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라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세어보니 일개월 이상된 장자가 총 22273명이고, 1개월 이상된 레위인을 세어보니까 22200명입니다. 누가 더 많습니까? 1개월 이상된 이스라엘의 장자가 1개월 이상된 레위인보다 273명이 더 많습니다. 273명은 레위인으로 대속이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1인당 5세겔의 돈으로 대속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그들은 기업이 없이 성전에서 제사장을 돕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생활을 할 때에도 항상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열두지파 가운데 있었어요. 행군을 할 때에도, 그리고 진영을 짤 때에도 레위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있지 않고 항상 이스라엘 열두지파 가운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레위인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레위인은 장자의 목숨 값이라는 겁니다. 그들에게 레위인은 자신의 장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을 볼 때 그들은 단순히 성막에서 일하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레위인은 곧 그들의 장자이고, 그들이 볼 때에 레위인은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해 주신 여호와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레위인을 여호와께 드리는 의식을 보면 레위인은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 즉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려요. 레위인을 요제로 드린 후에 성막에 들어가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보통 다른 제물들은 죽인 다음에 그 제물을 요제로 드리는 것이지만 레위인은 죽이지 않고 살아있는 제물로 흔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여호와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처럼 땅을 기업으로 받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 되어서 성전에서 봉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그들의 먹을 것은 누가 줍니까? 다른 지파 사람들이 레위인에게 십일조를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십일조를 하면 그것을 창고에 모았다가 레위인들이 공평하게 나누는 겁니다.

 

느헤미아가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명을 받고 유다총독으로 예루살렘에 부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고 에스라와 함께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이 때가 정말 좋았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서 백성들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까 백성들이 율법을 말씀을 듣고 다 우는 겁니다.

그러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그리고 느헤미야가 말하기를 너희는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백성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잘 알려고 에스라에게 모여서 율법을 배우고,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켰는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초막절을 7일 동안,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가르쳤어요. 그것만이 아니지요. 그들이 금식하며 회개하기 시작하는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낮 사분의 일은 제자리에 서서 여호와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찬양하는 내용이 느헤미아 9장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방사람과 절교하고, 율법을 따라 지키겠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해 주고, 규례를 정하여서 해마다 헌금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겠고, 해마다 우리 토지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겠고, 우리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에게로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사람에게 주겠다. 그러면 레위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골방에 두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언약을 기록하고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언약에 인봉하는데, 그 언약의 내용과 그 언약에 인봉한 인봉자 명단이 느헤미아 10장에 기록되어 있어요.

 

,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변덕이 심한지 모릅니다. 느헤미아가 유대통독을 12년을 하다가 유다총독을 사임하고 페르시아의 수도 바벨론으로 돌아가 아닥사스다 왕궁에 있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까 예루살렘이 엉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언약을 세우고 은혜 받은 것이 고작 12년도 못가서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어야 할 레위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린 겁니다. 레위 사람들이 도망간 것은 단순히 그들이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버림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왜 도망갔겠습니까? 왜 하나님의 성전이 버려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안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언약도 12년이 안가요.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으니 레위인이 먹고 살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생계를 위하여 도망간 겁니다. 십일조를 두는 창고가 싹 비워져 있고, 그 방을 이방인 도비야가 그 방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누가 이방인 도비야에게 그 방을 줬는가? 성전의 방을 맡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방을 이방인 도비야에게 주었어요. 이방인과 절교하겠다는 그 언약은 어디가고.. 레위인들에게 분배해 주어야 할 십일조를 그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그 방을 이방인에게 주었으니 한심하지요.

 

느헤미아가 바벨론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방인 도비야를 그 방에서 내쫓고, 관리들을 부르고는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며 그들을 꾸짖고, 레위인들을 다시 복직을 시키고 성전을 돌보게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곡간에 채우고, 충직한 제사장과 레위인을 두고 형제 레위인들에게 그것을 공평하게 분배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레위인은 중요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성기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할 때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부패하고, 레위인이 도망가 버린 이스라엘은 패망하기 전의 모습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시 레위인은 오늘날로 보면 목회자와 교회직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목회자와 직원은 성도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서 레위인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레위인은 자신들의 맏아들의 목숨 값입니다. 맏아들 대신 흔들어 바치는 제물, 요제로 하나님께 드려져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레위인은 남이 아니라 곧 그들의 맏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십일조를 하는 거에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레위인을 보면 애굽에서의 장자죽음 재앙 가운데서 자신들의 장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가 떠오릅니다.

 

많은 권능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하나님의 구원을 떠오르게 하는 존재가 바로 레위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목회자를 보고 교회 직원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떠올려야 합니다.

목회자를 보면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떠올라야 합니다. 교회 직원을 보면 우리 집 장자, 맏아들이 떠올라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직원은 함부로 대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물론 우리교회야 현재 교회 직원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전에 여러분이 다니던 교회의 직원을 생각해 보세요. 사무 간사나 사찰 집사님을 생각해 보면 교인들이 그 분들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회에서 월급을 준다 이거지요.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거에요. 월급도 얼마 안 주면서...그러면 안되요.

교회직원은 우리 집 장자 목숨 값이다.

성도 여러분과 우리교회 목회자와 직원간의 관계는 정말 남이 아니라 우리 집 장자와 같은 관계. 그런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로 섬기고, 교회 직원으로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께 구별되어서 이스라엘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가 레위인 이듯이오늘날 우리 목회자와 직원은 바로 그렇게 구별되어진 존재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 자체가 구별되어져서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입니다만 오늘날 레위인의 역할을 하는 목회자와 교회직원은 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도망가지 말고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내고, 성도들은 목회자와 교회 직원 알기를 월급쟁이 쓰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 집 장자 목숨 값으로 알고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와 교회 직원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 집 장자와 우리 가축의 초태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자와 초태생은 사람과 가축의 대표입니다. 장자는 우리 사람의 대표이며, 가축의 초태생은 우리 가축의 대표입니다. 가축은 우리 집의 소유물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 집 사람의 대표가 장자요, 우리 집 소유의 대표가 초태생입니다.

 

그러니까 이 장자와 초태생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은 우리 집에 속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목회자와 교회직원을 볼 때마다 장자를 떠올리고, 나 자신은 물론 나의 모든 소유물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떠올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의미를 확장해 나가면 목회자와 교회직원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이 서로를 볼 때마다 여호와의 구원을 떠올리는 존재이고, 우리의 소유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앞으로 우리교회에서 일하는 목회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교회에서 일하는 교회 직원이 한국 교회에서 가장 행복하고 존중받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교회 직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 여러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교회에서 목회자를 만나고, 교회 직원을 만나고, 교회에서 성도들을 볼 때마다 여호와의 구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교회에서 성도들을 만나고 교제를 나눌 때 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내 몸도 내 영혼도 살아계시고 신실하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며, 나의 소유물도 내 것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목회자와 교회직원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와 직원은 물론 우리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떠올리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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